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형곤(경기도의료원 이천병원 응급의학센터장, 전 대한의사협회 대변인)

[라포르시안]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환자가 뜸해진 어느 날 새벽 2시경 20대 초반의 여자분이 울면서 응급실로 뛰어 들어 왔다. "우리 애기가 아파요. 살려 주세요…" 그녀는 품안에 아기를 안고 있는 듯 보였고 나는 반사적으로 긴장하며 그녀의 품안을 보았다. 아뿔싸! 그런데 그녀가 품 안에 고이 안고 온 것은 아기가 아니라 강아지였다. 그녀는 술에 취한 듯 보였고 마스카라는 눈물 범벅이 되어 완전히 너구리 얼굴을 하고는 계속 아기를 살려달라고 했다.

"집에 와보니 우리 아기가 토하고 축 늘어져 엄마도 못 알아봐요" 그 당시 응급실은 심폐소생술을 위한 침상 2개를 제외하고 모든 침상에 환자가 차 있었고 응급실 바닥에도 두세 명 정도의 환자가 시트를 깔고 누워있었다. 항암 치료 후 면역이 극도로 약해져 있는 환자를 포함해 모든 종류의 환자가 치료받는 응급실에 개가 들어왔다니 황당하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 곧바로 그 여자를 응급실 밖으로 데리고 나와 겨우 동물병원으로 보냈다. 그 후로 응급실에는 강남구 근처의 24시간 동물병원 전화번호가 붙어 있게 되었다.

사실 나는 메르스 첫 감염자인 1번 환자와 14번 환자가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오게 된 것이 앞에 이야기한 상황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국가적인 통제없이 대유행을 막을 수 있는 구조가 아닌 것이다. 하루에 200여명의 환자가 전국 각지에서 오는 시장바닥과 같은 응급실 상황에서 누가 전염성 질환의 대유행을 유발할 수 있는 환자인지 분별하기는 요즘 미움을 받는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보다 어렵다.

그렇다면 응급실 과밀화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우리나라의 의료 현실에서 각 병원이 응급실 과밀화의 책임이 전적으로 대형병원에 있다고 할 수 없다. 의료전달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현실과 무조건 큰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의 인식, 일차의료기관의 몰락, 대형병원들의 몸집 불리기 등이 모두 응급실 과밀화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환자의 입장에서 보면 병에 걸렸을 때 주변의 개인의원을 방문해서 진료를 받는 것이나 유명 종합병원에서 진료를 받는 것이나 가격적인 면에서 큰 차이가 없다. 물론 의료기관별 수가의 차이를 두지만 그것이 환자가 임의대로 의료기관의 수준을 정하는데 전혀 부담이 안 된다는 것이다. 또 환자의 눈에 큰 병원에 있는 의사는 왠지 신뢰가 가고 더 유능한 의사로 보인다. 하지만 주변의 개인의원 원장들도 사실은 대부분 대형병원에서 수련을 마친 전문의 자격을 딴 의사인 것이다.

환자가 임의대로 상급의료기관을 방문하는 것을 막기 위해 중등도가 낮은 질환으로 3차 의료기관에 가려면 1차의료기관에서 발급하는 진료의뢰서를 첨부하도록 법제화 되어있다. 하지만 환자는 식은 죽 먹기보다 쉽게 1차의료기관에서 진료의뢰서를 발급받을 수 있다. 만일 진료의뢰서를 발급받지 못한 경우 당일 해당 상급의료기관의 가정의학과에서도 바로 발급받을 수 있다. 그야말로 유명무실한 제도인 것이다.

병원 입장에서 보자. 환자 수는 적지만 중중도가 높은 질환 위주로 진료를 하고서도 의사, 간호사, 의료기사 등을 포함하는 직원의 월급을 주고 새로운 장비를 사고 연구에 투자할 수 있다면 지금처럼 내원환자의 수를 늘려 병원의 매출을 늘리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과 같이 경증 질환자라도 많이 진료하고 영안실과 주차장, 음식점 등 부대사업을 통하여 최대한 수익을 늘려야 적자를 면하는 구조적인 모순이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런 구조적인 모순은 건강보험에서 정한 수가가 낮기 때문이다. 응급실과 중환자실의 원가가 수가에 한참 못미치는 것은 이미 잘알려진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병원입장에서는 중환자실 문 닫는 것이 정답인 것이다. 하지만 병원이 물건을 만들어 파는 공장이 아니기에 울며겨자먹기로 운영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상급종합병원도 근근히 버티고 있는 것이다.

어제 국회에서 삼성서울병원이 대응에 소홀했다고 국회의원들에게 야단 좀 맞은 것 같은데, 국회의원들이 과연 이러한 기본적 상황을 이해하고 야단을 쳤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14번 환자가 평택성모병원에서 온 것을 알았다고 가정하자. 환자에게 “메르스에 감염되셨어요?” 라고 물어볼 수도 없고, 평택성모병원에 전화해 “이런 환자가 여차저차 하여 우리병원에 왔는데 어떤 환자인지요?”라고 물어보면 엄밀히 말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 된다. 본인이나 위임장을 받은 사람이 아니면 의료정보에 대해 이야기해 줄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경고나 국가적인 통제 시스템은 질병관리본부, 보건복지부가 해야 할 일이다. 일차적인 책임은 정부에 있다. 그런데 평상시에 입원 빨리 시켜달라고 부탁하던 분들이 이제와서 확산의 원인이 병원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참으로 후안무치한 일이다. 갑근세 꼬박꼬박 떼어가고 그것도 모자라 연말정산에서 더 가져가서 도대체 정부는 뭘한 건지 모르겠다. 국민은 국가에 세금을 내고 그에 따르는 보호를 받아야 한다. 메르스 사태가 이 지경이 되도록 정부는 과연 무엇을 한 것인가?

송형곤은?성균관대 의과대학 삼성서울병원 응급의학과장, 제37대 대한의사협회 집행부에서 대변인을 역임했다. 현재 경기도의료원 이천병원 응급의학센터장을 맡고 있다.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