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포르시안] "다시 일상으로!". 요즘 자주 듣는 말이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가 발생하기 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라는 구호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모든 일상 활동을 메르스 이전의 생활방식으로 복귀해 달라"는 성명도 나왔다. 너무 서두르는 것 같아 거북하다. 일상으로 돌아가라고 등 떠밀리는 모양새다. 성급하게 재촉하는 꼴이 뭔가 찜찜하다.

정부는 7월 28일 메르스 사태가 '사실상' 끝났음을 공식화했다. 지난 5월 20일 첫 메르스 확진 환자가 나온 지 69일 만이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엄격한 국제기준에 따른 종식선언을 위해서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여러 상황을 종합해볼 때 이제는 안심해도 좋다는 것이 의료계와 정부의 판단"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의 종식 선언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기준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아직도 12명의 감염자가 격리치료를 받고 있다. 36명이 사망했고, 부실한 초기대응 문제나 메르스 사태를 키운 의료체계의 문제점을 그대로다. 심지어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 그러건 말건 오로지 '다시 일상으로'다. 일상으로의 복귀가 마치 이 나라 국정 운영의 목표였던 것처럼.

돌아가는 꼴을 보니 메르스를 잊고 일상으로 돌아가란 말이 그런 의도인가 짐작도 간다. 36명의 메르스 사망자와 1만6천명이 넘는 격리자를 내고, '국가가 뚫렸다'는 말까지 나왔지만 더는 책임을 묻지 말자는 조짐이 보인다. 메르스 사태로 발생한 모든 피해와 문제는 고스란히 덮어두고, 예전 상태로 환원하자는 식이다. 

물론 편안한 일상이 나쁠거 없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는 안정된 삶이란 의미도 들어있다. 그러나 의문이 든다. 우리가 돌아가야 할 일상은 어떤 공간인가. 메르스 사태 이전의 일상은 그렇게 안전했던가. 안심하고 돌아갈 일상은 있긴 한 걸까?

되짚어보자. 메르스 바이러스가 퍼지기 전의 일상에 대해서. 대형병원의 응급실은 북새통이었다. 수도권의 대형병원 응급실은 온갖 증상의 환자가 뒤섞여 있는 시장통과 다를 바 없었다. 응급실 병상이 부족해 내원환자가 간이침대, 의자, 바닥 등에서 대기하는 상황이 '일상'적이었다. 80명이 넘는 사람에게 메르스 바이러스를 퍼뜨린 14번 환자가 그 속에 있었다.

간병문화는 또 어떤가. 보호자와 간병인이 병실에 상주하며 환자를 돌보는 관행이 바뀐게 있나. 정부는 포괄간호서비스를 확대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올해 6월 말 기준으로 포괄간호서비스 도입 의료기관은 전체 의료기관의 2.2%에 불과하다. 강력한 정책 추진 의지와 예산을 확보하지 않는 이상 포괄간호 전면 확대는 먼 미래의 일이다. 

메르스가 병원내 감염으로 확산됐지만 감염관리에도 변화가 없다. 병원감염 예방을 위해 '환자 1명당 30일의 입원기간 동안 4,410원 지급하던' 감염전문관리료 수가가 한시적으로 인상됐지만 메르스 사태 종식과 함께 다시 예전 상태로 돌아간다. 

대형병원으로 환자쏠림 현상도 달라진 게 없다. 메르스 감염 우려로 의료기관 이용을 기피하면서 20~30% 빠졌던 대형병원의 외래환자가 수가 메르스 이전 상태로 회복됐다고 한다. 90명의 메르스 감염 환자가 발생한 삼성서울병원은 부분폐쇄 조치가 해제되자 빠른 속도로 예전의 모습을 되찾고 있다. 일주일 만에 내원환자가 4배 이상 늘었다는 보도도 나왔다. 예전의 일상을 향한 강력한 복원력이 놀라울 뿐이다.

69일 전의 일상을 향한 복원력은 정부가 훨씬 더 강하다. 메르스 사태로 주춤하던 의료산업화와 규제완화 추진 의지를 다시 벼른다. 보건복지부는 한국 의료산업의 글로벌 진출을 종합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의료수출 5개년 종합계획’ 수립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외국인환자 유치와 의료산업 해외진출을 지원하기 위한 관련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슬며시 꺼냈다. 제주도의 국내 1호 외국영리병원 설립 추진은 현재 진행형이다.

발길을 돌린 외국인 환자를 유치하기 위한 발길은 다급해지다 못해 거의 호객행위 수준이다. 일본과 중국을 대상으로 "한국 의료시스템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갔다. 안심하고 다시 돌아와 미용성형을 하라"고 홍보 마케팅을 시작했다. 그나마 허위과장 홍보는 아니다. 정말로 한국 의료시스템은 예전과 달라진 게 없다. 메르스 사태로 드러났다던 한국 의료체계의 민낯 그대로다. 놀라운 복원력이다.

한번 따져 보자. 지금 이대로 돌아갈 일상은 과연 안전한가. 음압격리병실을 찾아 600km를 헤맨 132번 메르스 환자는 다시 또 그런 일을 겪지 않을까. 80명 가까운 사람들에게 메르스 바이러스를 전파한 14번 환자는 응급실에서 또 며칠씩 머무는 일을 겪지 않을까. 감염병 의심증상으로 유급휴가를 얻기 힘든 노동환경 속에서 메르스 감염 증상을 보였음에도 무리하게 해외 출장을 가는 직장인이 또 나타나지 않을까. 부족한 격리병상 확보를 위해 공공병원에서 쫓겨난 결핵환자들은 또 그런 일을 겪지 않을까.

이대로 돌아갈 일상에선 분명 똑같은 일을 겪을 거라 확신한다. 그런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자고 부추긴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얼마나 소름끼치는 '일상으로의 초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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