정윤선(세브란스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 원자력공학박사, 의학물리학자)

병원 내에서 환자와 의사에게 존재감은 없지만(?)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의학물리학자다.

 

의사는 아니지만 이들의 역할은 상당히 중요하다. 특히 암 환자와 방사선종양학과 의료진에게는 필수적이다.

 

세브란스병원 방사선종양학과 정윤선 교수는 병원에서 일하는 물리학자다. 고등학교를 2년 만에 조기졸업하고 카이스트에 진학 해 원자력 발전소 설계를 전공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MIT에서 원자력 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평소 생물학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는 대학교 때 의학물리학 수업을 듣고 병원에서 일하는 과학자에 대해 알게 됐다. 병원에서 사용하는 방사선 장비가 제대로 작동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그를 지난 12일 세브란스병원에서 만났다.


   

- 병원에서 일하는 과학자라, 상당히 특이한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 병원에 근무하는 의료진들도 우리의 존재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암 환자 치료를 담당하는 방사선종양학과에는 의학물리학자가 필수적이다. 방사선을 의료에 사용하는 것은 의료와 물리학이 만난 형태다. 의학 분야에 많은 발전이 있었는데 특히 방사선 치료는 최근 10여년 사이에 의사 혼자서 모든 영역을 담당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발전했다. 그래서 방사선종양학과는 의학생물학자, 방사선전문의, 의학물리학자 세 영역의 호흡이 잘 맞아야 한다. 방사선 치료는 한 달에 20~30회 정도 치료가 지속되기 때문에 정확한 방사선 치료가 중요하다. 방사선 치료의 정확성 확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재현성인데 이 재현성을 확보하는 것도 의학물리학자가 하는 일이다.”

   

- 의학물리학자가 하는 일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달라.

“의학물리학자가 X-Ray나 PET같은 장비를 설치하는 일을 하는 줄 아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그런 일은 하지 않는다. 장비설치는 엔지니어들이 하고 우리는 기계별 방사선 특성을 확인하고 제대로 설치가 됐는지 확인한다. 방사선치료를 할 때 의사가 어느 부위에 얼마만큼의 방사선을 줘야 한다고 처방을 한다. 예컨대 의사가 특정 부위에 100만큼의 방사선을 줘 치료하라고 했는데 실제 그 부위에 100만큼의 방사선이 들어가는지 확인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제대로 된 치료가 이뤄지려면 방사선 치료 계획 시스템에 맞춰 기계의 특성에 맞는 값을 입력 해 줘야 한다. 또 주, 월, 연간 등 주기별로 미국 의학물리학회에서 권고하는 안전사항을 확인하는 일도 한다. 예를 들면 방사선량이 입력한 값만큼 들어가는지 기계를 몇 센티미터 움직여야 할 때 제대로 작동하는지 등이다. 방사선을 쏘는 위치가 맞는지 안전장치 시스템이 잘 작동하는지 등 품질보증 업무가 가장 주된 업무다. 환자 치료기술이나 방법에 대한 연구도 병행한다.”

   

- 방사선은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방사선은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불안감이 더 큰 것 같다. 사람들이 MRI나 X-Ray, CT, PET 등을 촬영할 때 불안감을 느끼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주위에서도 병원에서 무슨 검사를 한다고 하는데 안전한 것인지 물어보는 사람들도 있다. 우선 MRI는 방사선을 이용한 장비가 아니다. CT나 PET는 방사선을 이용한 장비기 때문에 너무 많이 찍으면 방사선 노출이 많이 되기 때문에 좋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영상장비 생산하는 업체에서도 저선량 장비를 개발하는 중이다. 방사선 진단 분야에서 근무하는 사람들도 노출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방사선을 이용하는 검사나 치료는 잃는 것 보다 얻는 것이 많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문제는 저선량의 방사선으로 인한 생물학적인 변화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데 있다. 돌연변이가 생길 수 있고 암 발병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합리적으로 낮출 수 있는 방사선량은 낮추고 불필요한 노출은 피하고 꼭 필요한 노출은 조심스럽게 하라는 알라라(ALARA)라는 방사선 방호원칙에 따라 방사선을 이용한다. 방사선 치료를 받는 환자가 방사선이 자기 몸의 어느 부위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하다면 의사와 상의 한 다음 환자 몸에 측정 기구를 놓고 방사선량이 어느 정도 되고 치료부위에 제대로 들어가고 있는지 확인 해 준다. 여성들은 특히 복부 치료할 때 난소 등에 영향이 있는지 확인해 불임 등의 문제를 피할 수 있도록 한다.”

세브란스병원 방사선종양학과에서 근무하는 의학물리팀.

- 의학물리학자가 되겠다고 생각한 것은 언제부터인가.

 

“의학물리학이라는 학문이 있다는 것은 대학교 3학년 때 수업을 들으면서 처음 알게 됐다. 석사를 원자력 발전소 설계로 했는데 원래 생물에 관심이 많았다. 방사선을 이용해 생물학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에 흥미를 느꼈다. 의학물리학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MIT에서 박사 과정을 하면서였다. 군소중성자포획치료를 할 때 치료효과는 얼마나 있고 세포에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인지 실험했다. 방사선 생물학을 더 공부하고 싶어 의학 중심 대학교인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프란시스코 캠퍼스(UCSF)로 가서 함께 연구했다. 방사선 생물학과 관련된 연구를 계속하다 연구에 한계를 느꼈다. 생물학도가 아니고 공학도이다 보니 더 그랬던 것 같다. 효과를 바로 확인할 수 있는 실용적인 분야가 없을까 고민하다 10년 넘게 공부한 방사선 분야가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그 과정에서 예전에 수업을 들었던 의학물리학이 생각이 났다. 학교선배와 동기들 중 다른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학물리학자들을 통해 정보를 공유했고 한국에 들어와서 의학물리분야 일을 시작하게 됐다.”

- 의학물리학자로 근무할 수 있는 병원 중 세브란스를 선택한 이유는.

“세브란스 병원은 국내에서 암센터를 최초로 연 곳이다. 당연히 의학물리학도 연대의대가 처음이었다. 지난 2005년에 정년퇴임하신 추성실 교수님이 국내 의학물리학 분야의 첫 번째 교수님이다. 역사가 오래된 만큼 방사선 치료 수준도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들었다. 그래서 세브란스에서 의학물리를 시작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지원하게 됐다.”

   

- 의학물리학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현재 의학물리학자로 일하는 사람 중 대부분이 물리학자 출신이다. 그러나 원자력 공학과 출신도 있고 최근에는 전자공학과 출신들도 의학물리학자로 일하기도 한다. 물리를 전공한 사람들은 핵물리나 입자물리 가속기 등을 공부했던 경험이 있어 기계가 익숙하다. 원자력 쪽을 전공한 사람은 방사선이라는 분야가 익숙하기 때문에 도움이 될 것 같다. 국내에도 의학물리를 공부할 수 있는 곳이 있다. 서울대와 카이스트에서도 의학물리를 공부할 수 있다. 또 경기대학교 대학원에서도 의학물리를 공부할 수 있다. 석사나 박사 때부터 의학물리를 하려면 의학물리를 배울 수 있는 학교로 진학해 공부한 다음 병원에서 경험을 쌓으면 도움이 될 것이다. 아니면 해외 유명 의과대학이나 큰 병원에서 운영하는 의학물리 레지던트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국내에서는 국립암센터와 서울아산병원에는 의학물리학자 트레이닝 프로그램이 있는데 그런 쪽을 활용 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세브란스는 아직까지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 조만간 강남세브란스병원이 주최하는 '테드엑스 언주로(TEDx Eonjuro)' 행사에서 '‘착한 방사선'이란 주제로 강의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의료분야에 나 같은 사람도 일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많을 것이고 궁금한 사람도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의학물리학자는 병원 내에서도 존재를 모를 정도다. 강남세브란스에서 방사선종양학과 강사로 근무할 때 ‘동행’을 주제로 ‘테드엑스 언주로(TEDx Eonjuro)’라는 행사를 준비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의학물리학자도 병원 내에서 함께 일 하는 사람이고 동행이라는 주제에도 이야기가 어울릴 것 같아서 참여하게 됐다. 방사선도 동행이라는 주제에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방사선이 주위에 없다가 갑자기 나타난 위험한 물질이라는 생각을 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 안타깝다고 생각했다. 방사선을 이용해 암 진단율도 높아지고 치료율도 높아지는 것인데 이번 강의를 통해 방사선에 대한 오해를 조금이라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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