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영 (한림대의료원 부의료원장, 포괄수가발전협의체 위원장)

오는 7월부터 병원급을 대상으로, 내년 7월부터는 종합병원급 이상 전체 의료기관까지 맹장과 치질, 제왕절개 등 7개 질병군 입원환자에 대한 포괄수가가 의무적용된다. 복지부는 지난 14일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국민건강보험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입법예고 기간은 내달 3일까지다. 이런 가운데 복지부는 의료계와 포괄수가 수준의 적정화, 정기적인 조정기전 규정화, 환자분류체계 개정 및 질 평가방안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기로 했다. 전문가 13명으로 구성된 '포괄수가제 발전협의체'가 구성된 이유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의료계가 주도적으로 이끌고 가야 하는 협의체가 정부에게 끌려다니는 ‘허수아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협의체 단장을 맡고 있는 한림대병원 이근영 교수(산부인과)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정부의 포괄수가제 확대 방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기존 행위별수가제에서 진료비 지불제도를 바꾸려는 것이다. 하지만 너무 준비 없이 강행하고 있다. 포괄수가제를 하려는 목적이 뭔지 모르고 있다는 거다. 의료계와 의견 일치와 합의 과정도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미국은 포괄수가제를 도입할 당시 처음엔 일당제로 시작했다가 차츰 질병군을 분류하면서 구체화했다. 우리는 너무 빠르다."

Q. 포괄수가제 전면 실시를 반대하는건가.

"사실 우리나라의 행위별수가제는 그 행위 분류가 5,200가지에 달할 정도로 상당히 세분화돼 있다. 또 심평원에서 막대한 인건비를 들여 행위별로 고가도지표를 매기고, 재료대나 약제비 얼마나 초과됐는지 상세히 모니터링하고 있다. 그런데 포괄수가제를 전면 실시하자는 것은 거꾸로 가는 정책이라고 본다. 더 괘씸한 것은 포괄수가제 자체가 과잉진료를 막는다는 취지로 의사를 도둑으로 전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Q. 작년 11월 포괄수가발전협의체가 구성됐다. 지금까지 무엇을 논의했나.

"별로 논의한 게 없다. 복지부가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방식이다. 협의체에서 논의하는 방안은 크게 포괄수가 수준의 적정화, 정기적인 조정기전, 환자분류체계 개정 등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원가계산이 이뤄져야 한다. 행위수가제를 시작할 때 근거없이 대충 만들어진 원가를 다시 계산해야 한다. 그래야 적정 수가를 산출할 것 아닌가."

Q. 그렇다면 포괄수가제 확대에 앞서 시급한 현안은 무엇인가."앞서 말했듯이 원가계산이다. 이를 위해서는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고, 대학병원들이 원가 자료를 공개하는 등 의료계의 협조도 필요하다. 의료계가 주도해 분류체계 작업도 진행해야 한다."  

Q. 향후 포괄수가제가 전 질병군으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가장 우려되는 점은.

"가장 큰 문제는 비급여다. 원가계산이 정확히 된 건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병원은 원가에 미치지 못하는 행위료 때문에 비급여로 약 40%의 수익을 보전하는 구조다. 복지부가 적정한 포괄수가를 제시하려면 이런 비급여 부분의 수가를 포괄수가에 포함시킨다는 것인데, 그만한 예산을 준비하고 하는 얘긴지 모르겠다."

Q. 포괄수가제 확대가 고위험 환자진료의 기피 현상을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위험 환자진료군까지 포괄수가로 묶이면 추가적으로 들어가는 의료 행위가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전신홍반성난창이라는 질환의 치료비는 적게 50만원 많으면 1억원이 든다. 치료비 격차가 큰 질환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병원은 포괄수가에 해당하는 질환군에서 투입인원, 장비, 약제비, 재료대 등을 줄이게 된다. 이는 환자에게 부메랑으로 돌아간다. 결국 포괄수가제가 실시되면 과소진료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Q. 정부는 포괄수가제 실시로 환자 본인부담은 줄어들 수 있다고 하는데.

"환자들이 포괄수가제의 기전을 알게되면 이것저것 요구하는게 많아진다. 이는 과잉진료를 부르고, 병원과 환자, 의사와 환자 간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 환자들도 한 질환에 대해 평균값을 진료비로 낸다는 것은 적게 낼 사람이 많이 낼 수 있는 것이다."

Q.병원계에서는 7개 질병군에 한해 포괄수가제를 확대해도 수익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할 것으로 보는 분위기다.

"전국 병원에서 실시하게 되면 이전 선택 포괄수가제와는 양상이 달라지는 것이다. 향후 전 질병군으로 확대됨에 있어 중요한 모멘텀이 될 것이다. 그런데로 대부분의 의사들은 자신과 상관없는 일로 여기고, 잘 알지도 못한다. 오늘 영상의학과 의사가 ‘포괄수가제 시행되면 검사도 줄여야겠네요’ 하고 걱정하더라. 의료공급자들의 준비가 너무 안이하다. 포괄수가제가 되고 나면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재정절감도 안되고, 진료행태도 나빠져 환자가 피해보는 제도가 될 가능성이 높은데 나중에 누가 이 사태를 책임질텐가."

Q. 포괄수가제 전면 실시가 확정된 가운데 최선의 대안이 있다면."무엇보다 포괄수가제 작업을 총괄할 수 있는 의사 전문가 위원회를 지정해 법제화해야 한다.  일본은 포괄수가제인 DPC를 임상의사들이 만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형식적으로는 의료계가 주도하는데 비전문가가 결정하고 있다. 포괄수가제를 확대하려면 노인의료, 의료급여 환자들의 진료비에 우선적으로 적용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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