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사 임상시험에 급여 혜택·신약 약가우대 추진…건강보험 보장률은 수년째 제자리걸음

[라포르시안] 건강보험 재정이 2011년 이후 5년 연속 당기흑자를 기록하면서 누적 적립금이 17조원을 넘어섰다. 반면 건강보험의 보장률은 2009년 65%를 정점으로 2010년부터 지속적으로 하락해 2013년에는 62%까지 떨어졌다. 그마나 2014년에 63.2%로 소폭 올랐다.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건강보험 재정 흑자를 보장성 확대에 사용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건강보험 흑자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지만 박근혜 정부는 4대 중증질환 진료비 전액 국가부담이란 대선 공약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의세계화를 명분으로 제약과 의료기기 등의 의료산업 육성에 건강보험 흑자를 지원하려 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7일 열린 제10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발표한 '의약품·의료기기 글로벌 시장창출 전략'이 대표적이다.

복지부는 글로벌 의약품 개발을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실거래가에 의한 약가 인하제도 개선안'을 마련했다.

이 개선안은 국내 제약사의 글로벌 의약품 연구개발 투자를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그동안 제약업계가 요구한 약가 우대 방안을 상당수 수용했다.

개선안에 따르면 임상적 유용성이 개선되고 국내 임상·R&D 투자 등 보건의료 향상에 기여한 '글로벌 혁신신약'의 경우 약가를 우대하고 보험급여 등재기간을 단축하는 혜택을 준다.  

글로벌 혁신신약에 대해서 대체약제 최고가의 10%를 가산하고, 대체약제가 없는 항암제 등 경제성 평가 면제 대상은 G7 국가의 유사약제 가격(조정최저가)를 적용한다.

국내 보건의료 향상에 기여한 바이오시밀러와 바이오베터의 약가도 우대한다. 

혁신형 제약기업·공동개발·국내 임상 등 보건의료 기여가 인정된 바이오시밀러는 현재 최초등재품목(오리지널) 약가의 70&를 적용하는 것에서 10%p를 가산해 80%까지 우대할 계획이다.

이미 허가된 생물의약품에 비해 안전성·유효성 또는 유용성 등을 개선한 바이오베터는 개량신약(합성의약품)보다 10%p 우대해 개발목표제품(오리지널 등) 약가의 100~120%로 산정키로 했다.

지난 7월 7일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10차 무역투자진흥회의' 결과 관계부처 합동브리핑 모습. 사진 왼쪽부터 정진엽 복지부 장관, 최양희 미래부 장관, 유일호 부총리, 주형환 산업부 장관, 이동필 농식품부 장관. 사진 제공: 기획재정부

특히 글로벌 혁신신약에 대해서는 환급제 등을 통해 특허기간까지 약가인하를 유예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현재 신약의 보험급여 등재 당시 예상보다 더 많이 판매돼 보험재정에 부담을 주는 약품의 경우 제약사와 건강보험공단이 협상으로 약가를 최대 5%(등재 후 사용범위가 확대됐을 때)에서 최대 10%(사용량이 증가된 경우) 인하하거나 실거래가 조사를 통해 최대 10% 인하하고 있다.

정부는 약가제도 개선방안을 통해 글로벌 혁신신약의 경우 특허만료 전까지 이러한 방식의 약가인하 적용을 유예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제약업계는 이런 약가제도 개산안을 적극 반기고 있다. 한국제약협회는 지난 7일 공식입장을 통해 "이번에 발표된 ‘글로벌 혁신신약 약가제도 개선방안’은 미국과 유럽, 중남미 등 세계 각국으로 지평을 넓히고 있는 국내 개발 신약의 시장확대에 큰 힘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이번 육성방안은 산업현장이 체감하고 연구개발 의욕을 북돋는 정책적 격려가 될 것임을 확신한다. 정부가 글로벌 진출 신약에 대해선 ‘확실하게 지원한다’는 신호를 보냄에 따라 글로벌 신약 개발의 동기가 한층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의 약가우대 정책은 결국 건강보험 재정에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

시민사회단체는 "정부의 각종 의료민영화 정책은 건강보험재정을 의료산업화의 자산처럼 활용하려 한다"며 "건강보험 흑자를 가입자인 국민들이 아닌 기업과 자본을 위해 사용하려는 시도를 중단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7일 발표한 <의약품․의료기기 글로벌 시장창출 전략> 중에서 약가 개선 관련 주요 내용.

제약사 신약개발에 건강보험 혜택이뿐만이 아니다.

정부는 제약사의 신약 연구개발에 건강보험 재정을 지원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앞서 복지부는 지난 4월 14일 첨단의료복합단지 내 임상연구의 특례 조항을 신설한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의 기준에 관한 규칙' 일부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규칙 개정안은 복지부장관이 '첨단의료복합단지 지정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따른 첨단의료복합단지에 소재한 의료연구개발기관에 해당하는 요양기관의 임상연구에 참여할 경우 건강보험 급여를 적용할 수 있도록 했다.  

첨단의료복합단지는 제약사와 의료기기업체의 신약개발 및 첨단의료기기 개발을 지원할 수 있는 기반시설 인프라를 확충, 보건의료산업을 육성하는 취지로 조성됐다.

당연히 첨단의료복합단지 내 의료기관에서 진행되는 임상연구는 제약사의 신약개발과 의료기기업체의 제품 개발을 지원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여기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건 사실상 제약사의 신약 연구개발을 위한 임상시험에 건강보험 지원 혜택을 주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18대 대통령 선거 당시 새누리당이 작성한 정책공약집 중에서.

더 황당한 건 건강보험 흑자분을 해외·대체투자 등의 방식을 통해 자산운용을 해 수익률을 높이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3월 29일 '제1차 사회보험 재정건전화 정책협의회'를 개최한 데 이어 지난 4월 20일 7대 사회보험 자산운용 단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사회보험 자산운용 협의회'를 결성했다.

이를 통해서 건강보험 등 7대 사회보험의 누적적립금을 해외 투자나 대체 투자 등의 방식으로 적극적인 자산운용을 해 수익률을 높이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현행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르면 건강보험 누적적립금은 ‘부족한 보험급여 비용에 충당하거나 지출할 현금이 부족할 때 외에는 사용할 수 없’다고 규정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용도로 전용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국민의 생명을 위해 쓰여할 돈으로 돈놀이를 하겠다는 비상식적인 발상"이라는 비난이 제기되고 있다.

사회진보연대는 "건강보험 누적흑자는 지속적인 경제침체로 인해 환자들이 아파도 병원에 가지 않아 발생한 것이고, 따라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에 써야 한다고 요구해왔던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정부가 묵살하고 있다"며 "건강보험의 보장성은 제자리걸음인데 오히려 건강보험으로 수가 인상, 원격의료 시범사업, 제약회사 임상시험 지원 등의 계획만 부각하고 있다. 정부가 규제완화 정책을 쏟아낼 때마다 주식투자자들이 환호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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