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명(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 운영위원, 가정의학과 전문의)


한미 FTA는 전례가 없는 비공개로 날치기 통과되었다. 의회 날치기 수법으로서는 최고의 경지에 다다른 ‘의회폭거’라 아니 할 수 없다. 한미 FTA는 한나라당이 과연 누구를 대변하는 정치세력인지를 여실히 드러내었다.

FTA(Free Trade A)가 무엇인가. FTA는 자유무역을 최고의 이념으로 한다. 누구로부터의 자유인가. 바로 국가와 공적 규제로부터의 자유이다. 그러다 보니 FTA는 관세철폐는 기본이며, 국경을 넘나드는 자본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 즉 지적재산권, 금융, 투자, 의약품, 서비스무력, 통신 등 모든 분야를 망라한 협정이다.  FTA는 기본적으로 국가가 공공의 안녕과 공공의 보호라는 이름으로 사적 자본에 대해 제한하고 규제하는 것을 모두 적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FTA는 최소한의 공적 영역을 제외하면 모두 시장에 맡기도록 요구한다. 심지어 공적 영역마저도 자본이 이익을 취할 수 있는 대상이라고 여긴다. 국민의 건강과 관련이 밀집한 보건의료 영역이 대표적인 예이다. 공적 영역의 축소는 곧 다수의 피해를 가져온다. 소수의 이익을 위해 다수가 피해를 보는 것이다.

FTA에 의해 가장 명확히 국민건강권에 피해를 미치는 사례는 의약품이다. 국내 제약회사들은 대다수가 오리지날 특허약이 아닌 저렴한 복제약을 생산한다. 외국의 다국적 제약회사들의 오리지날 약들이 특허가 풀리게 되면 즉시 복제약을 생산해 내었다. 국민의 입장에서는 특허약이든 아니든 간에 효과가 동일하다면 좀 더 저렴한 약을 구매하는 것이 비용 효과적이다.

하지만 이번 FTA로 인해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독점한 오리지날 특허약의 특허기간이 2~3년 연장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만큼 국민들은 조금이라도 더 값싼 약을 복용할 기회를 박탈당한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새로운 특허약이 등장할 경우 약가결정과정에 다국적 제약회사에 유리하게 책정되도록 협정이 되었다는 점이다. 국민건강보험 공단은 약을 보험에 등재하기 위해서 약가협상을 하는데, 공단의 입장에서는 최대한 약을 저렴하게 등재하려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FTA에서는 건강보험공단의 약가협상에 이의를 제기하고, 임의로 약가를 결정할 수 없도록 독리적 기구를 두는 것을 허용하였다. 즉, 공단의 약가 결정을 번복하고 약가에 영향력을 행사할 기회를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갖도록 하였다.

정부는 한미 FTA로 인한 약가상승효과를 인정하면서도 최소로 평가하려 한다. 정부는 다국적 기업의 특허연장으로 대략 1년에 1,000억 정도의 인상효과로 평가하고 있다. 이것 역시 결코 적지 않은 비용이지만, 특허연장 외의 다른 영향, 즉 공단의 약가협상력 저하, ISD로 인한 투자자 국가 분쟁제도 인한 공공의약정책의 위축을 생각하면 그 피해는 매년 수 천 억 이상에 이를 것이라고 FTA 반대 진영에서는 추산하고 있다.

다음은 경제자유구역의 영리병원 허용의 문제다. 경제자유구역 및 제주도 내 의료기관은 한국의 자유로운 규제를 시행할 수 있는 미래유보에서 제외되어 있다. 현재 경제자유구역은 외국 투자자본이 국내자본과 합작하여 영리병원을 설립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제주도의 경우에는 한발 더 나아가 내국인 영리병원 설립을 허용하고 있다. 이들 영리병원은 한번 추진되면 다시 정책적으로 되돌리기가 불가능해 졌다. 그럴 경우, 이미 영리병원에 투자한 자본가들이 FTA 협정문을 근거로 국제 사법기관에 제소할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현재 경제자유구역은 전국방방곡곡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천, 부산진해, 광양, 대구 경북, 군산 새만금, 황해 등이 이미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되어 있고, 여기에 추가로 더 지정할 계획이다.

특정한 지향성을 가진 정부는 정권을 잡을 경우, 자신의 정책대로 시행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정책이 실패하였다고 판단할 경우 언제든지 물러설 수 있어야 한다. 그것으로 인해 정권이 바뀌기도 하며 바뀐 정부는 그것을 되돌리려 할 것이다. 하지만 한미 FTA는 이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는데 이는 한 국가의 정책주권을 제약하는 효과를 가진다.

영리병원의 허용이 가지는 파급효과는 의외로 커다란 결과를 가져온다. 정부는 제주도의 경우 영리병원에도 ‘당연지정제’를 시행할 것이라 한다. 그런데 영리병원의 투자자 입장에서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에 당연지정제라 하여 의료수가를 통제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고 여길 것이다. 그럴 경우, 헌법소원이 들어간다. 이미 한차례 헌법소원에서 당연지정제가 합법적이라고 판단하였지만, 그것은 영리병원이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영리병원이 허용된 상태에서는 다른 판단이 나올 수밖에 없다. 결국 영리병원은 우리의 공적 의료제도를 붕괴시키는 지렛대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경제자유구역과 제주도에 제한적으로라도 영리병원이 들어서게 되면, 그와 함께 새로운 민간의료보험 상품이 출시될 수밖에 없다. 즉, 영리병원의 의료비를 보장해주는 상품이다. 이것은 기존의 민간의료보험과는 다른 신금융서비스에 해당한다. FTA는 신금융서비스에 대해서는 규제 없이 허용해주도록 하고 있다. 영리병원의 등장은 새로운 형태의 민간의료보험의 등장을 가져오고, 이 민간의료보험은 다시 영리병원의 수요를 창출하는 효과를 가져 온다. 민간의료보험 회사가 가장 반기고 있는 지점이 바로 여기이다. 영리병원을 이용할 수 있는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한 가입자는 당연히 건강보험료를 내는 것에 대해 반대할 것이고 건강보험제도를 탈퇴하겠다는 요구가 이어질 것이다. 이는 결국 전국민건강보험제도의 기초를 흔들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투자자 국가 분쟁제도인 ISD이다. ISD는 거의 모든 공공의 이익을 위한 정책들이 무력화시킬 수 있다. 정부와 찬성론자들이 사회보장제도와 같은 공공정책은 ISD의 예외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공공정책이라고 하더라도 모든 의무가 예외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 한미FTA 저지 범국본에서 밝혔듯이 최소기준대우나 수용보상의 의무는 제외되어 있다. 즉, 사회공공정책으로 인해 투자자가 손해를 보았다고 판단하면 언제든지 제소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부가 아무리 공공정책은 ISD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하더라도, 그것을 판정하는 것은 국내의 사법기관이 아니라, 세계은행산하에 있는 국제사법제판소라는 점이다. 그들이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그들은 우리의 사법기관과는 다르다. 사법기관은 우리의 헌법정신에 기초하여 판정을 내리겠지만, 국제사법재판소의 판단은 우리의 헌법이 아니라, 단지 투자자의 권익이라는 관점에서 다룬다. 우리의 헌법이 아무리 공공에 대한 국가의 의무를 강조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우리의 헌법을 보고 판단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미 FTA가 우리의 사법주권을 침해한다는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찌되었든 몰상식적인 날치기 방법으로 FTA는 통과되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한나라당의 1%를 위한 날치기에 대해 국민적 공분을 조직하고, 이후 선거에서 그들을 심판하는 것이다. 그리고 당당히 FTA에 대한 재협상을 요구해야 하며, 그리고 자본의 이익이 아닌 공공의 이익이라는 시각 하에서 풀어가는 것이 이후의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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