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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을’들이 경험한 메르스 사태…위험의 분배조차 불평등하다‘시민·인권’ 관점의 메르스 백서 펴내…감염병 대응 과정서 ‘투명인간’ 취급받은 취약계층

[라포르시안]  작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를 겪으면서 당시 위기 대응과 문제점 등을 분석한 메르스 백서가 지속적으로 발간되고 있다.

지금까지 나온 백서에는 병원이나 중앙정부, 지자체 차원의 메르스 유입방지 노력, 감염 환자 발생에 따른 대처 등을 시간순으로 상세하게 정리해 놓았다.

이들 백서는 대부분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료진, 보건담당 공무원, 감염병 전문가 등의 시각으로 메르스 사태의 원인과 과정, 제도개선 방안 등을 짚었다.

이와 달리 메르스 유행을 시민과 인권을 관점으로 되짚어보고 취약계층의 인권보호를 중심으로 위기대응 방안을 모색한 백서가 나왔다.   

건강세상네트워크와 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최근 '인권 중심의 위기대응 : 시민, 2015 메르스 유행을 말하다!'라는 제목의 백서를 펴냈다. <백서 바로가기>

이 백서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노동건강연대, 안성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지구인의 정류장, 전북 순창 장덕리 주민들, 홈리스행동, ‘에이즈환자 건강권 보장과 국립요양병원 마련을 위한 대책위원회’, 그리고 여러 명의 노동자와 시민, 활동가 등의 도움을 받아 제작됐다.

백서 제작에 참여한 연구진은 보건의료 노동자들의 경우, 메르스 환자 진료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던 이들을 섭외해 일대 일 개별면담을 하거나 초점집단 면접을 통해 자료를 수집했다. 노인, 이주노동자나 노숙인, 에이즈 환자 등의 경우 지역의료생활협동조합이 주최하는 간담회를 참관하거나 인권 단체를 통해 당사자를 직접 만나는 방식 등으로 정보를 수집했다.

건강세상네트워크와 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그동안 정부와 학계, 언론의 평가들이 메르스 유행의 원인, 대처가 부실했던 이유를 규명하는데 초점을 두었다면 우리는 인권과 사회정의라는 측면에서 국내의 메르스 유행을 되짚어보고 문제의 구조와 기전을 파악하고자 했다"고 발간 취지를 설명했다.

보건의료 노동자들에게 큰 상처가 된 '오명과 차별'

이번에 발간된 '인권 중심의 위기대응' 백서는 노동자와 평범한 시민들이 메르스 유행 중 일터를 비롯한 생활공간에서 어떤 경험들을 했는지, 이들이 예기치 못한 위험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살펴보는 데 많은 분량을 할애했다.

또한 건강할 권리, 노동할 권리, 알 권리, 인간으로서 차별 없이 존중받을 권리가 감염병 유행 상황에서 어떤 구조와 기전을 통해 침해당하고 경시되었는지를 파악하는 데 공을 들였다.

백서는 "노동자들은 메르스 유행 과정에서 충분한 보호 없이 ‘최전선’에 내몰리기 일쑤였다. 특히 보건의료 노동자들은 메르스 감염 위험은 물론 과로와 스트레스, 심지어 오명과 차별을 경험했다"며 "이들은 메르스를 비롯해 전반적으로 감염 감리와 관련된 충분한 교육과 훈련을 받지 못했고, 허술한 대응 지침으로 극심한 업무 혼란에 직면했다"고 지적했다.

메르스 사태 당시 감염환자를 진료하는 의료인에 대한 오명과 차별이 심각한 수준이었다. 초기에 메르스 전파 경로에 대한 정보가 공개되지 않고 감염에 대한 공포가 극대화되면서 보건의료 종사자들이 ‘감염원’으로 여겨지기도 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의료인의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일상'에서 배제되는 경우도 있었다.

"저흰 당사자 입장으로 정말 불쾌한 거예요. 모든 사람들을 감염덩어리로 보는 거지. 우리 자녀가 니네 자녀들 때문에 감염되면 어떡하냐 하면서.... (중략)... 내가 문제가 아니라 아이들이 낙인이라도 찍히면 어떻게 하나 너무 걱정되는 거야. 애들이 열이라도 나면.... 어떤 직원의 아이는 중학교 다니는데 열이 나서 병원 갈려고 했는데 엄마가 병원 직원이라고해서 받아주지 않아서 우리 병원 응급실에 데리고 왔어요"(어느 보건의료 종사자)

이런 오명과 차별은 보건의료 노동자들에게 과로만큼이나 커다란 상처가 되었다고 백서는 분석했다.

백서는 "이는 ‘호혜성’의 관점에서 볼 때 사회적으로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유행 초기 시민들이 느꼈던 공포를 보여주는 현상이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우리사회의 취약한 사회안전망이 감염병 유행 상황에서 취약계층에 대한 차별을 노골화 하게끔 만든 측면도 강하다.

백서는 "불안정 고용, 인종주의와 그에 기초한 고용허가제도, ‘잔여적’ 공공보건의료 체계, 지역적 위계화와 결합한 강압적 검역조치는 사회적 취약계층에게 차별과 배제의 정치로 작동했다"고 지적했다.

메르스 유행 과정에서 가장 큰 고통을 받았던 감염 환자들은 물론 부당한 검역 조치를 당했던 이들, 의료서비스 이용이 필수적이었던 다른 환자들, 특히 공공병원 이용이 절실했던 노숙인, 쪽방 거주자, 에이즈 환자 등 사회적 소수자들의 고통은 상당했다고 한다.

실제로 병원에서 근무하는 비정규직은 임금이나 근무환경에서 차별을 받는 것도 모자라 메르스 감염의 예방과 보호 조치에 있어서도 차별을 겪었다.

"근데 의사직은 사실 환자가 없다고 우리를 블레임하거나 우리를 짜르겠다고는 절대 안 하는데 타직 분들 같은 경우에는 그냥 놀고 있으니까 눈치를 많이 보고 혹시나 짤릴까봐 걱정을 많이들 하셨어요. 특히 계약직은 정말 그렇고 그래도 정규직은 조금 덜한데 어쨌든 계약직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죠. (병원 노동자)

"대부분의 학교들이 다 휴교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너희들이 일을 쉬려면 연가를 사용해라 이런 식으로 했고... (중략)... .너희들은 쉬면 임금이 없다는 거. 굉장히 차별이 저희를 서럽게했고... 그런데 저희가 더 안타까운 것은 비정규직 선생님들이 그거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못하는 거에요"(학교 비정규직 노동자)

"정직원들은 알아서 피했어요. 근데 비정규직, 경비원 하시는 청소하시는 그 분들은..."(00수련원 노동자)

이주노동자들 역시 메르스 유행 당시 열악한 노동환경과 함께 한국사회에 만연한 인종주의로 인해 추가로 고통받았다.

"사용자가 이탈 신고를 했어요. 미등록이 됐어요.. (중략)... 사장님이 이 전염병이 다 지나가기 전까지 오지 말라고 하고는 뭘 어떻게 하냐고.. 뭘 담보든지 약속이 있어야 갈수 있는거 아니냐고 (항의를) 했더니 그랬더니 이탈신고를 한 거에요..."(어느 이주노동자)

"거점병원 확보 과정서 치료도 끝나지 않은 환자들 방출하다시피 내쫓아" 평소 공공병원에 의존하던 쪽방주민과 노숙인, 특히 공공병원을 내원하던 에이즈 환자도 메르스 유행 과정에서 의도치 않은 피해를 경험했다. 특히 열악한 공공의료 인프라는 의료취약층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국립의료원이 메르스 진료 병원으로 지정되면서 외래 진료 기회가 차단되거나, 입원해 있던 환자들이 급하게 병원을 옮겨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고, 이렇게 밀려난 환자들에게 다른 의료기관을 알선해주거나 진료기록을 연계해주지 않아서 경제적 피해와 함께 상당한 불편과 우려를 감수해야 했다.

"복지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입원 환자를 타 병원으로 전원시키겠다고 했어요. 당연한 수순이고, 그렇게할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혹시 몰라 병원을 방문했던 거고, 단체들에 수소문을 했던 건데 병원 측 대응이 보도자료와는 사뭇 달랐죠. 병원 측도 갑자기 거점병원이 돼서 그런지 당황하는 분위기가 역력했고, 입원자 일동을 전원시킬 병원에 연계하는 게 쉽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렇다 하더라도 적어도 홈리스 같은 보호자, 가족이 없는 환자들은 일대일로 전원 처리할 수 있도록 했어야죠. 메르스만 질병은 아니잖아요. 누구나 다 자기가 앓고 있는 질병이 가장 고통스러운 법인데, 치료도 끝나지 않은 환자들을 방출하다시피 한 건 이해가 되지 않아요"(홈리스 지원 단체 활동가)

한국 사회의 산업재해에 대한 척박한 인식은 메르스 유행에 대응하다가 감염된 의료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메르스가 유행하던 초기, 충분한 훈련은 고사하고 보호구와 관련 정보도 제대로 제공받지 못한 상태에서 투입돼 의사와 간호사 중에서 감염 환자가 23명에 달했다. 방사선사와 간병인, 이송요원 등을 포함한 보건의료 종사자 중 감염자는 40명이 넘는다.

그러나 이들 중에서 산재를 인정받은 사례는 드물다.  

백서에 따르면 2015년 12월 16일 현재, 메르스 관련해 산업재해보상이 청구된 사례는 11건에 불과하고, 그 중 확진자 6명은 승인이 되었고 나머지 사례들은 반려되거나 조사 중이다.

보건의료 종사자 중 감염자 수가 40명이었던 것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신청률로, 특히 메르스를 확진 받은 간호직 15명 중 2명만이 산재 신청을 했다.

백서는 "전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직업적 노출이 명백했던 드러났던 사례들조차 ‘산재’로 인식되지 못한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의 인식 체계 안에 ‘노동’이라는 개념이 아예 들어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며 "이는 직업적 노출에 의해 발생한 감염은 물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또한 직업성 질환으로 인정되어야 한며, 고용주는 직업성 질환 사례에 대해서 근로감독관에게 보고해야 한다는 ILO와 WHO의 방침에도 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2015년 6월 5일, 메르스 중앙거점의료기관으로 지정된 국립중앙의료원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 사진 출처: 청와대 홈페이지

공중보건 위기 상황서 정부 책임성 강화하기 위한 거버넌스 필요

백서는 향후 또다른 감염병 유행에 직면했을 때 이런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공중보건 위기 상황에서도 개인의 자유와 평등은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위험의 불평등한 분배가 발생하지 않도록 고려해야 한다 ▲보건의료 노동자의 직업안전보건 문제가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백서는 "공중보건 위기 상황이라도 검역의 경우 공중의 보호를 위해 건강한 개인의 자유를 제한한 만큼 생계 보장 등 공정한 대우를보장해야 한다"며 "이 과정은 절차적으로 공정하고 투명해야 하고, 오명과 낙인의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당사자 혹은 위험에 처한 지역사회의 의견을 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공중보건 위기 상황에서 취약계층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에 대한 사전 계획이 마련되어야 하고, 사회적 안전망과 공공보건체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무엇보다 공중보건 위기 상황에서 정부의 권력 남용을 방지하고 책임성을 강화하기 위한 거버넌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백서는 "협력적 거버넌스를 구축한다는 것이 정부와 시민사회가 부담해야 할 책임의 크기가 같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권력과 자원은 압도적으로 정부 측에 존재한다"며 "정부의 책무성을 강화하고 시민의 참여를 높일 수 있는 거버넌스를 구축하기 위해 중앙 혹은 지방정부 차원에서 공중보건 위기 대응 기획이나 평가 과정에 보건의료노동자나 사회적 취약계층의 이해를 대변할 수 있는 주체가 포함되도록 하거나, 공청회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상기 기자  bus19@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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