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종(한국환자단체연합회 상임대표)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등의 만성질환은 ‘관리’가 생명이다. 정기적으로 의원을 방문해 진찰,검사를 받고 처방, 조제 받은 약을 용량에 따라 정한 시간에 꼬박꼬박 먹어야 한다. 문제는 이렇게 간단한 관리조차도 잘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성질환은 증상이 당장에 나타나지 않거나 진행도 느려 치료를 받지 않는 환자도 많고 치료를 받기 시작했더라도 정기적으로 의원을 방문하지 않거나 이 의원 저 의원 옮겨 다니는 환자도 많다. 당연히 체계적인 만성질환 관리를 받지 못하게 되고 결국 합병증으로 더 큰 고통을 겪게 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10년 우리나라 인구 1000명당 환자수가 고혈압은 108명, 당뇨는 43.1명에 이른다. 2007년에 비해 연평균 고혈압은 5.2%, 당뇨병은 4.4% 증가했다. 특히 고혈압, 당뇨는 제대로 관리되지 않으면 합병증 발생률이 크게 증가하는데 고혈압은 3배, 당뇨는 2.3배 증가한다.

이렇듯 우리나라 국민건강 향상을 위해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정부 정책 중에 하나가 만성질환 관리이다. 이런 이유로 정부는 작년 1월부터 의료기관 기능재정립과 1차의료 활성화를 위해 ‘선택의원제(만성질환관리제)’ 도입 논의를 시작했고 올해 4월 1일부터 시행하게 되었다. 

하지만 제도를 시행하자마자 새로 구성된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차기 회장 당선자와 16개 시도의사회는 불참 및 정부와의 재협의를 선언했고 소속 회원 의사들에게 환자들이 ‘만성질환관리제’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설득하라고 행동지침까지 보냈다.

의협 차원에서 정부의 ‘만성질환관리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반대투쟁을 하는 것을 놓고 환자단체에서 이렇다 저렇다 할 것은 아니다. 하지만 환자가 하나의 의원을 정해 고혈압․당뇨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를 받고 소액이지만 의료비(1회 방문당 920원) 할인 혜택을 받으려고 의원을 찾았는데 의사가 그런 환자의 ‘만성질환관리제’ 참여 신청을 못하도록 유도하는 것에 대해서는 실망스럽다.

의협 노환규 회장 당선자와 16개 시도의사회장단은 환자의 개인정보 누출 위험, 보건소의 만성질환 진료 확대 우려, 서비스 질 평가에 기초한 인센티브 차등 지급을 통한 의원 통제 강화 등을 ‘만성질환관리제’ 불참 이유로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수긍하기 힘든 이유들이다.

‘만성질환관리제’의 핵심은 ‘진료비 할인’이 아니라 ‘관리’이다. 만성질환관리를 위해서는 이메일과 문자를 통해 환자에게 관련 질환 정보와 합병증 검사주기 등을 알려주는 기능을 확대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개인정보보호법상 환자의 동의를 받아야 하고 이러한 환자의 개인정보를 공적기관인 국민건강보험공단과 보관소에서 관리하는 것이 환자 입장에서는 더욱 안전하다. 의협의 개인정보 노출 위험 지적은 기우에 불과하다.

그리고 인구 60만명의 서울 노원구에는 보건소 1개와 보건지소 1개 총 2개가 있다. 이에 반해 의원은 수 백 개에 이른다. 보건소나 보건지소가 하루에 볼 수 있는 환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보건소가 지역 의원들이 관리해야할 만성질환 환자들을 빼앗아 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넌센스다. 더욱이 보건소의 주기능이 진료가 아닌 공중보건의 향상과 증진이고 지금도 공중보건의나 의사가 부족한 상황이다.

정부가 의원의 서비스 질 평가를 통한 인센티브 차등 지급 등을 활용해 의원에 대한 통제를 강화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서는 의협

 차원에서는 주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서비스 질이 좋은 의원에 인센티브를 주는 것은 당연하고 그러한 정책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환자들의 상당수가 의원 서비스 질에 대한 불신, 불만이 있는 것이 사실이고 그래서 많은 환자들이 집에서 가깝고 의료비도 저렴하고 대기시간도 짧은 동네의원을 놓아두고 대형병원을 찾는 것이다.

그렇다면 의료서비스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의원에게 인센티브를 주고 이러한 의원을 더 많은 환자들이 찾아갈 수 있도록 환자에게도 인센티브를 주어야 한다. 인센티브도 조금이 아니라 듬뿍듬뿍 주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의료서비스 질이 좋지 않은 다른 의원도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서비스 질을 높일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의원의 서비스 질은 의료계가 주장하는 것처럼 하향 조정되는 것이 아니라 상향조정된다. 

‘선택의원제(만성질환관리제)’는 지난 1년간 논의과정 중에 기존 의협 집행부의 강한 반대로 제도의 핵심인 선택의원 ‘등록’이 빠져 버렸고 이름도 ’만성질환관리제‘로 변경되었다. 환자 입장에서 ’만성질환관리제’는 이제 ‘앙꼬 없는 찐빵’과 다를 게 없다. 남은 것이라고는 1회 방문시 진료비 920원 할인뿐이다. 환자단체 뿐만 아니라 시민사회단체도 4월 1일부터 시행된 ‘만성질환관리제’를 찬성하지 않는다.

하지만 협의회까지 구성해 지난 1년 동안 정부, 의료계, 시민사회환자단체, 전문가들이 함께 머리 맞대고 논쟁하면서 서로 양보해 마련한 ‘만성질환관리제’이다. 환자단체는 일단 시행에 협조하고 모니터링을 통해 문제점이 있으면 개선을 요구할 계획이다.

그런데도 의협은 새로 선출된 집행부가 반대한다고 불참을 선언하고 정부에 재협상을 요구하고 환자들에게는 참여를 못하도록 권유하는 것은 신사적이지 않다. 이렇게 하면 앞으로 의협과는 어느 누구도 협상하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환자단체는 의협의 ‘만성질환관리제’ 관련한 대정부 투쟁에 대해서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환자의 ‘만성질환관리제’ 참여를 조직적으로 방해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처할 것이다.<*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외부 필진의 글에 대한 다른 생각이나 의견을 보내주시면 적극 반영토록 하겠습니다(bus19@rapportian.com). 혹은 기사 본문 하단의 '독자 첨부뉴스'를 통해 반론이나 의견을 게재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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