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포르시안] "저희 아버지께서 대장암 3기인데 일반항암제를 썼다가 전이 되어서 표적항암제(얼비툭스-한국마크)로 치료중입니다. 거의 다 나았다고 할 때 쯤 표적항암제가 너무 비싸서 일반항암제를 썼다가 재발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표적항암제를 한번 맞았더니 암수치가 내려갔습니다. 표적항암제가 한병에 250만원인데, 한달에 두 번 맞으면 500만원입니다. 암환자라서 취업을 할수도 없고, 잘 먹어야 되기 때문에 생활비까지 하면 한달에 700만원 씩 들어갑니다. 1년에 항암제 비용만 6,000만원에 병원비, 생활비까지 더하면 1년 동안 1억원 가까이 듭니다. 2년째 치료 중이라서 이제는 치료비 때문에 가족의 해체위기까지 느끼고 있습니다. 이 표적항암제가 언제쯤 건강보험 적용이 될런지 답답할 뿐입니다"

2012년 8월 30일자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홈페이지의 건의제안 게시판에 암환자 가족이 올린 글의 내용 중 일부이다. 이 환자가 애타게 요청한 대장암 표적항암제는 2014년 3월부터 건강보험 적용을 받기 시작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면서 1개월에 400~500만원에 달하던 환자의 약값 본인부담은 20만원 밑으로 떨어졌다. 

문득 이런 궁금증이 들었다. 표적항암제의 건강보험 적용을 호소한 글을 올린 사람의 아버지는 지금도 생존해 있을까, 혹시 약값 부담 때문에 가족이 해체되는 상황을 맞지는 않았을까. 지금까지 비싼 약값 때문에 적극적인 치료를 받지 못하거나, 혹은 고가항암제의 건강보험 급여 등재를 기다리며 비싼 약값 부담에 허덕이다가 숨진 암환자는 얼마나 될까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심평원 홈페이지의 건의제안 게시판을 살펴봤더니 눈에 띄는 대목이 있었다. 지난 2015년까지는 주로 표적항암제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을 촉구하는 글이 많았다. 그러다 2016년부터는 면역항암제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을 요청하는 암환자 가족들의 글이 쏟아졌다는 점이다. '3세대 항암제'로 불리는 면역항암제는 기존의 암세포를 제거하는 작용기전과 달리 암환자의 면역기능을 강화함으로써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인식해 공격하도록 작용한다. 국내에는 2015년 말 미국의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면역항암제를 이용해 뇌까지 전이된 흑색종을 완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현재 국내에도 '옵디보'와 '여보이', '키트루다' 등 3개의 면역항암제가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승인을 받고 출시되면서 암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품게 만들었다. 기존 표적항암제의 내성 문제를 극복하고, 여러 임상시험을 통해 높은 생존율 개선 효과를 보인 키트루다와 옵디보는 악성 흑색종에 이어 전이성 비소세포폐암으로 적응증이 확대됐다. 면역항암제는 기존 항암약물로 치료를 포기했던 암환자들에게 보다 폭넓은 치료혜택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품게 했다. 하지만 암환자들의 기대감은 이내 절망으로 바뀌었다. 면역항암제의 약값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고가이기 때문이다. 키트루다와 옵디보의 1년 치 약값만 1억원을 훌쩍 넘는다. 어지간한 경제력이 아니라면 꿈도 꾸기 힘든 수준의 약값이다. 최근 이들 면역항암제를 공급하는 제약사들이 각각 30~35%씩 약가를 자진 인하했다. 하지만 여전히 1년치 약값이 7,000만원을 넘는 수준이다. 다행히 얼마 전부터 면역항암제의 건강보험 적용을 위한 급여등재 절차가 시작됐다. 그 때문인지 면역항암제의 조속한 건강보험 적용을 호소하는 글이 심평원 홈페이지 게시판에 끊이질 않고 올라온다.

안타깝게도 면역항암제의 건강보험 적용을 기다리는 암환자들의 희망고문은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다. 키트루다와 옵디보 같은 신약이 건강보험 등재까지 걸리는 법적 처리기간은 240일 이내로 규정돼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신약의 급여 등재까지 소요되는 기간은 600일 정도 걸렸다. 최근에는 심평원 등의 처리기간 단축 노력을 통해 그 기간이 평균 330일로 단축됐다고 한다. 하지만 심의 과정에서 제출자료를 보완할 경우 기간은 더 늘어나고, 최악에는 보험급여 판정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정부 입장에서도 연간 1억원에 육박하는 고가의 면역항암제에 급여를 적용할 경우 막대한 건강보험 재정 부담이 따르기 때문에 신중하게 판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건강보험 급여를 적용하는 데 있어서 제한된 재정을 놓고 다른 질환을 앓는 환자들과의 '분배정의(Distributive Justice)'도 따져봐야 한다. 가뜩이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가 암과 같은 중증질환에 편중되면서 다른 질환과의 형평성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2014년 기준으로 전체 질환의 건강보험 보장률은 63%에 그쳤지만 암과 심장병 등 4대 중증질환의 보장률은 80%에 육박할 정도로 차이가 났다. 이런 상황에서 고가 면역항암제의 건강보험 적용은 또 다른 형평성 논란을 초래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비싼 약값 때문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마지막 희망의 끈을 붙잡고 있는 암환자와 그 가족들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는 문제다. 의료전문가들은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고가항암제의 건강보험 적용시 현재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5% 본인부담을 질환의 발생빈도, 약제의 경제성, 치료기간 등을 따져 5%에서 50%까지 차등 적용하는 방식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 또한 고가항암제와 희귀질환치료제 등에 대한 환자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2013년 말 도입한 '위험분담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혁신적인 신약인 면역항암제의 건강보험 보험급여 방식을 좀 더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게 많은 의료전문가의 의견이다.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비싼 약값을 마련하기 위해 처음에는 살던 집을 팔아 전세로 옮기고, 전세에서 다시 월세로 옮긴다. 더는 못 버틸 지경이 되면 치료를 포기하고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이미 그때는 환자뿐만 아니라 그 가족들의 삶도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뒤다. 한국사회에서 감당하기 힘든 재난적 의료비 폭탄을 맞고 '메디컬 푸어(Medical Poor)'로 전락하는 전형적인 과정이다.

현재 17조원이 넘는 사상 최고치의 건강보험 재정의 누적 적립금이 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싼 약값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거나, 치료비 마련을 위해 집을 팔고 빚을 내 의료빈곤층으로 전락하는 상황을 내버려두는 건 모순이다. 돈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거나 가족을 위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환자가 더는 없어야 한다. 돈보다 생명이다. 건강보험제도가 추구해야 할 가치로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게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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