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건강증진연구소 서리풀 논평] 메르스 파동 – 지도자가 해야 할 역할

[라포르시안]  메르스 사태는 위기의 양상과 크기로 볼 때 이미 ‘정치’의 장에 진입한지 오래다(현실 정치가 아니라 넓은 범위의 정치를 뜻한다). 따라서 유례없는 정치적 지도력의 시험대, 그것이 이번 사태의 또 하나의 본질이다.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지도력 없이는 해결은커녕 더 큰 혼란과 위기를 불러온다는 데에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공중보건 위기 상황에서는 크게 두 가지 리더쉽 유형이 있을 수 있다. 하나는 정치인(정무직 공무원)이 전문가(전문관료)의 도움을 받아 중심 역할을 하는 것이고, 다른 방식은 전문관료가 권한을 위임받아 전체 의사결정을 관장하고 정치 지도자가 이를 지원하는 형식이다(로라 칸(Luara H. Kahn), <누구의 책임인가? 전염병 유행, 생물테러, 공중보건 위기 상황에서의 지도력(Who's In Charge?: Leadership during Epidemics, Bioterror Attacks, and Other Public Health Crises)>, http://amzn.to/1FAziAk).   

어느 나라든 마찬가지지만, 두 가지 유형 가운데 대체로 후자가 더 많다. 즉, 전문가나 전문관료가 핵심적인 의사결정을 하고 정치 지도자가 이를 지원하는 역할을 맡는 체계다. 로라 칸은 미국의 경험으로 볼 때 두 가지 가운데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어느 쪽이든 협력의 경험, 적절한 역할 분담, 정확한 의사소통, 상호 이해가 있으면 성공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실패한다는 것이다. 

차분히 되돌아볼 여유가 없으므로 우리에게 어느 유형의 리더쉽이 더 나은지 따지지 않는다. 그리고 사태의 시작부터 치면 이미 상당한 시간이 지났으므로 되돌리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정치적 지도력을 정비하는 것은 지금 이 시점에도 중요성이 줄지 않았다. 불확실성이 더 커지고 있는 때이므로 오히려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대통령과 정부, 정치 지도자들에게 두 번, 세 번 강조해서 말한다. 효과적인 리더쉽이 어때야 되는지 숙고하고 그 지도력을 발휘해 줄 것. 무슨 고급의 이론이나 정보, 노하우가 아니라 상식에 가까운 것, 정치인들이 늘 말하는 그 조건들로 충분하다(많은 자기계발서와 경영 서적의 주제이기도 하다).   

1. 정확하게 상황을 이해할 것  

정치적 뒷받침, 지원, 개입은 모호한 선언이나 다짐, 또는 비현실적이고 추상적인 지시가 아니다. 정확하게 목표를 설정하고 권한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상황을 완전히 이해하고 장악해야 한다. 기초적인 정보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면 대중의 신뢰는 한 순간에 사라지고 리더쉽은 무력해진다.  

2. 명확한 목표를 제시하고 우선순위를 정할 것

공중보건의 위기상황은 늘 복잡하고 혼란스럽다. 당사자가 많고 서로의 이익과 목표는 일치하지 않는다. 격리나 정보공개에서 개인의 인권과 공공의 이익이 충돌하는 것은 그 가운데 한 가지일 뿐이다. 지도자는 통합적인 이해와 판단을 토대로 명확한 목표를 제시하고 상충하는 가치와 목표 사이에서 우선순위를 명확하게 해야 한다.     

3. 대응(대안) 체계를 만들고 권한을 정해 맡길 것

통상적인 체계가 작동한다면 다행이지만 대안 체계를 찾고 만들어야 하는지 판단해야 한다. 새로운 체계가 필요하다면 핵심 구성요소와 책임자를 정하고 권한을 명확하게 위임하는 것이 정치 지도자의 역할이다(책임까지 떠넘기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분명하게).           

4. 일관되고 지속적인 메시지와 의사소통

정치 지도자가 지도력을 발휘해야 하는 것은 공무원과 행정체계는 물론이고 전체 사회와 그 구성원까지 포함한다. 정확하고 명료하며 일관된 메시지를 통해 ‘모든’ 사람들을 움직여야 한다. 이 많은 이해당사자와 관련자, 행위 주체, 대중을 하나의 흐름으로 결집시키는 것이 효과적인 지도력이다.

    5. 자원을 동원하고 지원할 것

“최선을 다하라”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적극 협조해야 할 것” 등의 지침은 공허하다. 더 구체적이고 실질적이며 권위 있는 것이어야 한다. 위기상황에서 인력과 재정을 동원하고 자원 투입의 양과 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기존 체계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법과 규정의 한계, 예산의 제한, 관료주의적 관행과 저항을 돌파하는 것은 정치적 지원 없이는 불가능하다.  

6. 조정과 통합의 중심 역할

공중보건의 위기 상황에서도 행정부 내부는 물론이고 그 외부도 끊임없이 나누어지고 달리 움직인다. 대책본부가 몇이며 태스크포스가 얼마나 많은가. 전국적으로 어느 정도나 ‘대책회의’를 했을지 상상해 보시라. 그렇다면 이런 ‘파편화’를 조정하고 통합하는 것이 누구의 책임일까. 보고와 회의가 아니라 조정과 통합을 위한 의사소통이 필요하다.       

7. 모니터링과 감독, 피드백의 주체

권한을 위임하는 것은 지도자가 손을 털고 마치 남 일처럼 비평가가 되는 것이 아니다.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장애물은 무엇인지, 무엇을 지원해야 하는지, 꼼꼼하게 챙기고 점검하며 그 결과를 피드백 해야 한다. 질책과 비난, 희생양 삼기가 아닌, 서포트를 중심으로 하는 ‘지원형’ 피드백이 중요하다. 이것이 보고서(심기, 표현과 폰트 크기, 문장부호에만 신경을 쓰는), 회의(수많은 사람이 같은 복장으로 모여 이미 다 아는 보고를 하고 훈시를 듣는), 현장 시찰(높은 사람의 경호와 의전, 화면에 비쳐지는 모양이 중심인)을 뜻하는 것이 아님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다. 

8. 장기적 전망과 방향을 제시할 것

위기가 완화되고 마무리되는 때에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전망과 비전을 내놓는 것이 중요하다. 방역체계와 조직, 공공보건의료, 병원, 의료제공체계, 그리고 정치적 리더쉽 그 자체. 드러난 문제들을 점검하고 어떻게 미래를 만들어가야 하는지 제시해야 한다. 

지도력이 갖추어야 할 것이 어디 이뿐이겠는가. 한국 상황에서, 그리고 지금까지의 경과를 보건대, 특히 아쉬운 것 몇 가지를 지적했다. 지금이라도 고치고 보완하는 쪽에 강조점이 있다. 

하루 이틀에 되기 어렵다는 것, 그리고 이런 역할을 해야 하는 사람들은 막상 그런 줄도 모른다는 것이 문제다. 미래를 기약하는 수밖에 없지만 당장 반걸음의 진전이 왜 의미가 없겠는가. 냉소와 한탄, 분노를 넘어 이렇게 하라고 요구하고 ‘그들’을 압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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