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명(내가만드는복지국가 건강보험 하나로 팀장, 가정의학과 전문의)

[라포르시안]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2년여간 심도 있게 논의해왔던 부과체계 개편안을 돌연 백지화했다. 문형표 장관이 백지화를 선언한 1월 28일은 당초 정부안을 최종 발표하기로 예고한 바로 전날이었다. 정부는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을 추진하기 위해 2년 전부터 ‘건강보험료 부과체계개선 기획단’을 꾸려 사회적 논의를 진행해왔다. 정부는 이미 지난해 9월 초 건보료 개편안의 대략적인 초안을 제시한 바 있다. 기획단에서는 1월 29일에 최종안 발표를 염두에 두고 정부안에 대한 기획단 보고서 Q&A까지 작성을 마친 뒤였다.

그런데 문형표 장관은 돌연 ‘국민을 분명히 설득시키고 납득시키기 위해서는 충분한 논리와 시간이 필요하다’며 부과체계 개편 백지화를 선언했다. 그러나 이런 변명은 궁색하기 그지없다. 이미 기획단까지 꾸려 사회적 논의를 2년 동안 진행해 왔을 뿐만 아니라, 정부조차 초안을 발표한 바 있기 때문이다. 개선안 마련에 참여한 기획단 위원들조차 백지화를 언론을 통해 확인했을 정도다. 이에 그 배경을 두고 청와대를 지목하고 있다.

부과체계 개편 백지화, 민심이반 재촉할 것부과체계 개편안 백지화를 선언하자 언론은 일제히 비판적 기사를 쏟아냈다. 이에 당황한 청와대는 백지화가 아니라 재검토후에 다시 추진하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또한 백지화 결정에 외압은 없었으며 보건복지부의 판단이라며 물러섰다. 하지만 연말정산 파문 등으로 불거진 여론의 악화를 잠시 무마하려는 언론플레이 성격이 짙다.

최근 박근혜 정부의 지지율은 급격히 하락추세에 있다. 얼마 전 갤럽조사에 의하면 박근혜 정부의 국정 지지도는 30% 밑으로 추락하였다. 건보료 부과체계 백지화는 그 직후에 결정되었다.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으로 핵심 지지층이 이탈할 것을 염려한 결과이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이것은 오판으로 보인다. 건보료 부과체계는 일년에 5천만건이 넘을 정도의 민원을 유발하고 있는 핵심 민생과제이기에 그렇다. 부과체계 개편 백지화는 오히려 민심이반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높다.

현 시점에서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이 왜 필요한 지를 간략히 살펴보자. 부과체계 개편이 추진된 배경에는 건강보험료 부담의 형평성을 제고해야 한다는 요구 때문이다. 건강보험은 급여제공이라는 측면에서는 모든 국민이 동일한 기준이 적용되고 있다. 반면 보험료 부담이라는 측면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크게 보면 지역가입자와 직장가입자간의 보험료 부과방식이 다르다.

지역가입자의 과도한 보험료 부담

1989년 지역가입자까지 포괄하는 전국민 의료보험제도가 시행 되었으나, 지역가입자의 경우 소득 파악률 부족으로 추정소득이라는 방식을 이용해 보험료를 부과했다. 재산과 자동차로 소득을 추정하는 방식이 도입된 이유이다. 당시에는 전체 국민의 절반이상이 지역가입자였고, 고소득자영업자들이 적지 않았지만, 소득파악이 안되었다. 이들의 소득을 추정하는데 당시 재산과 자동차 기준은 소득을 반영하는 지표로서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2000년 국민건강보험제도가 출범하고 지역가입자이더라도 1인이상 고용하는 자영업자는 직장가입으로 편입하는 조치를 하게 된다. 이후 지역가입자 중 고소득 자영업자들이 대거 직장으로 편입되었다. 대표적인 직업군이 의사, 변호사, 약사 등 전문직 자영업자들이며, 고액재산의 임대업자 등 1인 이상을 고용하고 있는 자영업자들은 대거 지역가입자에서 직장가입자로 전환된다.  

그 결과 지역가입자는 현재 노인, 실업자, 은퇴자, 특수고용업 종사자, 영세자영업자만이 남게 되었고, 지역가입자 비중은 30%정도로 감소하게 된다. 이들은 실제로 신고할만한 소득이 매우 적거나 소득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점차 강화된 재산기준으로 인해 능력에 비해 보험료과 과다하게 부과되어왔다. 현재 지역가입자가 부담하는 보험료중 재산이 47.6%, 소득 30.1%, 성연령 11.2%, 자동차 11%로 배분된다. 사실상 지역가입자는 재산기준으로 보험료를 납부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지역가입자에게 부과되는 재산 보험료의 대상이 고액재산이 아니라 실제 소득창출 여력이 안되는 서민 재산에 과도하게 보험료가 부과되고 있다는 점이다. 예로, 1억원 정도의 재산에 부과되는 보험료가 무려 7만7천원 정도다. 소득이 없어도 1억원의 재산이 있다면 직장가입자의 250만원의 월소득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다.

재산에 부과하는 보험료의 역진성도 매우 심각하다. 1억원 재산에 부과되는 보험료와 30억원 재산에 부과되는 보험료는 30배 차이가 있지만, 실제 보험료는 3배 정도 차이가 나는 것에 불과하다. 더욱이 3~5억원 이하의 재산은 실제 거주목적의 주택인 경우가 많아 이로부터 소득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반면 10억원 이상이라면 임대소득 등의 소득이 발생할 수 있는 주택으로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지역가입자 중 고액재산을 가진 경우는 거의 없다. 지역가입자 769만세대(2012년 기준)중 53%(411만세대)는 주택, 건물 등 부동산이 전혀 없는 전월세 거주자이다. 47%(358만세대)만이 자가 소유의 부동산을 갖고 있지만, 이들의 88%(315만세대)는 과표재산이 3억원 미만이다. 즉 재산에 부과하는 보험료는 고액재산가가 아니라 대부분 서민들의 전월세나 1주택 소유자들이 부담하고 있는 것이다.

직장가입자중 일부 고소득자의 무임승차

직장가입자 역시 보험료 부과가 불공평하긴 마찬가지다. 유일한 소득원이 근로소득뿐인 대부분의 직장가입자는 투명하게 건강보험료를 부담하고 있다. 그러나, 직장가입자중 상위 소득을 가진 일부는 추가소득이 있는데도 보험료가 부과되지 않아, 무임승차가 발생하고 있다.현재 직장가입자(1,455만명) 중 근로소득 외 종합소득이 있는 경우는 217만명(14.9%)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이자소득․배당소득과 같은 금융소득, 임대소득, 사업소득 등의 종합소득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소득에는 건보료가 부과되지 않고 있다. 건강보험료부과체계 개선기획단이 제시한 한 예를 보자.

"000는 부동산 임대소득 연 7천1백만원, 근로소득 연 1,800만원으로 총소득이 8천9백만원이나, 근로소득에 대한 월보험료 4만4천920원(총소득의 0.025%)만 납부→반면, 직장동료 A는 근로소득 연 1,800만원 밖에 없으나, 000와같이 월보험료로 4만4천 920원(총 소득의 0.25%)을 나부하고 있어 불형평 발생"

위와 같은 사례는 적지 않다. 심지어 임대, 사업 등으로 고액소득자이면서도 건강보험료를 적게 내기 위해 직장가입자로 위장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한때 이명박 전 대통령이 강남에 고액빌딩을 소유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직장가입자로 위장하여 월 건강보험료를 2만원만 납부했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다른 한편으로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로 등록되어 소득이 있음에도 무임승차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수는 현재 2천만명 정도인데, 이들 중 11.5%인 233만명은 소득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건강보험료를 한 푼도 부담하고 있지 않다.

김종대 국민건강보험공단 전 이사장이 퇴임식에서 자신은 5억6천만원의 재산과 연 2천만원이 넘는 연금소득이 있음에도 피부양자로 전환되어 건강보험료를 한 푼도 내지 않아도 된다며 부과체계 개편의 필요성을 마지막까지 역설한 바 있다.

소득중심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이 필요

이러한 지역/직장간, 직장 내에서도 근로소득/종합소득간에 불공평한 부과방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필요성은 그간 꾸준히 제기되어왔다. 특히 요즘엔 취업의 불안정으로 직장에서 지역으로, 지역에서 직장가입자로 전환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전체 세대의 12%가 매년 직역간 이동이 발생되고 있다. 특히 지역가입자의 경우 소득 외에도 재산, 자동차에 건강보험료가 과도하게 부과되고 있어 퇴직이나 은퇴 후 소득은 사라지는데도 지역가입자로 전환된 이후 오히려 보험료가 2배이상 급증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자료에 의하면 건보료 부과방식에 대한 민원이 1년에 무려 5천만건이 넘는다고 한다.

이와 같은 불평공한 부과방식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단일한 기준의 부과원칙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그 기준으로 제시된 것이 ‘소득’이다. 사회보험방식의 국민건강보험은 보험료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능력비례 부담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부담능력이란 곧 소득을 의미할 것이다. 만일 소득을 기준으로 건보료를 부과하게 되면, 앞에서 제기된 지역/직장간, 직장가입자간 불평등한 부과문제가 모두 해소된다. 즉, 지역/직장을 따지지 않고, 소득의 종류를 따지지 않고, 모든 가입자에게 모든 소득을 기준으로 건보료를 부과하자는 원칙을 세워야 한다.

소득중심으로 건보료를 부과할 경우 많은 직장가입자들이 건보료 인상을 우려하기도 한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근로소득뿐인 직장가입자는 건보료 변화가 없다. 단지 근로소득 외 일정이상의 종합소득이 있는 가입자와 피부양자들의 경우 보험료가 인상된다. 소득중심의 부과체계의 원칙을 전면 시행하더라도 이에 해당되는 가입자는 10%도 되지 않는다. 이들의 경우 대부분 우리 사회의 상위 10%정도의 고소득층이다. 비록 이들의 보험료가 증가하지만, 실제로는 그간 능력에 비해 과소부담을 해왔던 것을 정상화하는 것에 불과할 것이다. 대신 많은 지역가입자의 대부분은 보험료가 대폭 경감된다. 이들은 그간 자신의 부담능력보다 과하게 보험료를 부담해왔던 것을 정상화하는 것이다.

물론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은 온전한 소득중심의 부과체계 개편이라 하긴 어렵다. 지역가입자의 보험료부과가 여전히 재산 중심일 뿐 아니라 새로 건보료를 부과하는 소득범위도 한정되어 있기에 그렇다. 애초 정부안은 지역가입자의 보험료 부과기준 중 성연령 기준과 자동차 기준을 폐지하고, 재산기준을 조금 상향하는 데 그치고 있다. 여전히 재산중심의 부과기준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소득범위도 연간 2천만원이상의 종합소득으로 한정하였고, 종합소득 외의 소득인 퇴직소득, 양도소득, 상속증여소득은 배제했다.

그러다보니 실제로 건보료 부담이 증가하는 고소득자는 전체 국민의 1%에도 못 미치는 45만여명에 불과하다. 대신 지역가입자의 대다수는 보험료가 소폭 경감되는 방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보료 부과의 형평성을 제고하는 조치로서 긍정성은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이를 기반으로 건보료 부과 소득범위를 점차 확대해나가면서 소득중심의 부과체계를 완성해 나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기에 그렇다.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 반드시 추진해야

정부는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으로 겨우 1%의 고소득자의 보험료 부담이 늘어나는 것을 두려워해 돌연 백지화하였다. 아마도 현 정부의 핵심지지층의 반발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갑작스런 백지화 시점이 현정부의 국정지지도가 30% 밑으로 추락한 직후의 결정된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정부의 백지화 선언은 오히려 더 큰 지지도 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미 지난해 9월 부과체계 개편의 기본방향을 발표해 놓고선 극히 일부 고소득층의 반발을 우려하여 백지화를 선언한 것은 정부의 신뢰를 크게 갉아먹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고려를 떠나 국민건강보험제도에 대한 신뢰를 대폭 향상시키기 위해서라도 보험료 부담의 형평성을 제고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소득중심의 부과체계 개편이 필요한 이유다. 이를 기반으로 향후 건강보험료 인상을 통해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확대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는 조속히 부과체계 개편을 다시 추진해야 한다.

김종명은

고려대학교 의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보건정책관리학을 공부했다. 현재 가정의학과 의사로 지방 공공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민간 의료보험의 실체를 파헤친 <의료보험 절대로 들지 마라>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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