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포르시안] 하다 하다 별 이상한 말도 다 듣겠다. 건강 증진과 질병 예방 등을 위한 건강관리 서비스와 의료행위를 명확히 구분하겠다니 말이다. 박근혜 정부가 지난 17일 발표한 신산업 육성을 위한 투자활성화 대책에 그런 내용이 들어 있었다. 이름도 거창한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각 부처별로 신산업 육성과 규제 완화를 위한 투자활성화 대책을 수립해 보고했다. 무역투자회의는 박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운영되던 '수출진흥확대회의'를 부활한 것이다. 대통령이 직접 회의를 주재한다. 

그동안 무역투자진흥회의를 통해 수많은 투자활성화 대책이 쏟아졌다. 지난 17일 열린 회의에서 보건복지부는 '헬스케어 산업 활성화' 방안을 보고했다. 그 내용이 정말 황당하다. 요약하자면 '의료행위와 건강관리 서비스를 명확히 구분하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새로운 사업모델 개발을 촉진'한다는 거다. 의료행위가 아닌 질병 예방, 건강유지 등 일반적 건강관리를 위한 서비스 종류를 명확히 규정해 이를 민간의 사업 영역으로 돌리겠다는 의도다.

우선 의료행위와 건강관리를 따로 떼어서 구분할 수 있는 사안인가 싶다. 급성기질환 등을 치료하는 의료서비스는 궁극적으로 치료 이후의 질병 예방과 건강유지 서비스 제공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복지부가 제시한 방안에 따르면 건강관리서비스의 범주에는 ▲의료기관의 진단·처방을 토대로 한 사후관리(처방을 잘 따를 수 있도록 의약품 섭취, 식사, 운동 등을 도와주는 서비스라고 예를 들어놓았다) ▲스마트기기를 활용한 생활습관정보 축적·관리와 이를 활용한 원격모니터링 서비스 ▲맞춤형 영양·식단·운동 프로그램 등 설계, 금연·절주 등 생활습관 개선을 위한 상담 및 관련 용품 제공 등이 포함된다.

황당하다. 의사의 진단과 처방을 토대로 한 의약품 복용과 건강을 유지하는 식사·운동 상담을 의료행위와 별개로 구분하겠다니. 스마트기기를 활용한 원격모니터링은 지금 복지부가 시범사업을 하는 원격의료 시범사업과 무슨 차이인가. 또 금연이나 절주 등의 생활습관 개선은 현재 의사가 환자에게 상담해 주는 내용인데 이걸 별도로 분리해 서비스 해야 한다는 말인지. 도무지 무슨 생각으로 이런 방안을 마련했는지 모르겠다.

다만, 이 대목을 보면 복지부의 의도를 명확히 짐작할 수 있다. 정부 발표자료를 보면 '고령화와 의료비 지출 증가 등으로 ICT․웨어러블기기 등을 활용한 건강관리서비스업이 미래유망산업으로 대두하고 있지만 건강관리서비스의 정의와 비즈니스 모델이 불명확해 민간의 적극적인 투자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이 방안을 추진하는 배경을 설명해 놓았다. 이제 좀 명확해진다. 건강증진과 질병 예방, 악화 방지를 위한 건강관리 서비스를 의료기관이 아닌 민간기업이 제공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거다.

까무러칠 노릇이다. 건강증진과 질병 예방 등의 보건의료 서비스를 민간의 영역으로 넘기고 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정책을 천연덕스럽게 발표할 수 있을까. 건강증진과 질병 예방 등은 국가가 해야 할 의무다. 법에도 그렇게 나와 있다. 국민건강보험제도의 근간이 되는 '국민건강보험법' 제1조를 들여다 봐라. 이렇게 적혀 있다. '이 법은 국민의 질병·부상에 대한 예방·진단·치료·재활과 출산·사망 및 건강증진에 대하여 보험급여를 실시함으로써 국민보건을 향상시키고 사회보장을 증진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건강증진과 질병 예방은 공적보험의 영역이란 뜻이다.

국가의 역할을 보다 구체적으로 명시해 놓은 법도 있다. 현행 보건의료기본법 제4조 제1항에는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국민건강의 보호ㆍ증진을 위하여 필요한 법적ㆍ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이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해 놓았다. 이 뿐인가. 국민건강증진법은 훨씬 더 구체적이다. 이 법에는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건강에 관한 국민의 관심을 높이고 국민건강을 증진할 책임을 진다'고 명시해 놓고 이를 위해 보건교육, 질병예방, 영양개선 및 건강생활의 실천 등을 통해 국민의 건강을 증진시키는 사업을 하라고 해 놓았다.

그런데 복지부는 건강증진과 질병 예방이 마치 새로운 서비스 영역인 것처럼 말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국가가 해야 할 의무를 제대로 수행한 적 없기 때문이다. 오로지 건강보험제도를 운영하면서 급성기질환 등의 치료에 의료보장을 하는 데 급급했다. 공공의료 인프라도 제대로 확충하지 못해 대부분의 의료공급자원이 민간에 의해 구축됐다. 그러니 국민의 건강증진과 질병 예방을 인한 건강관리서비스를 민간에 떠넘겨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한 것 같다. 주요 선진국에서는 이런 서비스를 모두 국가의료체계를 통해 정부가 보장하고 있다. 복지부가 외국의 사례로 제시한 미국은 워낙 민간의료보험사 중심으로 의료공급 체계가 운영되는 탓에 건강관리서비스를 제공하는 민간회사가 발전한 것이다.

국민의 건강 증진과 질병 예방을 민간기업에 맡기고, 국민의 주머니를 털어서 신산업으로 육성하자는 복지부의 정책은 그래서 기가 막히다. 가뜩이나 보건복지부가 아니라 '보건의료산업부'란 말을 듣고 있는데 이런 정책까지 내놓다니 한심하다. 복지부장관과 관료들은 '의료수출, 해외환자 유치, 새 일자리 창출'을 입에 달고 산다. 이러다가 정말로 보건복지부의 존립 근거가 사라질까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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