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한 독서치료 / 이운우 지음 / 한국학술정보 펴냄


선친께서 교편을 잡고 계셨던 인연 때문에 일찍부터 책읽기를 즐기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책읽기의 관심분야도 세월이 흐르면서 변하는 것 같습니다. 젊어서는 소설을 즐겨 읽었고 한때는 역사서적에 빠졌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수년 전부터는 아무래도 건강을 중심으로 한 주제로 좁혀지고 있으며 최근에는 인문학에도 관심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다니면서 잠시 독후감을 열심히 썼던 적이 있습니다만, 본격적으로 책을 읽고 그 느낌을 적기 시작한 것은 7년 전에 블로그를 열면서입니다. 우연히 읽게 되는 책도 있습니다만, 주로 의학분야에서 치매, 파킨슨병과 같은 퇴행성 뇌질환, 노화, 죽음 등에 관한 책들을 많이 읽어왔습니다. 이와 같은 책읽기는 치매에 관한 책을 쓰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요즘에는 인터넷 등에서 건강과 관련된 정보가 넘쳐나고, 의학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은 책들도 많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오히려 정보들이 넘쳐나면서 정보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의도에 따라 혹은 사실확인이 충분하지 않아 만들어지는 왜곡된 정보가 적지 않게 섞이고 있어 이제는 정보의 진위를 가리는 일이 쉽지 않게 되었습니다.

필자가 1996년에 치매에 관한 정보를 정리한 책을 낼 때, 운동요법, 회상요법, 음악요법, 미술요법, 원예요법 등 다른 영역이 결합된 치료법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이런 분야는 이제 그 이론적 바탕도 탄탄하게 구축이 되고 치료효과에 대한 증거들이 축적되면서 임상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정보에 목말라 하는 환자에게 관련 분야의 책은 좋은 공부재료입니다. 하지만 이운우선생님의 <암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한 독서치료>를 읽기 전까지는 책읽기를 체계화하여 환자치료에 응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하였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독서치료(bibliotherapy)’라는 용어는 사무엘 맥코드 크로더스(Samuel AcChord Crothers)가 1916년 처음 사용했고, 우리나라에는 1964년 유중희가 마가렛 핸니건(Magaret Hannigan)의 ‘도서관과 비브리오세라피’를 번역하여 국회도서관보에 실어 소개하였다는데 저는 이제야 용어를 알게 되었으니 정보에 많이 어두웠던 것 같습니다.

흔히 인용하는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손자병법의 구절처럼 단순하게 특정질환에 대한 정보, 예를 들면, 원인, 증상, 예방법, 그리고 치료법과 같은 내용을 쉽게 설명하여 환자들이 자신의 병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정도로는 독서치료가 가지는 잠재적 파워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라 합니다.

저자가 암질환을 타깃으로 하여 독서치료를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암질환은 아주 다양한 방향에서 환자에 접근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암은 조기에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고, 암질환 치료방식도 수술, 항암치료, 방사선치료 등으로 다양화되면서 완치율이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암진단이 환자에게 주는 영향은 클 수밖에 없습니다. 암선고를 받을 때의 충격을 이겨내는 과정으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환자는 변화무쌍한 심리변화를 경험하게 된다고 합니다.

일단 암환자에게 적용할 수 있는 독서치료법을 쉽게 이해하실 수 있도록 이 책의 얼개를 소개하려합니다. <암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한 독서치료>는 크게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장 이야기를 펼치며’에서는 저자가 독서치료라는 독특한 분야를 만나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2장 암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에서는 암질환의 특성, 그리고 암환자와 그 가족에 대하여 이해할 점을 소개하고 있고, ‘3장 암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한 독서치료’에서는 독서치료법을 설명하고 암환자에게 독서치료법의 적용이 가능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4장 암 환자와 가족들을 위한 상황별 독서목록’은 암환자를 진료하고 있는 임상영역에서 암환자 치료에 활용할 수 있는 도서를 선별하여 그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고 있습니다.

1966년 미국도서관협회에서 “정신의학 분야에서 치료적인 보조수단으로서 선정된 독서 자료를 이용하는 것, 개인적인 문제와 직접 관련이 있는 책을 읽음으로써 해결책을 안내하는 것”이라고 내린 독서치료의 정의가 일반화되어 있다고 합니다. 저자는 학자들마다의 다양한 독서치료의 정의와 목적을 소개하고 있습니다만, 저는 “책의 이용은 사람의 전반적인 발달에 영향을 주며, 독자와 문헌 사이의 상호작용과정은 독자의 성격을 평가하고 적응과 성장, 정신적 건강을 위한 목적으로 이용된다. 그리고 선택된 독서 자료에 내재된 생각이 독자들의 정신적 또는 신체적 질병에 치료적인 효과를 줄수 있다”고 한 베스 돌과 캐롤 돌의 주장이 크게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선 독서치료에 대한 개념을 정리할 수 있었고, 4장에서 소개되고 있는 무려 130여권의 책에 담긴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한 글을 통하여 환자의 상황에 맞는 책을 고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전통적인 치료영역에서도 새로 개발되는 시술들이 적절한 보상을 받기까지의 과정이 복잡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독서치료를 임상에서 적용할 여건을 마련하기 어려울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독서치료 역시 전문적인 소양을 갖춘 사람이 광범위한 자료를 검색하여 걸러내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고 환자마다의 특성에 맞도록 책을 고르는 작업도 수월치 않을 것입니다. 또한 저자의 주장대로 책을 읽는 것만으로 치료가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책을 읽은 느낌을 말하고 그 느낌이 구체화되어 치료에 상승작용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전문적인 상담과정이 뒤따라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문헌정보학을 전공한 저자가 책읽기를 치료로 발전시켜나가는 과정을 공부하는데 있어 의학에 대한 충분한 자료검토가 부족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특히 통계는 가급적이면 최근의 자료를 인용해야 함에도 상당히 오래된 통계를 인용하고 있었습니다. 주로 환자 중심의 자료를 많이 인용하고 있어 의료계의 시각으로는 불편할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합니다만, 한편으로는 의료계 역시 환자나 가족들이 의료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해하는 계기가 될 수 있겠다 싶기도 합니다.

“40세 된 남자환자인데 폐암으로 진단받고 수술 후 1달 만에 반대쪽에서 재발했다. 이번에는 항암치료를 해 보자고 해서 치료를 받았는데 주치의에게 치료될 확률을 물으니 1%정도라 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도중하차하고 그 이후에 본원에서 면역요법을 받아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다. 그 후 외래로 다니면서 진료를 받았는데 폐사진과 환자를 번갈아 보면서 ‘이런 상태에서 아직도 살아 있느냐’는 듯이 마치 죽을 사람 대하듯 하는 태도가 너무 부담스러워서 그 자리에서 외래도 그만 다니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본인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그의 표정에서 ‘왜 안 죽고 또 왔느냐’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고 한다. 정확한 것도 좋지만 도대체 희망적인 이야기는 한번도 해 주지 않는 교만함이 싫었다고 한다.(19쪽)”는 부분을 참고합니다. 이 글은 대체의학이라고 주장하는 치료법과 관련된 자료에서 인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 종류의 자료들은 대개는 전통의학의 치료방식을 부정적으로 매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환자에게 근거없는 희망을 주어 환자의 부담을 늘리고, 환자 자신의 삶을 정리할 기회마저도 빼앗는 것이 오히려 비윤리적이라고 해석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도 합니다.

“암환자들은 암 진단 통고를 받은 이후부터 수술, 화학요법과 방사선요법 등을 통한 치료와 치료 후의 전 과정을 통해 궁금한 것이 많지만 이러한 정보요구를 설명해주는 전문의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의사나 간호사들이 나중에 그런 문제들을 차분하게 설명해 줄 것으로 기대하지만, 대부분의 의료진들은 꼭 필요한 질문에도 제대로 대답해주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이기 때문에 환자들은 수술을 앞두고 보통 걱정이 더 많아진다.(37쪽)”는 저자의 설명을 저로서도 이해하기 힘들다는 생각을 합니다. 정말 이럴까요?

하지만 기본적으로 독서치료가 가지는 잠재적 파워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고, 또한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도서목록들도 독서치료에 관심을 가지고 암환자의 독서치료에 적용할 기본틀을 만드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책을 읽고서 관련 학회가 중심이 되어 질환별 독서치료 지침서를 만들면 일선에서 환자를 진료하는 임상의들에게 큰 힘이 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저도 기회가 된다면 저의 관심분야에서 그동안 제가 읽은 책들을 활용한 독서치료 지침서를 만들어볼 욕심이 생겼다는 말씀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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