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수의 의료와 사회>

일반의약품 슈퍼 판매 여부를 둘러싼 일련의 충돌과 갈등에 대한 언론과 오피니언 리더들의 시각은 주로 어느 일방을 집단 이기주의로 몰아가거나 일방적으로 옹호하는 극단적인 찬반 양론으로 갈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정책 결정을 위한 치열한 찬반 논쟁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도대체 왜 우리 보건의료계에서 특정 직역의 이해관계를 둘러싼 충돌이 반복되는지에 대한 근본적 원인 규명과 처방에는 거의 관심이 없어 보인다.

사실 의약분업과 한약분쟁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보건의료계의 이러한 첨예한 직역 갈등이 반복되는 근본적인 뿌리에는 정치권이 풀어야할 직역의 이해관계 조정의 역할을 그러한 역할에 능숙하지도 효과적이지도 않은 정부 관료들에게 맡겨놓는 기형적 정치구조가 있다.

현대 민주주의에서 각 직역 단체들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반영한 의견을 표명하고 이를 관철시키기 위한 다양한 정치참여에 나서는 행동, 소위 말해 로비활동을 그 자체로 ‘집단 이기주의’라며 단죄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본래 권력자들의 횡포로부터 국민들의 이해관계를 보호하기 위해 탄생한 것이 민주주의이며 자신의 이해관계를 반영하기 위한 활동은 정당한 정치활동이다.

문제는 이들의 주장 자체가 아니라 이익갈등을 일정 부분 수용하고 조정하는 매우 정치적인 기능을 정치권이 거의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상적인 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이익대표제도는 바로 정당이다. 정당은 선거제도라는 대표적 평가 수단을 매개로 하여 개인과 각 집단의 요구를 수렴하고 그것을 결집·조정하여 정책에 반영하는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반면에 정부 관료들은 기본적으로 선거라는 절차를 통해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는 과정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조정 기능을 수행하는 데 있어 충분한 민주성을 기대하기 어렵고 그러한 역할에 능숙하지도 않다. 특히 급속한 경제발전 과정에서 행정부 중심의 권위적 통치문화의 잔재가 남아있는 우리의 역사적 배경 탓에 이러한 어려움은 더욱 가중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우리의 현실은 당연히 정치적으로 타결되어야할 이해관계 수렴과 갈등 조절의 기능을 정치권이 손 놓고 있다 보니 결국은 행정 관료들이 이를 떠맡을 수밖에 없었다. 대표적 사례로 2000년 의약분업을 둘러싼 갈등을 조정하는데 각 정당은 아무런 이익 조정 기능을 수행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시민단체의 강력한 개입과 정부의 서툰 조정 기능 탓에 충돌이 효과적으로 봉합되지 못했다. 이번 일반의약품 슈퍼판매 이슈의 경우에도 약사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되어 있는 상황에서도 정치권은 약사회와의 의견조율 책임을 정부로 떠넘겼다.

그렇다면 이해관계를 조절하는 정치권 본연의 책임을 정부에 떠넘긴 정치인들 개개인의 무능함과 무책임을 마냥 비난해야만 할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정치인들은 당연히 선거에서의 당선을 우선적 가치로 삼는다. 본질적으로 공직자들이 모두 성인군자이기를 기대했다면, 국민들이 선거를 통해 그들을 심판하고 견제하도록 하는 민주주의 자체가 불필요했을 것이다. 정치인들이 그러한 책임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은 것은 그들이 비도덕적이라서가 아니라 그렇게 행동하게 한 우리 정치의 구조적 특성에 더 큰 원인이 있다.

우리의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잘게 쪼개어진 지역구에서 1등만이 당선되는 소선거구 및 단순다수제를 기본 틀로 하고 여기에 소수의 비례대표 제도가 가미된 형태이다. 이러한 소선거구 및 단순다수제 중심의 선거제도는 비례대표 중심 선거제도에 비해 정책 이슈에 매우 둔감할 수밖에 없다. 유권자들은 가령 일반의약품 슈퍼판매와 같은 전국적 정책 이슈에 따라 투표를 하기보다는 지역대결구도나 인물, 지역개발 이슈 등에 따라 투표를 하는 경향이 강할 수밖에 없다.

또한 후보들의 당선 여부는 어떤 정책을 입안하고 시행하느냐에 달린 것이 아니라, 얼마나 유리한 지역구에 공천을 받느냐에 달린 구조이다. 당연히 각 정당의 정책에 대해 유권자들의 견해보다는 각 소선거구 내에서 영향력을 가진 특정 조직의 목소리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치권이 국민의 삶과 직결된 정책 이슈들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본연의 조정 기능을 수행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소선거구 및 단순다수제 중심의 선거제도를 극복하고 비례대표제를 대폭 확대하는 형태의 정치 개혁이 필요하다. 이는 단순히 직역 갈등을 조정하는 정당의 기능을 강화하는 것 뿐 아니라 다양한 민생 문제에 보다 책임성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수행하는 정책정당으로의 변신이라는 정치 전반의 선진화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비례대표가 해당 직역의 이해관계만을 대변하는 부작용이 있지 않느냐는 반론이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역시도 정당이 각 정책 이슈에 대해 책임성을 가지고 수렴·조정 기능을 적극적으로 수행하지 못했기 때문에, 개별 정치인의 권한 행사가 종종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정책 정당화의 과제가 이뤄진다면 선진국의 예에서처럼 직역 출신 비례대표 의원들이 오히려 국가기관과 직역간의 충돌에 대한 완충 기능을 수행하는 경우가 지금보다 확대될 수 있을 것이다. 

전경수는?

고려대학교 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보건학석사, 서울시립대에서 행정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의료전문지 기자와 고경화 국회의원 보좌관을 거쳐 현재 한나라당 이애주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재직 중이다.

<*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외부 필진의 글에 대한 다른 생각이나 의견을 보내주시면 적극 반영토록 하겠습니다(bus19@rapportian.com). 혹은 기사 본문 하단의 '독자 첨부뉴스'를 통해 반론이나 의견을 게재할 수도 있습니다.>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