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화(한국과학기술원 초빙교수, 한국디지털병원수출사업협동조합 이사장)


고백하건데 이번 인터뷰이(interviewee)는 ‘더’ 만나지를 못했다. 인터뷰 약속을 잡기 전 명확하게 의사전달이 이뤄지지 못한 탓이다. 막상 인터뷰를 위해 마주하고 앉았지만 인터뷰이가 인물중심의 인터뷰를 불편해 했기 때문이다. 또 50여분에 불과한 인터뷰 시간으로 ‘더 만났다’라고 말하기엔 꺼림칙하다. 인터뷰 기사 마감을 포기할까 생각도 했지만 그러기에는 아쉬움이 더 클 것 같아 염치 불고하고 부족한 기사를 지면에 내보낸다. 

3호선 양재역 근처에 위치한 한국과학기술원(KAIST) 도곡캠퍼스에서 이민화 교수를 만났다. 1953년생.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몸소 입증하듯 그의 외모와 말투만으론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그는 의료계에선 초음파진단기 전문업체인 메디슨의 창업자로 더 유명하다. 벤처업계에서는 ‘벤처의 대부’로 통한다. 지금은 카이스트 기술경영대학원과 과학영재교육연구원에서 차세대 영재기업인 양성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에 매진하고 있다. 2009년 7월부터 2010년 11월까지 정부가 추진하는 규제 완화 정책의 일환으로 출범한 ‘기업호민관실’(중소기업 옴부즈만실)의 초대 기업호민관을 맡기도 했다. 기업호민관은 차관급 직위였다. 올해 2월부터는 지식경제부가 디지털병원 패키지형 수출사업을 전담하기 위해 출범한 ‘한국디지털병원 수출사업협동조합’의 초대 이사장도 맡고 있다.

조금 궁금했다. 왜 인물인터뷰를 불편해하는 지. 혹시 언론 인터뷰와 관련된 ‘트라우마(trauma)’가 있는 건 아닌지 농담처럼 물어봤다.

“그런 것은 아니다. 트라우마라는 것이 별로 없다. 기억력이 그다지 좋지 않아서 자주 까먹고 잊어버린다. 시대에 따라 자기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역할이 사회전체의 구성과 맞아 들어가야지 건전한 사회가 된다. 지금은 벤처협회에도 잘 가지 않는다. 가서 ‘감 놔라 배 놔라’ 하면 젊은 사람들이 일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 지금 해야 할 역할은 젊은 사람들이 일하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고 뒷받침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역할은 다음 세대를 위한 인재양성이란 것을 어렴풋이 짐작하게 만든다. 직접 전면에 나서 주목받기 보다는 한걸음 물러서 ‘배경 역할’을 하고 싶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되지 않을까 싶다. 

메디슨 창업자로서 ‘벤처 황금기’를 일궜던 그가 아닌가. 한 때 ‘이민화 = 메디슨’으로 인식될 정도였다. 그가 지금의 삼성메디슨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했다. 

“삼성메디슨은 좋은 일이다. 한국의 의료산업이 세계화하려면 필요한 것이 글로벌 네트워크와 브랜드, 자금력 등 세 가지가 필요한데 삼성은 그 세 가지를 모두 갖춘 기업이다. 한국의 의료산업이 단독으로 세계에 진출해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런 측면에서 삼성이 글로벌 파워와 브랜드를 앞세워 (의료산업을)밀고 나가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지금 그가 가장 관심을 갖고 애정을 쏟고 있는 역할은 지난 2월 출범한 ‘한국디지털병원 수출사업협동조합’의 이사장 업무다. 비상근 이사장이지만 그가 조합에 쏟는 열정은 만만치 않아 보인다. 

조합은 현재 IT 플랫폼 기반의 병원설계 단계부터 의료기기, 의료서비스 등 병원 설립의 모든 과정을 토탈 패키지로 수출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 조합에는 주요 의료기기업체, 의료정보 전문업체, 병원 등 70개가 넘는 회원사가 가입돼 있다. 최근에는 서울대병원도 회원사로 가입했다. 지난달에는 페루와 에콰도르 등 중남미 지역에서 10건의 디지털병원 수출건을 수주하는 성과도 올렸다. 이 교수는 앞으로 우리나라를 먹여 살릴 신성장 동력으로서 의료산업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란 믿음에 가까운 ‘확신’을 갖고 있었다.

“우리나라가 급성장 하는 과정에서 반도체와 조선의 역할이 컸다.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의 규모가 2500억불 정도인데 한국이 그 중에서 500억불(20%)을 점유하고 있다. 또 조선업의 글로벌 시장 규모가 1,000억불인데 그중에 한국이 500억불(50%)를 점유하고 있다. 그리고 의료산업을 전 세계 시장 규모가 5조 달러에 달한다. 반도체와 조선업의 수십 배 규모다. 그 산업을 우리가 잡을 수 있느냐 없느냐는 한국 전체의 문제다. 앞으로 의료산업에서 반도체와 조선업 정도의 수출이 가능하다고 본다”

의료산업을 이른바 수출효자 품목으로 육성하는 것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라는 말이다.

“우리가 할 수 있겠느냐는 수동적 입장보다 그렇게 만들지 않으면 한국의 미래가 없다고 봐야 한다. 우리나라가 의료와 교육 부문에서 경쟁력을 확보하지 않으면 미래 경쟁력이 있을까.. 한국은 이제 의료와 교육 같은 지식산업 분야에서 강자가 되어야만 미래가 있다고 확신한다. 교육과 의료 분야를 못 키우면 한국의 미래는 없다”

확신.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확신이 느껴졌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의료산업 수준이 과연 반도체와 조선업만큼 해외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췄느냐는 것이다. 

“의료산업 분야 가운데 의료IT는 세계적 경쟁력을 갖췄다. 의료장비는 가격대 성능비를 볼 때 나름대로 경쟁력을 갖고 있는데, 다만 400병상 이하의 병원급에서 그렇다. 1000병상 이상 대형병원은 한국의 의료장비가 들어가기 쉽지 않다. 중소 규모 병원에서 한국 의료장비가 경쟁력을 갖고 있다. 의료기술 역시 분명 경쟁력이 갖췄는데 의료인 자체가 나가서 하는 것은 어렵다. 전체적으로 놓고 볼 때 우리나라의 의료산업이 탁월한 경쟁력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의지다. 한국의 수출효자 품목인 반도체, 조선, 건설, 자동차 등은 처음 시작할 때 미미하기 짝이 없었지만 의지를 갖고 덤벼들었기에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그 덕을 계속 볼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가 의료산업을 육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의료산업 수출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이지 ‘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소극적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의료산업이 한국의 미래 성장동력으로서 역할을 해야 할 때가 왔다는 생각이 확고했다.

“우리가 의료수출을 할 수 있냐고 물어서는 안 된다. 어떻게 하면 할 수 있는지를 물어보라는 것이다. 그것을 하지 않으면 미래가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의 최고 인력이 IT 분야로 가서 IT산업이 컸다. 이제는 최고 인력들이 의료 분야로 가는 시점에서 의료산업이 한국을 못 키운다면 누가 키울 수 있을까. ‘소는 누가 키우나’라는 유행어처럼 이제는 그렇게 할 때가 됐다”

뛰어난 공학자이자 해박한 인문학도

익히 알려진 것처럼 그는 국내에서 최초로 초음파진단기를 개발한 공학자다. 초음파 진단기술과 u-헬스케어 기술 관련해 170여개의 특허를 출원한 테크놀로지스트(Technologist)이다.

“지금까지 특허 출원한 것이 170여개 정도인데 그 중에서 3분의 1이 u-헬스케어 관련 특허다. u-헬스란 용어는 내가 2001년에 만들었다. 처음에 만들 때 ‘유비쿼터스 헬스케어 네트워크’였다. u-헬스는 한국의 의료산업이 전 세계 헬스케어 부문을 석권할 수 있는 큰 분야중 하나로 보고 출발한 것이다"

그는 u-헬스케어 기술이 상용화되고 실제 의료서비스에 적용되면 의료비 부담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확신했다. 그의 말을 듣고 있자니, 마치 국내 의료서비스가 u-헬스와 의료-IT융합기술을 기반으로 한 '스마트 케어'로 전환하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 같았다. 그만큼 그의 말과 표정은 단호했다.

"앞으로 u-헬스가 상용화되지 않으면 늘어나는 의료비를 감당할 수 없게 된다. 현재 의료비 부담이 가장 큰 것이 고혈압, 당뇨, 천식 등의 만성질환인데 관련 환자들이 대부분 노인이다. 병원이 이들 환자를 모두 관리하는 것은 어마어마한 낭비다. 당뇨만 놓고 볼 때 혈당관리만 제대로 하면 의료비의 10%를 줄일 수 있다. 혈당관리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u-헬스다. u-헬스가 상용화되지 않는 이유는 법적 규제 때문이 아니라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건강보험에서 u-헬스를 커버해주면 확산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이미 많은 연구에서 u-헬스가 보급되면 보험재정이 줄어들 것이란 점이 입증됐다. PACS(의료영상저장전송시스템)를 보면 알 수 있지 않나”

‘열하일기, 고조선문자, 유라시아 유목제국사…’. 그의 어깨너머로 보이는 책장에 꽂혀있는 책이다. 전공 분야의 서적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대부분 인문학 관련 서적이었다. 의외였다. 그런데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요즘 관심을 갖고 있는 '스마트혁명이 인류를 어디로 끌고 갈 것인가'하는 다소 철학적인 주제와 무관치 않았다. 그는 2010년에 ‘스마트 코리아로 가는 길 : 유라시안 네트워크’라는 책을 썼다. 그는 이 책에서 유라시아 유목민족(몽골리언)의 역사를 끌어와 한국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으로 '디지털 노마드'가 되어 개방적 무역국가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또한 '초유기체(Super-Organism)' 개념을 근거로 인류가 앞으로 어떤 식으로 진화할 것인가 하는 주제를 다뤘다.

“유라시안 네트워크엔 결론만 제시해 놓았다. 결론은 2가지다. 인류가 슈퍼맨이 되어야 한다는 것과 개미처럼 집단생명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개미집단은 마치 하나의 생명체처럼 움직이지만 각 개미마다 역할이 있다. 이런 생명체를 초유기체(Super-Organism)라고 한다. 초유기체가 생물학에서 굉장히 중요한 연구과제이다. 현재 초유기체에 관한 많은 연구들인 인간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어렵다. 대략 정리하자면 이렇다. 앞으로 인류는 첨단 디지털 기술의 결정체인 스마트폰을 이용해 지금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원격 투시, 초감각, 동시성)을 지닌 슈퍼맨처럼 진화하게 된다. 또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하나의 신경망처럼 얽혀 마치 개미집단같은 초유기체로 나아갈 것이란 일종의 미래 예측이다. 그는 앞으로 등장하게 될 신인류를 ‘호모-모빌리언스’라고 명명했다. 조만간 ‘유라시안 네트워크’의 후속편에 해당하는 책을 통해 이런 내용을 보다 구체적으로 저술하겠다고 말했다. 

“앞으로 쓸 책에 들어갈 내용은 주로 철학과 과학 등에 관한 것이다. 지금은 주로 기술적 측면, 즉 현상에 관해 저술했다면 앞으로 쓸 책에는 그 밑에 깔려있는 변화의 본질을 생각해보자는 화두를 던지려고 한다”

한 시간도 채 안 되는 짧은 인터뷰를 마치고 카이스트 건물을 빠져나오는데 갑자기 두통이 왔다. 오른쪽 관자놀이가 지끈거렸다. 알 듯 모를 듯한 그의 말이 개미 떼처럼 까맣게 무리를 지어 머릿속을 옮겨 다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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