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건강증진연구소 서리풀 논평] 사드 - ‘제국’의 포로가 된 ‘민중’의 삶과 건강

[라포르시안]  이 땅의 그 누구도 격랑을 피해갈 수 없다면, 이 주간 논평 또한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사드) 배치에 의견을 밝히는 것이 의무일 것이다. 우리 스스로 좋은 삶과 사회를 만들어가는 책임을 공유한다고 천명한 터에, 거기에 통째로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결정을 수수방관할 수 없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는 사드 배치에 반대한다.    

시민건강증진연구소가 주업으로 삼고 있는 건강 문제는 부차적이다. 강력한 전자파가 주변 지역 주민들의 건강을 위협한다고 하니, 보건 이슈가 포함되어 있고 그 역시 중요하다. 하지만 사드 배치는 어느 특정 영역에 속한 것이 아니라 이 땅 모든 사람의 삶을 전면적으로 위협하는 ‘보편’의 문제다.

그리하여 우선 강력하게 요구한다. 모든 문제를 민주적으로, 그리고 투명하게 결정하라. 안보와 군사 기밀이 어떻다는 말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용어와 개념으로, 숨기고 얼버무리지 말라. ‘민주공화국’이 헌정의 기본 원리라면, 나의 운명에 영향을 미치는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가 아닌가.

어느 지역에 배치하는 것이 알맞다고, 주민에게 묻는 정도가 아니다. 텔레비전의 사이비 토론은 더구나 아니다. 북한의 군사위협, 그리고 한반도의 평화와 국제관계에 이르기까지, 이 사회의 평범한 구성원이 알고, 생각하며, 토론한 후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사드 또한 더 많고 깊은 민주주의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 아니, 이런 중요한 일일수록 더욱 민주적이어야 한다.

민주적으로 토론하자고 요구했지만, 어떻게 토론하든 우리는 사드 배치가 잘못된 것이라는 결론에 이를 것으로 확신한다. 한 가지 명확한 기준, 적어도 한반도의 평화와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안위와는 무관한 것이 분명하다.

국방부의 설명부터 앞뒤가 맞지 않으니, 사드의 유용성 시비는 (논란거리로 만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부풀려진 것이다. 우선 북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비한다는 이유를 아무리 뜯어봐도 이해할 수 없다. 칠곡에 배치하면 수도권은 제외되고, 수도권에 배치하면 북한의 공격에 무력하다? ‘고각도’니 ‘SLBM’이니 온갖 어려운 말을 동원하지만, 어디를 어떻게 방어하겠다는 데서 앞뒤가 맞지 않는다.  

북한이 1000기 이상 보유하고 있다는 단거리 미사일은 아예 방어 대상도 아니라니(단거리 미사일은 사드가 작동하는 40킬로미터 이상 상공으로는 비행하지 않는다고 한다), 기가 막힌다. 제2의 이승만도 아니고, 수도권 방어는 어디로 갔는가? 국방부의 공식 블로그는 이런 비판에 어떤 답도 하지 않는다(바로가기).

결국, 사드의 뛰어나다는 능력(?)을 다 인정하고 ‘방어용’이라는 것을 굳게 믿는다 하더라도 목적 또는 목적 대상을 다시 물을 수밖에 없다. 무엇을 방어하고 누구를 지키려는 것인가? 한반도의 99% ‘민중’(어떤 교육부 고위관리는 개, 돼지라고 했다지만)인가, 주한 미군인가, 그도 아니면 미국 본토와 그 주민인가?    

지금으로써는 한국에 사드를 배치하는 것이 오로지 미국 본토용이라는 것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자세한 내용은 다음을 참고할 것. 바로가기). 사드가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할 때, 그 대상은 한반도와 한국민이 아니라 미국과 미국민인 셈이다.

여기에 이르면, (특히 한국에게) 미국은 ‘제국’이라는 말을 빼고 설명할 수 없다. ‘팍스 아메리카나’라는 말로 고상하게 표현해도, ‘일극 체제’라고 무미건조하게 나타내도, ‘중심’으로서의 미국은 마찬가지다. 작고 약한 나라를 침략한다는 의미가 강한 제국주의라는 말조차, ‘주의’를 떼어놓으니 오히려 ‘제국’의 힘과 범위가 축소되는 느낌이다.   

제국은 그 본질로 전면적이며, 따라서 사드 배치를 관철하는 제국의 힘은 단지 군사에 그치지 않는다. 언뜻 보면 가장 비정치적이고 비군사적인 것으로 보일 수 있는 보건에서도 제국의 그림자가 어른거릴 정도니. 우리는 최근 몇 년간, 특히 에볼라 유행 이후 더욱 관심이 커진 ‘국제보건안보(Global Health Security)’를 주목한다.  

바로 미국이 국제보건안보 프로그램을 주도하고 있고 2014년에는 50개 나라 이상을 모아 ‘국제보건안보 아젠다’라는 것을 만들었다(바로가기). 한국도 (당연히) 회원 국가다. 멀쩡하게 움직이는 세계보건기구나 유엔이 아니라 미국이 직접 나섰다는 것, 그리고 9·11 테러가 직접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 심상치 않다. 

배경 설명은 그럴싸하다. 에볼라와 메르스, 지카처럼 국경을 넘나드는 감염병, 또는 항생제 저항 문제에 여러 나라의 협력과 공조가 필요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과학과 기술의 측면에서 미국이 지도적 역할을 하는 것도 현실이다. 그런데, 이것을 ‘안보’로 접근한다! 그것도(또는 그러므로) 세계보건기구나 유엔이 아닌 미국이 주도해서.

미국 보건부의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는 ‘국제보건안보 아젠다’의 설명문, 그 첫 문장은 의미심장하다. “지금 국제보건안보는 미국과 미국 국민의 웰빙에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바로가기). 9·11 테러가 직접 계기가 된 것도 그렇지만, 인류의 건강과 공동 번영이 아니라 자국(민)의 이해관계 때문에 국제보건안보에 관심을 기울인다고 해석해야 한다.

‘제국’으로 연결해 함께 생각하면, 사드 배치와 국제보건안보의 공통점 몇 가지가 스스로 드러난다. 첫째, 제국의 개입은 국가적이고 체제적이다. 사드가 군사, 안보용이라고 하지만, 군수산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니 또한 경제와 국내 정치에도 걸쳐 있다(바로가기). 이와 마찬가지로, 국제보건안보도 한두 분야나 부처를 넘는다. 미국 보건부가 작성한 <2015~2018년 국가보건안보 전략과 실행계획>을 보자.

“국제보건안보 아젠다에 속한 질병통제국, 국무부, 국방부는 다른 정부 부처나 국가와 협력하여 응급센터 설치, 정보체계 구축, 실험실 역량 강화, 생물학적 대처 능력 향상 등을 수행한다.” (바로가기, 30쪽).  

박근혜 대통령이 2015년 9월 8일 오후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15 글로벌보건안보구상(GHSA) 서울 고위급 회의 공식만찬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청와대

두 번째 특징은 철저하게 이해관계에 봉사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공정하고 균형 잡힌 것이 아니라 기울어진 권력관계에 종속된다. 미국의 관점에서 본 한국의 사드 배치는 이미 말했으니, 한국의 평화체제는 두 번째 관심사일 것이다. 

국제보건도 마찬가지다. 제국 중심부가 일차 관심이라면, 인도주의 관점에서 다른 나라의 건강과 보건문제를 볼 가능성은 크지 않다. 어떤 나라에서 에볼라 같은 감염병이 유행해도 관심은 그 나라 밖으로 나오지 않고 ‘우리’ (미국)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본질이 이런 것이면, 국제보건안보는 인도주의적 협력과 도움보다는 자칫 긴장과 갈등의 원천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바로가기). 제국주의적이 된다면, 또는 군사와 공격을 포함되면 더 말할 것도 없다(안보에서 ‘방어용’이라는 말은 얼마나 위선적인가). 

세 번째가 가장 중요한데, 제국의 질서가 초래하는 결과가 파괴적이다. 제국에 종속되는 한 ‘주변부’의 불행은 분명하다. 작은 나라, 약소국의 자존심이나 자결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운명적으로 그런 국민국가에 속한 보통 사람들이 겪어야 할 ‘현실’의 고통은 제국의 이해관계 바깥에 있다.

칠곡의 사드 부대나 평택의 탄저균 실험실 사고가 워싱턴에 위해를 줄 까닭이 없다. 전쟁의 위협, 전자파의 피해, 탄저균 사고에 의한 감염병 유행, 또는 중국발 경제 피해, 그 무엇이든 피해는 주변부와 변경에 속한다. 그것도 1%는 어떻게든 면제되고 그저 평범한 99%로 집중될 것이 뻔하다.   

일이 이런 지경인데도, 아직 무슨 방법이 남았을까. 우선, 비관과 냉소를 이겨야 할 것 같다. 남북관계가 최악의 상황이지만, 불가역이 아니다. 힘이 모든 것을 말하는 냉엄한 국제 관계를 고려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압도적인 ‘제국’조차 수많은 틈을 가지고 있는 것도 기회다.

또한, 전쟁 중에도 협상을 계속하고, 압도적인 힘을 가진 강대국도 모든 것을 관철할 수 없는 것, 그것이 국제 정치의 본질이 아닌가. 북한과 미국이 대화 창구를 닫지 않는 것, 또는 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중국과 러시아가 힘을 겨루겠다고 나서는 것, 그 모두가 어떤 경우에도 낙관적이어야 할 근거다. 더구나 (말뿐이라 하더라도) 평화와 공존, 자결이 그나마 모든 국가가 동의하는 국제 질서의 규범이라면.

스스로 제국의 주변부 처지를 굳힐 이유가 없으니, 그 모든 것의 이유가 되는 것은 남북한의 군사적 긴장 관계다. 사드 배치가 아니라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더 급박하고 중요하다.  


 [알립니다] 본지에서는 시민건강증진연구소의 '서리풀 논평'을 매주 게재합니다. 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건강과 보건의료에서 최선, 최고의 대안을 제시하는 싱크탱크' '진보적 연구자와 활동가를 배출하는 연구공동체'를 비전으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시민건강증진연구소 홈페이지 바로가기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