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의료시뮬레이션 교육 걸음마 단계… 가톨릭의대 등 적극적 활용 나서

서울의 A대학병원 분만실 앞. 한 산부인과 교수가 난처한 표정으로 서 있다. 이날 예정돼 있던 인턴들의 분만 참관이 급작스럽게 취소됐기 때문이다. 분만을 앞둔 산모 가족이 불과 1시간전에 수련의들의 참관을 돌연 거부한 것이다. 이처럼 환자들의 권리 의식이 강화되고 능숙한 의사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수련의들의 임상술기 교육 기회는 줄어들고 있다. 수련의들도 안전환 환경에서 구체적인 반복 실습을 통해 전문성을 키우고 싶은 욕구가 이전보다 강해졌다. 이런 측면에서 2000년대 초반부터 본격화된 ‘시뮬레이션 기반의 의학교육’이 주목받고 있다. 특히 내부 장기와 인지 능력이 프로그램된 고기능 환자 마네킹이 등장하면서 수련의 교육에 일대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이에 본지는 우리나라의 의료시뮬레이션 교육 현황과 시뮬레이션교육이 전공의 수련에 미칠 영향을 짚어보는 기획기사를 3회에 걸쳐 내보낼 예정이다.<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1. 진짜같은 가짜 '환자 시뮬레이터' 의학교육을 바꾸다2. SF영화같은 의료시뮬레이션 "교육 효과는 현실적"3. 국내 의료시뮬레이션 교육 현장을 찾아서

 

가톨릭의대 시뮬레이션센터(START) 조정실에서 교육하는 모습.

외국과 비교할 때 고충실도 시뮬레이터를 활용한 국내 의료시뮬레이션교육 수준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한국의료시뮬레이션연구회에 따르면 현재 전국 38곳의 의대와 100여곳의 간호대에 고충실도 시뮬레이터가 170~190대 가량 도입돼 있다.

고충실도 시뮬레이터 등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의료시뮬레이션센터는 2005년 부산의대를 시작으로 가톨릭의대, 연세대 간호대 등이 연이어 문을 열면서 지금은(2011년 기준) 50곳에 이른다.

특이한 점은 고충실도 시뮬레이터가 의대에 50대, 간호대에 130대가 보급돼 있다는 것이다.

고충실도 시뮬레이터가 간호대에 더 많이 보급된 원인은 의대와 달리 간호대는 대학인증기준에 시뮬레이션교육이 평가 항목으로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들 고충실도 시뮬레이터가 교육 인프라의 부족으로 제한적 활용에 그치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성모병원 김영민 교수(응급의학과)는 “우리나라 고충실도 시뮬레이터의 절반 이상은 여러가지 현실적인 장벽들로 인해 아직은 제대로 활용되고 있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가톨릭의대 의학시뮬레이션센터(START센터)는 국내에서 의료시뮬레이션교육이 비교적 충실하게 진행하고 있는 센터 중 하나다.

2005년 설립된 START센터에서는 현재 학생들을 대상으로 12개 정도의 시뮬레이션 기반 프로그램이 교육과정 내에 운영되고 있고, 그밖에 의료인들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도 시행 중이다. 

가톨릭의대 학생들은 본과 2학년부터 처음으로 블록강의를 통해 강의실에서 고충실도 시뮬레이터를 만나게 된다. 3학년은 응급의학과 실습 기간 동안 약 2시간 가량을 간단한 증례 시나리오와 고충실도 시뮬레이터를 이용한 환자시뮬레이션 교육을 조별로 진행한다.  

고충실도 시뮬레이터를 활용한 심폐소생술 등 응급상황 대처 교육.

이어 4학년 때는 소수 인원(2~4명)으로 한정된 선택심화 과정을 통해 복잡하고 심도있는 시나리오를 만나게 된다.  또 인턴 시작 전에 1일 신입 인턴임상교육과정에서는 표준화환자와 술기 모형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시뮬레이션교육을 실시한다. 이때 인턴들은 훈련된 연기자를 투입해 보다 어렵고 심화된 시나리오를 이용한 환자시뮬레이션교육을 접하게 된다. 전공의 과정에서는 기도관리(Airway management), ACLS(전문심장소생술), 소아전문소생술(PALS), 전문외상처치술 등의 교육 분야에 고충실도를 활용한 환자시뮬레이션교육이 적용되고 있다.

START는 학생들의 다양한 소그룹활동을 위한 14개의 PBL(Problem Based Learning)실과 표준화환자를 이용한 교육 및 평가를 위한 10개의 CPX(Clinical Performance Examination)실을 갖추고 있다. 특히 중앙에 위치한 원 웨이 미러(one-way-mirror)를 통해 각 실마다 별도의 조정이 가능하도록 돼 있다.

김영민 교수는 “학생들에게 쉽고 간단한 상황에서부터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으로 연출하도록 교육과정을 계획하고 보다 경험이 많은 의료인 교육 시에는 훈련된 보호자 가족(연기자) 등을 적절히 활용하거나, 응급환자가 동시에 발생하는 복잡한 시나리오를 적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방법을 통해 피교육자들은 시뮬레이션 상황에 더 집중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지금까지 START를 거쳐간 교육생 수만 해도 5,000여명에 달한다.

서울아산·한양대병원 등 시뮬레이션교육에 적극 나서가톨릭의대 외에도 서울아산병원과 삼성서울병원, 한양대병원 등은 의료시뮬레이션센터를 증축·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은 심장내과를 중심으로 시뮬레이션교육을 활발하게 연구 중이며, 한양의대는 올 상반기 안에 새로운 센터를 선보일 예정이다. 

무엇보다 고충실도 시뮬레이션교육의 장점은 단순 술기를 넘어서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진들이 팀 훈련을 배우고, 응급상황에서의 의사소통 및 리더십과 비기술적인 술기를 훈련할 수 있는 효과적인 도구라는 점이다. 김영민 교수는 “고충실도 환자 시뮬레이션은 항공 시뮬레이션 분야에서의 다양한 연구와 교육 경험으로부터 적용돼 왔다”며 “실제 항공사고를 리뷰해보면 조종사와 부조종사 등 간의 의사소통, 상황인식, 리더십에서의 어처구니없는 실수가 대형사고로 이어진 사례가 많아 이를 줄이기 위해 항공업계의 노력이 있어왔다. 앞으로의 의료분야에서현장도 이와 마찬가지로 환자 안전을 위해 의료인 팀의 훈련에 환자시뮬레이션을 활용한 교육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양의대 임태호 교수(의료시뮬레이션연구회장)는 “선진국은 의료시뮬레이션교육을 통한 임상현장의 실제적 변화의 측정과 적용, 팀워크, 리더십, 의사소통 등의 비기술적인 술기 분야까지 그 적용범위를 넓히고 있음을 볼 때 국내 고충실도 시뮬레이터를 이용한 의학교육의 갈 길은 아직 멀다”고 강조했다.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는 의료사고에 따른 환자들의 임팩트가 크고 의료소송의 경제적 비용이 막대한 산과를 중심으로 의료시뮬레이션교육이 확대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산과나 응급의학과를 비롯해 소아과, 외과 등에 의료시뮬레이션교육을 활발히 적용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하지만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사회적으로 시뮬레이션교육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수준이 낮고 교육자 양성 환경도 열악한 편이다. 

김영민 교수는 “의료현장에서 의료 과오(medical error)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고 환자안전 수준을 높이기 위해 효과적인 환자시뮬레이션교육을 고려해 볼 시점”이라며 “앞으로 이러한 새로운 교육방법이 효과적으로 의료인들의 교육이나 훈련에 활용되기 위해 필요한 교육지원 인프라의 구축이 더 중요해질 것 ”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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