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지역 등 의료사각지대를 해소하겠다는 정부와 지자체의 정책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섬주민들로부터 외면을 받고 있다.

보건복지부 류근혁 건강정책과장은 지난 10일 인천 옹진군 연평도를 방문해 “도서지역의 보건의료시설은 경제적인 논리로 따질 수 없으며 국가가 반드시 담당해야 할 의무”라며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현행 ‘농어촌 보건의료를 위한 특별조치법’은 도서지역의 경우 관할인구 300명 이상인 지역에만 보건진료소를 설치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복지부는 지방자치단체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할 경우 복지부 장관의 승인을 얻어 기준 미달지역에도 보건진료소를 설치할 수 있도록 관련 시행규칙 개정을 추진 중이다.

인천시 옹진군도 총 사업비 9억3,000여만원을 투자해 이달부터 내년 3월까지 덕적도, 지도, 대이작도, 소이작도 등 4개 섬에 닥터헬기 착륙장을 각각 1곳씩 신설하고 소야도, 자월도, 승봉도 등 3개 섬에는 기존에 있는 착륙장을 확장할 계획이라고 지난 14일 밝혔다.

복지부가 설치를 확대하겠다고 발표한 보건진료소는 간호사가 상주하며 단순 복통, 기침, 발열, 두통 등 간단한 내과 영역과 경미한 사지 열상, 내출혈을 동반하지 않는 자상 등의 외과 영역에 대해 처치할 수 있지만 즉각적인 외과수술을 요하거나 골절, 내부 장기손상, 수혈이 필요한 출혈환자 등에 대해서는 즉각 보건소, 보건지소 또는 병원으로 이송토록 규정돼있다.

그러나 도서지역 주민들은 “정부와 지자체의 정책이 얼마나 실효성을 거둘지 의문”이라는 반응이다.실제로 지난 12일 서해 최북단에 위치한 백령도에서 맹장염에 걸린 한 10대 소년이 수술을 받지 못해 합병증으로 위험에 처할 상황에 놓인 일도 있었다.

백령도에는 정형외과 등 6개 과에 전문의 7명이 상주하는 백령병원이 있지만 정작 수술을 할 수 있는 외과 전문의는 1명도 없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 소년은 다음날이 돼서야 여객선을 타고 인천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섬주민들은 “맹장수술 같이 간단한 수술조차 섬내에서 해결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며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진료소 확대가 도서지역 의료공백 해결에 대한 궁극적 해결책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보건진료소 인력 확충도 넘어야 할 산이다. 본지가 지난 12일 취재차 대이작도 소재 이작보건진료소를 방문했을 때 간호사가 병가 때문에 근무를 하지 않아 사실상 진료공백 상태였다. 한 주민은 “어업에 종사하다보니 간단한 자상이나 창상을 입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진료를 받고 싶어도 간호사가 개인적 사정으로 자리를 비울 경우 보건소가 있는 자월도까지 배를 타고 가야만 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현재 운용중인 보건진료소도 인력부족으로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시점에서 보건진료소의 숫자만 늘리는 것이 얼마나 실효를 거둘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옹진군의 헬기착륙장 증설을 두고도 해당 섬 주민들의 반응은 서로 엇갈리고 있다.

소이작도 주민인 신모씨는 “기존에 있던 헬기착륙장은 협소하고 민가로부터 20m 밖에 떨어져있지 않아 위험요소가 많았다”며 “신설해달라는 주민들의 요구가 수용된 것에 대해 환영한다”고 반색했다.

반면 대이작도에 거주하는 김모씨는 “대이작도에서 소이작도까지 거리가 500m 정도라 어선으로 이동해도 2~3분이면 가는데 각각의 섬에 헬기착륙장을 따로 신설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다”며 “이처럼 예산을 낭비할 바에는 차라리 보건진료소 인원을 늘리는 게 효과적일 것”이라고 불만을 표출했다.

옹진군청 예방의약팀 김광희 팀장은 “헬기착륙장의 위치는 대한항공과 인천시, 옹진군이 합동으로 면밀히 조사해 타당성을 확인해 선정한 것”이라며 “당초 착륙장 대용으로 사용할 장소도 물색해봤으나 가로등이나 전주 등 주위의 여건 및 지형이 합당하지 않아 따로 신설할 계획을 세웠다”고 답했다.

닥터헬기 무용론과 공공 거점병원의 필요성에 대한 주장도 제기됐다.대이작도 주민 강모씨는 “응급환자를 주간에는 닥터헬기로 야간에는 해경 고속정 등으로 이송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섬이라는 특성상 풍랑이나 호우 등으로 헬기나 선박을 이용한 장거리 이송이 불가한 경우 의료공백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헬기착륙장을 아무리 만든다 한들 헬기가 뜨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라며 “차라리 덕적도 같이 인근 섬 중에서 가장 인구수가 많은 섬에다 공공 거점병원을 설립하는게 주민들에게 훨씬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복지부 공공의료과 관계자는 “인천 도서권 내 공공병원 설립은 해당 지자체인 인천시의 의지가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며 “지자체가 필요에 의해 요구할 경우 복지부는 타당성에 대한 종합적 판단 등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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