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건강증진연구소 서리풀 논평] ‘여성의 날’에 생각하는 여성 건강

[라포르시안]  어제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었다. 처음 시작된 때로 하면 107주년이고 유엔이 정한 해로 쳐도 40년이 넘었다. 한국이 이 날을 제대로 치를 수 있게 된 것만 해도 30년에 가깝다니 짧은 세월은 아니다.

그 사이에 나아진 것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여성의 날이 아직도(!) 있어야 이유는 질릴 정도로 익숙하다. 차별과 불평등은 좀처럼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오히려 더 나빠지는 것도 많다.

한국에서 다른 어떤 나라보다 양성 사이에 격차와 차별이 크다는 통계는 뉴스거리도 되지 않을 정도다. 비교적 최근인 2014년 10월 발표된 세계경제포럼의 보고서도 마찬가지였다 (보고서 바로가기).

 날이 날이니 만큼 다시 찾아봤다. 세계경제포럼의 관점은 여전히 좋은 인적 ‘자본’에 더 흥미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쉽게 구할 수 있고 여러 해의 추세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새삼 놀랄 것도 없이 한국은 세계적으로도 양성 평등 수준이 가장 낮은 국가에 속한다. 2014년 보고서에서는 142개 나라 가운데 117위에 머물렀다. 경제 참여 124위, 교육 수준 103위, 건강과 수명 74위, 정치력 93위 등이다.

재미있는(?) 것은 조사 대상 국가가 늘어나는 만큼 순위가 내려간다는 점이다. 2013년은 136개 나라 중 111위였지만, 2014년 6개 나라가 추가되면서 정확하게 여섯 단계가 내려갔다. 2014년에는 2006년에 비해 비교 대상이 27개 늘었는데 등수도 비슷하게(!) 뒤로 25위 물러났다.

부문별 통계에서 보듯이 경제 참여에서 성별 격차가 가장 심하다. 역시 놀랄 사람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같은 보고서에서 남녀 사이의 실업률은 거의 차이가 없다. 그러나 여성의 임금은 남성의 51% 수준으로 전체 국가 중 125위, 근로 소득의 격차는 106위다.

한국 사람이라면 이런 지표가 무엇을 뜻하는지 대강 짐작한다. 같은 보고서에 나와 있는 보조 통계 한 가지를 보태서 해석한다. 남성 노동자의 6.7%가 시간제 노동인 반면 여성은 14.7%가 시간제 노동에 종사한다.

결국 여성 노동의 전형적인 모양은 이렇다. 취업은 해야 하는데, 비정규직이 많고, 저임금이다. 우리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여성 노동자들의 상황. 결국 단순한 경제 참여의 문제를 넘는다. 출산과 보육, 빈곤, 장애, 노인, 건강으로 이어지고 서로 뗄 수 없게 얽혀 있다. 

다음은 각론이다. 모든 성차별이 ‘몸’으로 드러날 수 있다는 점에서, 총론과 함께 건강의 성차별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차별이 ‘체화’되는 과정은 단순하지 않다. 불평등 정도에 비하면 한국 여성이 건강한 편인 것을 봐도 그렇다.

세계경제포럼의 보고서에도 건강 때문에 한국 여성의 불평등 정도가 조금 개선되는 것으로 나온다. 어쨌거나 건강 수준이 괜찮다니 좋은 일이다. 그 심한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불평등이 온전하게 몸으로 나타난 것은 아니란 뜻이 아닌가.

그래도 건강은 다행이라고 안심하기는 이르다. 우선 사용된 건강지표가 매우 단순한 것이 이유일 수 있다. 출생할 때의 성비와 건강수명 딱 두 가지다. 그것도 충분히 의미가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좁다. 수명만 하더라도 “죽지만 않으면 건강한 것인가” 하는 질문이 나온다.

▲ 남아프리카공화국 구세군이 3월 8일 '여성의 날'을 맞아 공식 트위터를 통해 공개한 포스터. 색깔논쟁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등장하는 이미지를 통해 가정폭력 및 여성 학대 반대를 홍보하는 취지이다.

여성이 본래 더 오래 산다는 점을 어떻게 고려해야 할지도 문제다. 이는 2년도 더 전에 <서리풀 논평>을 통해 일부를 설명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서리풀 논평 바로가기). 요약하면,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유리한) 잠재적인 장수의 가능성을 모두 다 실현하고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

 몇 가지 생각할 것이 더 있다. 이런 총량 지표로는 불평등을 제대로 드러낼 수 없다는 점, 그리고 다양한 상황과 문제를 감춘다는 점을 그냥 넘어갈 수 없다. 부분이 전체를 만든다는 점도 중요하지만, 구체성 없는 전모는 때로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첫째는 이중의 불평등. 여성에게 가해지는 불평등한 건강 위험은 여성 내부에서 다시 불평등한 분포를 보인다. 다 같은 것이 아니라 일부 여성에게 더 불리하다는 뜻이다. 앞서 비정규 고용과 임금 격차를 말했지만, 이런 물질적 조건은 몇몇 집단에 집중된다.

이중의 불평등에 노출되면 건강 위험이 커지는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덧붙이자면, 이런 종류의 위협은 여성 한 사람에게 그치지 않고 자녀에도 미칠 가능성이 크다. 한부모 가정의 여성과 자녀가 그런 경우다.

이주 여성이나 장애 여성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들에서는 경제 문제 이외에도 차별을 비롯한 여러 사회, 문화적 요인이 겹친다. 물질적 조건과 함께 사회, 심리적 위험이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 또 다른 불평등 분포와 집중이 나타나는 것이다. 

둘째는 특별한 문제들. 여성의 중요한 건강 문제인 폭력은 보통의 지표로는 잘 포착되지 않는다. <한국여성의전화>가 언론 보도를 분석해 추정한 결과로는, 2014년 한해만 114명의 여성이 남편이나 애인과 같은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게 살해당했다고 한다 (연합뉴스바로가기). 살해가 폭력의 극단적 형태라는 점, 그리고 언론 보도는 실제 폭력의 아주 일부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 숫자조차 과소 추계된 것이다.

친밀한 관계 사이의 폭력을 넘어 가정, 직장, 학교 등을 포함하면 여성 폭력이 얼마나 심각한지는 짐작하기도 어렵다. 정부가 가정폭력과 성폭력 실태를 조사해서 발표하지만, 그 조차 실상을 모두 드러내기는 쉽지 않다.

여성의 건강을 말하면서 감정노동과 돌봄 노동도 빼놓기 어렵다. 종사하는 노동자가 대부분 여성이고, 저임금, 차별,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서비스 산업이 더 확대되고 노인인구가 늘어나면서 불건강과 불평등이 몸으로 드러날 것이 틀림없다. 

셋째로는 여성 건강의 새로운 조건을 지적하고 싶다. 그 가운데서도 중요한 영향을 미칠 한 가지 맥락이 경제의 부진과 저성장이다. 이미 많은 유럽 국가들에서 긴축으로 인해 여성이 더 많은 피해를 받는, ‘긴축의 불평등’을 경험하고 있다. 예를 들어 긴축으로 복지 예산을 줄이면 여성이 더 큰 영향과 피해를 받는다.

경제가 특별히 나아지지 않으면 한국에서도 재정과 지출 구조를 고쳐야 한다는 압력이 강해질 것이다. 채 갖추지도 못한 복지체계와 재정을 ‘재조정’하면(예를 들어 보육이나 급식) 그 피해가 누구에게 집중될까, 뻔하다. 이를 단순히 ‘부수적 피해’라고 할 수 있을까. 

백년도 넘은 여성의 날이라지만 앞으로도 전망은 썩 밝지 않다. 마침 발표된 국제노동기구의 예상은 우울하다. 남성과 여성 사이에 임금 불평등이 없어지는 데에 앞으로도 최소한 71년을 더 걸릴 것이라고 한다 (관련글 바로가기).

정말 이렇게 더 오래 기다려야 할까. 모든 사회가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지만 한국에서 그 기간을 줄이고 도약하는 방법은 없을까.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특별한 처방이 남아 있을 리 없다. 그러니 ‘교과서’에 나와 있는 해답을 종합할 수밖에 없겠다. 

우리는 특별히 제도적인 접근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 마침 독일이 이런 제도 한 가지를 새로 만들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내년부터 대기업 감독이사회의 이사 중 최소 30%는 여성으로 해야 한다는 법을 통과시켰다고 한다.

여성할당제를 두고는 한국이든 다른 나라든 조용한 법이 없다. 그 시비는 여기서 반복하지 않는다. 다만, 국제 비교로 보더라도 한심할 정도인 이 땅의 불평등을 어떻게 할까? 이 관점에서 ‘제도적’ 접근을 봐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저출산에 대비하는 대책이 아니다. 인적 자원도 경제 성장도 주변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사회·경제든 건강이든 양성의 평등을 말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누구에게나 보장받아야 하는 보편적 권리이자 존엄한 삶의 전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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