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주도로 추진해오다 뒤늦게 참여 거부…"일차의료 활성화 효과도 의문"

의원급 만성질환관리제가 이달부터 전격 시행된 가운데 대한의사협회 차기 집행부가 제도 불참 운동을 확대하고 있어 개원가에 혼란이 일고 있다.

앞서 노환규 차기 의협회장 당선자와 16개 시도의사회장단은 지난 8일 의협회관 동아홀에서 긴급 회의를 열고 만성질환관리제에 전면 불참키로 결정한 바 있다.

 

의원급 만성질환관리제 서비스 흐름도.

의료계가 이렇게 만성질환관리제 시행에 반발하는 것은 오는 7월부터 보건소의 건강지원서비스가 실시되면 동네의원 환자를 보건소에 빼앗길 것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또 의원들의 환자 진료 내역을 평가해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은 진료 통제로 이어지고, 향후 총액계약제의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렇지만 만성질환관리제가 의협 주도로 보건복지부와 협의를 통해 도입됐음에도 불구하고 뒤늦게 제도 불참을 주장하고 나온 탓에 일선 개원가의 혼란도 만만찮다.전남 광주의 한 내과의원 원장은 “만성질환자 등록을 원하는데 다른 의원에서 안 해준다고 불평하는 환자들이 찾아 온다”며 “환자가 원하면 일단 등록은 해주고 있다. 의협이 뒤늦게 만성질환제에 반대하고 있어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내과의원 원장은 “고혈압이나 당뇨 환자가 감기가 걸려 왔는데 그 환자가 만성질환관리제에 등록돼 있으면 역시 진료비를 감면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주상병에 대한 기준이 명확치 않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만성질환관리제가 일차의료활성화 방안으로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있다. 

대한개원의협의회 김종률 보험이사는 “전문의가 90%에 달하는 우리나라 의료현실에서 모든 의원 의사에게 만성질환의 상담과 관리를 권유하더라도 해당 질환과 관계없는 일부 전문과목의 의사들은 결국 소외될 수밖에 없다"며 "그렇게되면 일부 의사만이 참여되는 일차의료 활성화 정책에 실망하고, 또 억지로 참여하더라도 그 질 또한 떨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이사는 “결국 일차의료 활성화는 외국처럼 단순한 게이트키퍼로서 하향평준화가 아니라, 환자의 다양한 욕구와 필요를 채워주는 포괄적인 수준의 의료가 되어야만 일차의료가 활성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차라리 '만성질환관리등록사업'이 더 효과적

일각에서는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 주도로 시행해온 ‘만성질환등록관리사업’이 만성질환관리제의 대안이라는 주장도 제시됐다.

앞서 복지부는 지난 2009년부터 고혈압 및 당뇨병 환자가 만성질환자로 등록하면 진료비를 감면해주고 건강지원서비스를 제공하는 만성질환등록관리사업을 전개해왔다.

 

만성질환관리등록사업 서비스 흐름도.

2009년부터 경기도 광명시 등 5곳의 보건소에서 이 사업을 실시한 결과 6만5,000여명이 만성질환자로 등록했고, 이 중 5만4,000여명이 진료비 감면 혜택을 받았다.

올해부터는 예산이 늘어 전국 시도 보건소 25곳으로 확대돼 올해만 10만여명에게 진료비 감면 등 관련 서비스가 제공될 전망이다.

만성질환관리등록사업은 만성질환관리제와 비교해 몇가지 차이점이 있다.

우선 만성질환관리제는 의사가 진료비를 청구할 때 관련 고시에 따른 코드를 입력하고 향후 질 평가를 통한 인센티브를 받도록 돼 있다.

반면 만성질환등록관리사업의 경우 의사가 ‘고혈압‧당뇨병등록관리센터’라는 포털에 환자정보를 입력하게 되면 보건소에서 그 정보를 활용해 환자에게는 진찰료 감면 및 건강지원서비스를, 의원에게는 비용 상환 등을 하는 방식이다.

결국 만성질환관리등록사업은 직접 청구와 질 평가 절차가 없기 때문에 의료계가 우려하고 있는 진료 통제를 비껴갈 여지가 있다.

만성질환관리등록사업은 30세 이상 등록 환자 중에서 65세이상 환자에게만 월 진찰료(1,500원)와 약제비(3,000원) 등의 진료비 감면 혜택이 주어진다.

반면 만성질환관리제는 모든 환자들(65세 미만)에게 진찰료 감면(월 920원) 혜택이 제공된다.

만성질환관리등록사업은 진료비 감면 연령대가 한정돼 있어 보건소로의 환자 이탈 현상도 만성질환관리제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만성질환관리등록사업에 소요되는 재정은 국민건강증진기금(국비)과 지방비로 조달되는 반면 만성질환관리제는 건강보험 재정으로만 운용돼 건보재정 압박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앞으로 비용에 대한 부담이 커질 수 밖에 없다.

경기도의 한 내과의원 원장은 “만성질환자의 실질적인 케어나 의료비 절감 측면에서 보면 만성질환관리제보다 질병관리본부가 실시해오던 만성질환등록관리사업을 확대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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