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경남 모 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라포르시안]  현재 지방의 대학병원이 아닌 수련병원에서 20년간 근무하고 있다. 최근 수련병원에서 전공의들이 수련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을 하는 사태 등을 보면서 지도전문의로서 부끄러운 마음으로 이 글을 적는다.

필자가 수련을 받을 때만 하더라도 지금보다 사정이 더 좋지 않았다. 1년차 때는 3개월을 집에 가지 못하고, 1주일에 6일 당직을 할 때도 있었다. 그런데 그 때는 몸이 힘들지만 나름 배운 것도 있고, 집에 가지 않고 환자 때문에 고민하고, 의학서적과 논문을 찾아보고 한 것이 지금 생각이지만 많은 도움이 된 게 사실이다. 그 당시 힘든 수련기간을 참을 수 있었던 것은 나름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전공의들은 미래에 대한 비전과 기대감이 사라졌다. 전공의 지원도 대학처럼 인기과, 비인기과가 생기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의 의료의 불행이 시작된 것이다.

지방병원의 끝이 보이지 않는 추락, 환자 유치 ‘블랙홀’이 된 서울 대형병원

이른바 ‘빅5’ 병원의 2014년 1분기 총 입원 진료비는 4161억원으로 전체 의료기관 대비 9.2%, 전체 상급종합병원 대비 34.4%의 입원 진료비 점유율을 기록했다. 지방은 병실이 비어있고 서울은 병실이 없어서 응급실 대기를 해야한다. 응급실은 매일 전쟁터다. 이러다보니 응급을 다투는 환자들이 제시간에 진료를 받지 못하는 불상사가 벌어지기도 한다.

지방에서 암진단을 받으면 맨 먼저 하는 것이 서울의 대형병원을 찾고, 인맥을 찾아서 예약을 하거나 아니면 아예 바로 응급실로 달려가서 눕고 보는 것이 이제는 현실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정도는 아니었는데 이제는 왠만한 병은 서울로 가야한다고 사람들은 생각하게 되었다.

지방 대도시에 위치한 어느 종합병원은 대학병원은 아니지만 수련병원으로서 지역에서 나름 비중이 있는 의료기관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인턴, 레지던트가 없어서 중환을 볼 수 없는 병원이 되어버렸다. 결국 이 병원의 가장 큰 문제는 인턴과 레지던트를 값 싼 인력으로 보고, 제대로 된 교육프로그램을 스스로 만들지 못함으로써 전공의들에게 미래의 비전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다 병원이 변했어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는 뒤처지면서 도태한 셈이다.

경남의 한 도시에는 소아 환자가 입원할 수 있는 종합병원이 있었다. 그런데 이 병원 소아청소년과에 수년째 전공의 지원자가 나타나지 않더니 이제는 전공의가 없는 병원이 되었다. 결국 소아환자 입원병상을 폐쇄했고, 이제는 인근 대도시의 큰 병원으로 환자를 전원시키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전공의는 어떤 존재인가

전공의는 피교육자의 신분이지만 엄연히 의료인으로서 역할을 한다. 서울의 대형병원들이 몸집 불리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전공의들의 피땀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점을 절대로 부정할 수 없다. 대형병원의 발전에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병원을 지켜준 전공의들의 피땀이 있었다. 그런데 이런 구조로 성장해 온 병원들이 문제에 봉착했다. 법으로 전공의 근무시간을 단축하고 전공의 수를 줄이니 대책이 없다. 결국은 허위로 만든 근무일지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최근 각 병원마다 새롭게 건물을 올리고 확장을 했다. 병실의 시설은 좋아지고, 환자나 보호자가 병원에서 보다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개선됐다. 그런데 전공의들이 지내는 숙소는 예나 지금이나 나아진 게 별로 없다. 여러명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숙소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열악하다. 아마 그들의 부모들이 전공의 숙소를 봤다면 당장 그만 두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병원이 첨단 시설로 바뀌고 의료기술로 발전하고있지만 전공의를 바라보는 병원 내부의 인식은 아직도 낡은 사고 그대로다.

▲ 지방 어느 병원의 전공의 숙소 모습.

낮은 의료수가는 병원 경영을 힘들게 하고 있다. 매년 인건비는 올라가고 병원들이 자구책으로 월급받는 의사들을 압박하고 있다. 이제는 아예 대놓고 진료실적이 얼마라는 것을 보여주면서 압박을 가한다. 그러니 이미 대학병원을 비롯한 많은 병원들이 ‘소신진료’ 원칙을 지키면 살아남기 힘든 구조로 내몰린다. 이런 것을 두고 의사들 사이에 사무장병원이 되었다고 한다. 이런 사정이니 전공의 문제에는 냉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병원마다 조금 다르지만 아침에 환자를 보고하는 시간이나 회진시간이 되면 전공의들은 긴장의 연속이다. 지도전문의 말 한마디에 험악한 분위기가 된다. 그야말로 공포의 시간이다.  군대가 군기가 세다고 하지만 병원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렇게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수직구조의 수련교육체계가 아니라 서로 소통하는 수련교육체계로 가야 한다. 그리고 전공의에게 하는 말 한마디에도 신경을 써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한다. 굳이 옛날처럼 회진하면서 지도전문의가 소리 지르고 하지 않아도 전공의들이 알아서 하도록 만드는 것이 합리적이다. 지도전문의나 전공의 모두 의사라는 같은 직역에 있는 동료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인턴선생이 과로 배정을 받았다. 그런데 응급실 환자를 담당하도록 하니 인턴을 한 지 벌써 수 개월이 지났지만 환자를 직접 대해 본적이 없고, 의사로서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한다. 이전에 거쳐왔던 과에서는 의사로서 역할 보다는 단순 잡무에 매달렸다고 한다. 막상 환자를 담당하라고 하면 무서워서 못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한다.

대형병원일수록 인턴은 잡역부 수준이다. 심부름하고, 수술실에서는 뭔지도 모르고 환자 수술 부위를 당기고 있고, 응급실에 오는 환자는 간단한 병력청취만 하고 해당과 전공의에 전화해 연락하는 수준이다. 그 다음에 환자의 진단이 무엇인지, 치료가 어떻게 되고 있는 지는 아예 관심을 가질 수 없는 분위기이다. 인턴에 대한 수련교육 프로그램은 거의 없다시피 한다. 의사면허증을 가진 사람들을 불러놓고 교육한다는 것이 고작 이런 것이라면 인턴제도는 필요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너무 무책임한 복지부

보건복지부에는 많은 공무원이 있고, 그중에는 의사출신들도 있다. 그런데 참 이해가 안되는 점은 임기가 너무 짧다는 것과 정책의 입안에서부터 실행까지 고민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행정고시라는 절차를 밟고 임용된 우수한 인력들이 하는 정책이라기에는 너무나 실망스럽다. 의사 출신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몇 년전 응급의료법 개정으로 인해 의료계가 시끄러웠다. 당시 많은 병원들이 복지부가 제시한 방안대로 하면 응급의료기관 지정을 반납하겠다고 반발했다. 복지부 담당과장은 공청회에 나와서 ‘이미 지나간 버스’라고까지 표현했다. 그런데 당시 담당 과장이 응급의료법 개정의 혼란스러운 입안 과정에서 인사이동이 있었다. 절대로 개정안을 바꿀 수 없다고 하던 복지부도 결국 유보라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이런 예만 보아도 정책입안을 담당하는 복지부의 전문성과 책임에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다. 

더욱이 지난 2012년 복지부는 일부 인기과에만 전공의 지원이 몰리고 의과대학 졸업생 수보다 전공의 자리가 많으니 전공의 정원을 2017년까지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전공의 수는 줄었지만 비인기과 전공의 지원은 변함이 없다. 올해는 오히려 내과의 지원자가 줄어들 것이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전공의 수를 줄이면서 생기는 의료공백에 대해 복지부는 아무 생각이 없다.

소위 전공의 비인기과, 또는 기피과는 어떻게 생긴걸까? 결국 의료수가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미래가 보장되지 않으니 전공의 지원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문제의 본질을  바꾸지 않고 전공의 정원 축소로만 해결한다는 것은 그나마 겨우 유지하고 있던 의료현장을 더 혼랍스럽게 만든 셈이다.

얼마 전 복지부 관계자는 영상의학과, 진단검사의학과의 상대가치평가가 높게 되어있다고 판단해 이를 낮추고 대신에 다른 과에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한적이 있다. 만일 그렇게 하면 결국 해당과는 전공의 지원이 줄게되어 소위 비인기과가 되는 것이다. 이게 복지부 정책의 현주소다. 건강보험 보장성을 확대하면서 소요되는 재정부담을 이런 식으로 해결하겠다는 의도다. 강변 둑에 물이 새는데 다른 곳에 잘 있는 돌을 빼서 막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돌이 빠진 둑에는 또 물이 샐 수밖에 없는데 언제까지 이런 일을 반복해야 하는 지 모르겠다. 복지부는 좀 더 현장의 목소리를 고민해서 정책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병원협회가 수련기관 평가를 하는 그 자체가 모순 

대한병원협회라는 단체는 이름부터 바꾸어야 한다. ‘병원경영자단체장 협의회’로. 병원협회가 의사들을 위한 권익을 위하는 단체는 분명히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새로운 의료정책을 제안하는 곳도 아닌데 수련기관 평가를 맡고 있다는 것 자체가 모순의 시작이다. 

최근 문제가 되었던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의 경우 작년 수련기관 심사에서 문제가 없다고 인정한 곳인데 정작 알고 보니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을 보고 적절한 수련기관으로 판단한 것인 지 묻고 싶다. 순천향대학 천안병원도 문제가 되고 있는데 이 역시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과 다를 것이 없다. 지금의 수련기관 평가에 대한 병원협회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고, 아예 새로운 수련기관 평가기구를 만드는 게 나을 것 같다. 그리고 이를 인정한 복지부도 책임을 지는게 맞다.

대한의사협회도 참 이해가 안되는 곳이다. 병원에 근무하는 많은 의사 회원들이 있는데 아무런 대책이 없다. 전공의들이 힘들다고 그렇게 외치고 있는데 실제 움직임을 느낄 수 없다. 회원들의 회비을 받았으면 해야될 일은 해야하지 않을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현재 수련환경 평가는 학회 활동, 논문, 진료, 전공의 근무시간 등을 현지실사 없이 서류상으로 검토를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는 학문적인 내용, 진료 내용 등이 포함돼 있으나 정작 중요한 전공의 처우에 대한 것이 없으므로, 급여( 당직 비용 등) 숙소, 식사 등을 포함한 병원 내 후생복지에 대한 면도 점검이 되어야 하며, 전공의의 휴가 일 수 역시 포함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현지실사 때에는 전공의와의 직접적인 면담을 통해 문제점이 없는 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새로운 수련기관 평가기구가 필요하며, 이 구성에는 다양한 직역이 포함이 되어야 할 것이다.  

전공의는 피교육자의 신분이지만 의료인력으로서의 기능도 있다. 따라서 적절한 노동과 댓가를 치루도록 해야하며, 다른 근로자들과 근무조건을 같이 하되 복지부는 발생하는 의료공백에 대하여 대책을 미리 마련해야 한다. 지금처럼 책임을 병원에만 지우고 참고 견디라고 하는 것은 복지부의 직무유기이다. 

특히 지방병원의 경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으므로 전공의 총정원제 등을 도입해 의료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한편 일정기간 동안 수련기관으로서 미비한 점을 보완하도록 하고 그래도 안 되면 전공의 수련기관에서 제외해야 한다. 지방병원은 이제 한계에 왔다. 지방을 살리는 특단의 조치가 정말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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