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대(변호사ㆍ법무법인 수호)


변화의 첫 걸음은 국내 의사들의 공급독점의 유지가 어렵게 되는데서 출발한다. 원격진료, 해외진료, 경제특구의 외국병원 설립, 상호승인으로 인한 외국의료진들의 국내 진출 등으로 더 이상 공급 독점은 고수될 수 없다. 의료 서비스의 품질에 대한 규제를 전제로 한다면, 이는 소비자의 의료 선택권의 확대, 치료의 다양화, 의료 기술의 습득 등으로 전체 사회적 후생을 높일 수 있다. 극도의 비탄력적 공급 시장은 새로운 수혈을 통해 보다 유연하고 탄력적인 정상화의 길로 바뀔 수 있다.

또한 건강보험 하에서 전에는 병원에 가지 않던사람도 웬만해도 병원을 찾는 등 의료에 대한 과다 수요로 인하여 한편으로는 공공재원을 고갈시키고, 한편으로는 의료진의 에너지를 탈진시켰던 비정상적 상황은, 투명성의 확보, 요양급여 결정의 합리성 획득, 글로벌 스탠더드의 정립 등의 과정을 통하여 의료 공급자와 수요자를 균형점에서 만날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의료 서비스는 인간의 삶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가장 본질적인 복지 부분임에도, 종래 인술, 윤리, 공익 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 포기하였던 산업적 측면, 과학적 측면, 경영적 측면, 사회 정책적 측면들이 눈앞에서 생생히 서로 비교되는 현실을 직면하면서, 우리를 새로운 자각으로 이끌어 보다 성숙한 자세로 의료복지의 선진화를 이끌 수 있는 그 날을 우리는 모두 기다리고 바라고 있다. 이러한 목표는 지혜와 용기, 그리고 무엇보다 면밀한 검토와 연구를 통한 대안의 마련이 시급하고 필수적이다.

국내의료시장에 새로운 진입자의 출현은 인류보편의 목표인 건강을 증진하는 치료의 문을 더욱 활짝 여는 발판이 되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이해관계의 끈이 얽히고 설켜 더 많은 문제점과 복잡성을 더하는 디스토피아의 그림자를 걱정하는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첫째 도전은 비록 우리의 법정 사회보험이 한미자유무역협정 대상이 아니라 해도, 미국의 거대 민간의료보험 자본의 국내  진출에 의해 의료보험의 지형이 근본적으로 변화하리라는 예상이다. 여기에는 블루크로스 앤 블루실드(Blue Cross & BlueShield)와 같은 의료전문 보험기업 뿐만 아니라 일반 보험회사로서 병원을 자회사로 두고 있는 아테나프루덴셜(Atena-Prudential)이나 유나이티드 패시피케어(United-PacifiCare)와 같은 의료 금융 복합기업도 의료서비스와 의료보험상품 시장에서 모두 시장지배력을 행사하며 건강보험을 왜소화시킬 수있다.

특히 우리의 건강보험은 국민건강보험에 의하여 일종의 자연독점 형태인 공적 독점의 지위를 향유하고 있으나, 본인 부담 부분을 보완하고, 비급여 부분에서 부가서비스를 제공하는 형태의 민간 의료보험기업이 산하의 자회사를 거느리고 패키지로 의료-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의료 시장과 의료보험 시장에서의 경쟁의 폭과 수준을 크게 심화시킬 것이다. 특히 민간 의료보험의 시장규모가 이미 건강보험의 시장규모에 다다른 것으로 평가되는 지금, 경제적 규모 면에서 국민건강보험을 압도하는 민간보험의 출현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둘째 도전은 비록 외국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이 경제자유구역과 제주특별자치도에 제한적으로 허용되는 것이라 해도, 독점적 의료법인의 국내 진출은 그 독점적 지위로 인하여 지역적 제한에도 불구하고, 우리 의료시장의 지형을 크게 바꿀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 의료시장에서도 상위 50개의 독점 의료법인이 전체 의료시장 매출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예를 들어 HCA(Hospital Corporation of America)는 전형적인 주식회사인 ‘씨-콥(c-corp)’에 해당되며, 미국에서 가장 큰 병원 체인을 거느리고 있다.

이러한 네트워크는 국내 수요자들에게 커다란 흡인 요인으로 작용하며, 규모의 경제, 범위의 경제, 지역적 분포의 우위 등 기업적인 강점과 마케팅을 통하여 장기적으로는 국내 시장에서의 생존 가능성이 가장 높게 점쳐질 수 있다. 특히 미국의 입장에서는 자유무역협정을 통하여 만성적인 무역적자를 극복해 보고자 하는 정책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것이므로, 독점의료법인이 그 시장지배력을 해외시장으로 확대하려고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우리의 과제는 어떠한 지렛대로 그 잇점을 흡수하면서도, 국내 의료진의 경쟁력을 유지할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셋째 도전은 비록 외국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의 허용은 제한이 되어 있으나, 비영리법인이나 폐쇄형 의료법인의 진출에 대한 준비는 취약하다는 점이다. 미국의 의료법인의 경우, 영리법인의 비율은 약 20%, 비영리법인의 비율은 약 80%에 해당되어 거대 자본으로 무장한 비영리 의료법인이 진출하는 경우, 이에 대한 규제 준칙은 마련되어 있지 않다. 더욱이, 폐쇄형 의료전문법인의 국내 진출에 대해서는 그 구체적 모습도 그리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영리의료법인에는 회사법 상 일반 주식회사 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법인이 존재한다. 루씨리(Lucy Lee) 병원을 소유하는 THC(Tenet Healthcare Corp.)와 같이 35인 이하의 주주를 가진 폐쇄 법인으로 법인세가 면제되는 이른바 ‘에스 콥(s-corp)’ 형태의 전문법인은 1990년대 의료 법인 양수도, 인수 합병을 이끌고 있다. 회사 채무에 대하여 유한 책임이 인정되는 유한책임회사도 1977년 와이오밍 주에서 인정된 후, 1988년 배당세 면제의 혜택으로 미국 전역에서 유력한 병원 기업 형태로 자리 잡았다. 특히 타 의료진의 의료과오 책임에 대해서 유한책임을 지는 유한책임조합도 흔히 볼 수 있는 의료법인의 형태이다.

자유무역협정의 근본 취지는 일국에서 적법하게 인정되는 사업 형태는 타국에서 인정된다는 것임을 감안하면, 의료경영의 전문성을 지닌 미국 의료전문법인의 진출은 국내 의료 시장의 지형을 크게 바꿀 것이다. 대형화, 세계화로 우수 국내 의료진의 해외교류, 국외 의료진의 교화방문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활발하게 운영될 것이다. 다양한 형태와 서비스의 제공으로 의료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하는 경쟁이 치열하게 될 것이다.

넷째 도전은, 비록 우리나라에 진출하는 미국 의료법인에 대하여 우리 의료법을 적용하고자 하나 자유무역협정을 둘러싼 법적 분쟁 시에 재판규범에 미국법이 역외 적용될 위험에 대한 검토가 필수적이다. 왜냐하면, 미국 연방법 제19권 관세법 13장에는 ‘미국이 다른 나라와 체결한 자유무역협정과 미국의 자국법이 상충될 때에는 미국의 자국법이 우선한다.’는 규정이 ‘U.S. Statue fo Prevail in Conflict’라는 제목 하에 상세하게 규정되어 미국법의 역외적용의 원칙을 분명히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미국이 체결하는 자유무역협정은 기본적으로 미국의 자국법에 저촉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한미자유무역협정은 아예 관세율을 정하고 있는 미국 연방법 제19권 관세법(Customs &Duties)의 일부에 포섭될 것이다. 예를 들어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는 연방법 제19권 제21장으로, 도미니카 등 중미자유무역협정은 제26장에 편입되어 있다. 이러한 점에서 미국이 체결하는 자유무역협정은 상대국에 대하여 미국법의 역외적용의 범위를 확대하는 ‘트로이의 목마’에 비교될 수 있다.

즉, 미국은 양자간 자유무역협정을 미국법에 포섭하여 일관성을 유지하는 반면, 우리는 1차적으로 한국법을 위 자유무역협정에 맞추어 운영하여야 하는 동시에 한미자유무역협정의 운영에 관한 한 한국법도 미국법과 상충해서는 안된다는 부담을 갖게 되는 사슬에 묶이게 된다.

"자유무역협정 이행을 위해 미국법에 상충되는 한국법의 문자를 고쳐야" 더욱이 공평해야 할 규범 운영의 균형도 잃게 된다. 관세법이란 무역에 부과되는 세율을 정하는 법이므로, 양자간 자유무역협정에는 양 국가간의 관세율이 정해진다. 즉, 수출입 물건이나 용역의 구체적 관세율을 정한 숫자를 표시하는 것이 그 본질적 내용이다. 따라서 한미자유무역협정에 관한 우리의 혜택은 대비 수출품에 대한 관세율의 숫자를 낮춘 것이다. 그러나 그 대가는 단지 숫자를 고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유무역협정의 이행을 위하여 미국법에 상충되는 한국법의 문자를 고쳐야 한다.

이미 한미 자유무역협정으로 변경되어야 할 국내법의 개정절차가 진행 중이며, 앞으로 분쟁과 해석 상 불일치를 통하여 수정되는 내용은 더욱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의료 규범에 용해되어 있는 법의 취지와 철학이 미국법에 의하여 어떻게 변용될 위험이 있는지에 관한 철저한 검토가 필요하다. 우리의 의료 주권에 관한 공동체고유의 선택이 타국과의 관세율 협약에 의하여 영구히 바뀌는 결과는 결코 우리에게 유익하다고 볼 수 없다. 자유무역의 신봉자인 미 컬럼비아 대학의 바그와티 교수조차 경고했듯이 ‘광기와 혼란과 투기적 과잉’이 무역협정에 의하여 정당화될 수는 없는 것이기에 의료 복지의 대의가 개방의 물결 속에서 어떻게 지켜지고 발전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준비의 시간과 역량이 부족했음을 고해하는 것이 오늘 새로운 시작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미국 의료서비스 시장을 압도하고 있는 이른바 ‘의료경영법인’의 국내 진출을 과연 이러한 형태의 서비스 제공자를 상정하고 있지 않은 국내 의료법으로 규율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의료경영법인은 의료진과 수요자에 대한 재원조달, 포괄적 서비스 제공을 보장한다. 의료경영법인은 환자에게도 진료비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고, 의료진에 대해서도 장기 계약으로 진료비 보상을 책임진다. 환자들이 선호하는 우수한 의료진과 계약을 맺어 수요자를 유도하고, 의료진에게는 더 많은 보수를 지급하여 경쟁력을 확보한다. 의료진과 수요자를 계약 관계를 통하여 적절하게 관리하며, 의료 파이낸싱 전문가들이 철저하게 재무자원과 인력자원을 통제하고, 마케팅 전략을 구사한다. HTIHealth Services. Inc.는 이러한 이른바 관리의료회사의 대표격으로 병원 경영의 합리적 모델을 제시한다.

의료경영법인의 기본 모형은 보험기업이 네트워크 병원을 형성하고, 환자들이 해당 네트워크 내에 있는 병원의 의사들에게만 치료를 받도록 하는 방식이며, 네트워크 내 진료에 대해서만 보험금 지급이 이루어진다. 보다 진전된 형태의 모형은 네트워크 밖의 병원의 의료진에게 받은 치료도 보험처리를 해주는 방식인데, 이 때 본인 부담금은 네트워크 내에서 받은 때보다 본인 부담금이 높아진다. 네트워크 범위가 가장 넓은 선택진료보험은 진료의 난이도와 진료 시간에 따라 보험금을 세분화하여 환자의 선택을 최대한 보장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단순히 ‘외국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이라는 추상적 단어만 규정하고 있고, 보건의료서비스는 개방되지 않는다고 강변하는 상황에서, 다종다양한 형태의 의료 서비스 공급자의 출현은 국내 의료 시장에 대한 예측가능성에 커다란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성찰과 대안의 모색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북미 자유무역협정 국가들에서 벌어진 미국의 의료 서비스 부문 투자자들의 소송의 경험은 비록 한미 자유무역협정과의 부분적 차이가 있음을 감안해도 우리에게 큰 교훈을 주는 경험이다.

캐나다에서 2008년 7월 제기된 투자자-정부 소송의 원고는 미국 의료경영법인인 CHC(Centurion Health Corporation)로 캐나다에서 민영 헬스케어 시스템을 개설하고자 하였으나 규제로 인하여 좌절되었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하였다. 이 소송은 중재로 종결되었음에도 그 과정에서 캐나다의 건강보험제도가 미국의 민영보험회사의 위협으로부터 철저히 보호된다고 주장한 정부의 책임을 묻는 정치적 문제로까지 비화되었고, 캐나다의 의료 자주권을 위협한 주요 사례로 평가받는다. 나아가 캐나다에서 점차 확대되고 있는 민영의료보험 시장은 공공질서 유지를 위한 유보조항에 해당되지 않으므로, 완전 경쟁이 허용되어야 한다는 해석론이 자리 잡았다.

멕시코에서도 의료 기기, 장비 시장에서의 압도적 우위를 지닌 미국 투자자들의 시장 지배가 현실화 되었다. 즉, 북남미를 통틀어서 브라질에 이어 제2의 미국의료장비 수입국이 되었으며, 연간 20% 성장, 70% 시장점유율을 기록하였다. 자유무역협정은 WTO, GATT, GATS와 같은 다자간 수준의 국제 규범의 틀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확립된 국제법에 의하여 일방적인 자유무역협정의 운영을 견제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들에 주목해야 한다. 예를 들어, GATT 제20장은 공공복리를 위한 당사국의 국내 규제를 폭넓게 인정하고 있으며, 이는 캐나다가 NAFTA 분쟁에서 공공 보건체계를 유지하는 데에도 유용하게 활용된 바 있다.

국제 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한 공동체가 그 기반을 형성하는 공공의 이익에 대하여 산업적 측면과 아울러 건강 증진의 보편성을 확대하는 국가적 의무의 측면을 아울러 고려해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축적된 경험을 우리의 것으로 내면화하는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북미자유협정에서 캐나다는 미국의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가 GATS가 보장하는 서비스 자유화 정신에 반한다는 주장을 통하여 자국의 건강보험 체계 수호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그들이 트로이 목마를 보냈다면, 우리도 의료개방의 과실을 공동체 모두에게 전달시킬 수 있는 적토마를 보내야 하리라. 오늘은 그러한 우리의 결의를 실천하는 첫 번째 날이 되어야 한다.

[알립니다]

이 글은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에서 최근 발행한 '계간의료정책포럼 제9권 4호'에 게재된 것으로, 의료정책연구소의 양해를 구하고 본지에 전문을 재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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