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늘 아픈가 / 크리스티안 구트 지음 / 유영미 옮김 / 부키 펴냄, 2016년

[라포르시안] 평소에 건강한 편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만, 최근에는 몸이 예전 같지는 않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9년 전에 불어난 체중을 줄이기 위하여 시작한 걷기가 건강에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소소한 불편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가 봅니다.

몸이 보내는 소소한 신호를 무시하는 것은 잔병을 키울 수도 있어서 문제가 되지만, 정말 소소한 신호에 목을 매는 것 또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의학이 산업화되어가고 있는 현실에서는 자칫 불필요하게 큰돈을 지출한다거나 건강염려증이라는 불치(?)의 병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제 경우는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는 편은 아닙니다. 나름대로 판단해서 병원에 갈 것인지 아니면 대증적인 치료를 할 것인지를 결정하곤 합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의학을 공부한 덕을 보는 셈입니다.

이번 주에 소개하는 <나는 왜 늘 아픈 가>는 건강문제를 해결하는 길을 안내하는 좋은 지침서입니다. 저자는 의학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독일의 신경과 의사 크리스티안 구트 박사입니다. 50살을 앞둔 저자 역시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에서 건강검진을 받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책은 현대인의 건강 강박증을 진단하고 대안적 건강 가이드를 제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오지랖이 넓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떻든 건강검진을 위하여 가정의학과 의사를 만나게 된 저자는 검진의가 던지는 날카로운 질문과 문제제기에 속수무책이었다는 점을 고백합니다. 담배는 피우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해도, 젊어서부터 무절제하게 마셔온 술이나 잘못된 식생활이 늙었을 때 건강에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하고 대사이상 검사, 심장 검사, 전신 내시경검사 등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검사를 마치던 날 저자는 검사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퇴근 후 와인으로 자축하기로 했답니다. 그런데 한 잔으로 시작한 와인이 두병으로 끝이 났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저자는 혼자 사는 모양입니다. 와인이 두병이 될 때 잔소리하는 아내가 없었던 것 같아서 말입니다.

다음 날 아침 일정에 차질을 빚게 된 저자는 내친 김에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인지를 고민하였다고 합니다.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술과 기름진 음식을 포기하고 세계 최장수 노인으로 등극하는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죽음에 굴복하여 수도사처럼 사는 금욕적인 삶을 포기하고 지금처럼 즐겁게 살다가  보기에도 끔찍한 몰골로 죽음을 맞을 것인가? 저자가 보기에는 어느 것도 매력적이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결국 제3의 길을 모색하게 되었고, 그 결과를 이 책에 담았다고 했습니다.

저자는 그런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의학이 내세우는 무조건적인 약속을 신뢰하고 따를 것인가? 과연 얼마나 예방이 가능하고, 얼마나 건강해질 수 있을까? 운동, 영양, 유전자 검사, 예방… 나는 이런 문들을 좀 더 캐어 들어가고 싶었고, 이런 일로 가장 이득을 얻는 자가 누구인지 알아보고 싶었다. 나인지, 의사인지, 건강에 지나치게 신경 쓰는 인간 이성인지. (16쪽)” 현대의학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책을 읽을 때 저 나름대로 저자의 의도를 짚어보려고 노력합니다. 비전문가가 경험으로 체득한 바를 바탕으로 현대의학을 맹목적으로 부정하는 경우이거나, 전문가이면서도 특정 요법을 강조하는 경우라면, 일단 경계태세를 갖추고 읽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나는 왜 늘 아픈 가>의 경우는 두 가지의 어디에서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편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일단 중립적인 시각으로 건강문제에 접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왜 늘 아픈 가>에서 저자가 다루고 있는 주제는 장수, 건강한 노년, 운동, 음식, 흡연, 중독, 대체요법, 감염, 건강검진, 유전자검사, 남녀의 성적 차이, 하이테크 의료서비스, 신종질환, 인터넷 건강정보, 약품 등입니다. 주제는 같지만 논의 대상을 달리한 경우도 있어서 모두 23꼭지로 된 이야깃거리는 어느 하나 소홀한 것이 없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장수’에 제일 관심이 많은 모양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장수로 이야기를 시작해서 장수로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요즈음 문상을 다니다 보면 돌아가신 분들의 연세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기본이 7순이고 9순인 경우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오래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2015년 우리나라사람들의 평균수명은 남성은 78.5세이고 여성은 85.1세입니다. 1970년 남성의 평균수명은 58.7세, 여성의 평균수명은 65.6세였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발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변화는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었고 우리나라의 의학기술이 선진국 수준으로 발전한데 힘입은 것입니다.

평균수명의 확대로 생각지 못한 부작용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바로 노화입니다. 노화는 크게 두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암이나 고혈압 당뇨, 치매와 같은 만성질환으로 고통 받을 가능성이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사회적으로는 저출산과 겹쳐서 노령인구의 비중이 빠르게 커지면서 사회적 부담이 급속하게 늘고 있다는 점입니다. 노년층을 부양할 젊은이들이 오히려 직업을 구하지 못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어 사회적 갈등의 수위도 같이 올라가고 있습니다. 사회적인 문제는 그렇다고 쳐도, 사회와 개인의 공동문제라고 할 건강의 문제에 관해서는 제가 하고 있는 업무와도 관련이 있으니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습니다.

건강하게 늙어가는 것은 장수보다 더 큰 희망사항이 되고 있습니다. 건강한 노년을 위해서는 젊어서부터 건강에 관심을 가지고 식생활은 물론 운동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관리를 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개인의 건강상태에 간여하는 요인은 식생활이나 운동 이외에도 유전적 소인이나 환경적 요인까지 복잡하게 개입되어 있고, 제시되는 근거라는 것도 집단으로 구분하여 비교한 통계적 자료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개인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한계는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계적 의미는 분명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것은 좋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스스로도 기름진 음식을 탐하는 편이라고 생각하는 저자이지만, 적어도 음식물의 섭취량을 조절하는 것보다도 음식물의 내용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그래서 건강한 음식이 꼭 비쌀 필요도, 맛없을 필요도, 심지어는 건강할 필요도 없다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제목만 뽑아 연결하는 것만으로도 저자의 의도를 충분하게 읽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1. 비타민은 충분히, 2. 고기는 적당히, 3. 단것은 신중하게, 4. 유기농 식품을 우선적으로, 5. 물은 충분히, 6. 알레르기 유발 식품은 멀리, 7. 식사는 균형 있게, 8. 식품 표시 확인도 조심스럽게, 9. 아무튼 먹으라, 등 입니다. 체중을 조절하기 위하여 밥을 굶거나 먹은 것을 도로 토하는 방식으로 스스로의 에너지 욕구를 잠재우려는 시도는 결코 환영할 수 없다고 합니다. 아니 ‘더 빨리 저세상으로 하게 될 것’이라고 잘라 말하는군요. 다시 말해서 ‘살고자 한다면 규칙적으로 식사를 하라. 그리고 기왕이면 맛있게 만들어 먹으라’고 합니다.

대체의학에 관하여 두 꼭지나 할애하고 있습니다. 독일에서 자리 잡고 있는 대표적인 대체의학은 동종요법입니다.

“같은 것이 같은 것을 치료한다(like cures like)”라는 원리를 바탕으로, 건강한 사람에게 투여했을 때 나타나는 증상으로 고통 받는 환자에게 같은 물질이나 치료제를 사용하는 치료법으로 1796년에 독일의 의사 사무엘 하네만이 이론을 세웠습니다. 동종요법에는 치료제를 매우 소량 투여해도 치료효과를 나타낸다고 하는 용량이론이 있습니다. 물론 여러 가지 성분이 복합되어 있어 어느 성분이 유효한지 분명치 않을 수도 있습니다.

독일에서 동종요법이 대중의 호응을 얻은 것은 의외입니다. 저자도 인용했습니다만, 유럽사회가 광우병공포에 떨고 있던 20세기 말 영국 사람들은 특정위험물질이 제거된 쇠고기를 먹고 있을 때에도 독일 사람들은 쇠고기를 멀리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완전하게 안전하다는 것이 입증되지 않을 때까지는 피한다는 것인데, 효과가 충분히 입증되지 않은 동종요법이 지식인들에게까지 신뢰를 주고 있는 현실에 대하여 저자는 ‘헛똑똑이’들이라고 에둘러 말합니다. 나아가서 더 혁신적이고 소비자들에게 먹힐 수 있는 치료요법을 개발하는데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몇 가지 조언을 적었습니다. 1. 옛 전통을 참조하라, 2.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질병 개념을 개발하라, 3. 근사한 어휘를 사용하라, 4. 연구비가 많이 투입된 논문을 인용하지 말라, 5. 치료에 별난 도구를 활용하라, 등입니다. 어떻습니까? 우리나라에서도 통할 것 같지 않습니까?

제가 요즘 하고 있는 일 때문인지 유전자검사에 관한 대목을 읽으면서 크게 공감하였습니다. 금년 들어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하기 위하여 그동안 환자 본인의 부담으로 검사가 이루어지던 유전자검사의 상당수가 급여대상으로 전환되었습니다. 급여대상으로 전환된 유전자검사들은 유전성질환의 원인이 되는 것들도 있고, 암환자에서 발견되는 비유전성 유전자검사들도 있습니다. 유전자검사들은 비용이 천차만별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래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런데 급여 청구되고 있는 유전자검사들을 살펴보면 우리나라에서 유전자검사가 이렇게 많이 시행되고 있었나 싶습니다. 그렇다면 급여가 되지 않는 유전자검사를 하느라 환자들의 부담이 엄청났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한편으로는 유전자검사가 꼭 필요한 경우에 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도 들고 있습니다. 유전성 질환을 의심한다면 환자의 가족 가운데 같은 질환을 앓은 사람이 있는가하는 것도 중요할 것 같은데 그런 정보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나는 왜 늘 아픈 가>의 저자는 유전자검사의 유용성과 한계를 정확하게 짚고 있습니다. 유전자검사를 통하여 환자와 가족들이 유전성 질환에 걸릴 가능성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된 의사는 치료자가 아니라 예언자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환자는 자신의 주치의가 예언자보다는 치료자의 역할을 잘 하기를 바랄 것 같습니다. 문제는 유전자검사가 질병의 발생을 예측하는데 있어 아직까지는 완벽한 방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질병은 단일 유전자에 의하여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유전자들이 서로 얽혀 영향을 나타내야 할 뿐 아니라, 문제는 유전자 이외에도 질병의 발병에 간여하는 요소들이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유전자를 통하여 질병의 발병을 예측하는 것 역시 통계적 자료에 바탕을 둔 것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저자도 인용했습니다만,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30퍼센트에서는 ApoE 유전자의 변이가 발견됩니다. 그런데 건강한 사람의 10퍼센트에서도 ApoE 유전자의 변이가 발견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ApoE 유전자의 변이가 알츠하이머병의 위험을 3배 높인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문제는 정상인 사람에서 ApoE 유전자의 변이가 관찰되었을 때, 이 사람에게 나중에 알츠하이머병이 생길 것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또한 치매를 보이는 환자에서 ApoE 유전자의 변이가 발견되었다고 해서 치료법이 크게 달라질 것도 없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환자의 가족들은 유전자검사의 결과가 살아가는 동안 보이지 않는 족쇄처럼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살면서 모르는 것이 약일 수도 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유전자검사가 바로 그런 경우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23꼭지의 이야기가 모두 흥미롭게 느껴지는 것은 옮긴이의 탁월함이 기여하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의학독일어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너무 딱딱해서 읽는 재미가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너무 잘 읽힙니다. 저자가 쓴 독일어 문장 자체도 재미있을 것 같으면서도 역시 번역의 힘이 아닐까 싶습니다. 건강문제에 강박증이 있는 분에게도 치료효과가 탁월할 것으로 생각되며 일반 독자 역시 현대의학의 민낯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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