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건강증진연구소 서리풀 논평 - 신해철의 죽음과 환자 안전

[라포르시안]  가수 신해철의 갑작스런 죽음은 충격이다. 정확한 사정은 알 수 없다. 수사를 한다고 하니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알려진 것만 하더라도 ‘사고’가 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유명인의 죽음이니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사고다. 벌써 ‘찌라시’에 내용이 올랐다지만 한낱 흥밋거리로 시종할까 걱정스럽다.

사고가 명확한 만큼 유명인이 아니라 한 개인으로도 경과와 전후 사정을 밝히는 일은 필요하다. 논평을 작성하는 이 시각까지 여론은 해당 병원이 잘못했을 것이라고 의심하는 쪽이다. 그러나 다들 짐작하듯이 이런 일에 잘잘못을 가리는 일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그 많은 의료소송의 경과와 결과를 보라.

환자를 진료하는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생기는 것을 흔히 ‘의료사고’라 부른다. 치료 때문에 다른 병이나 심각한 부작용이 생기는 경우에 해당한다. 어떤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고 어떤 때는 사고라 해야 하는지 딱 부러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흔히 이렇게 부르니 그대로 따른다.

꼭 누가 잘못을 해야 의료사고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언뜻 이해하기 어렵지만 논리로는 당연하다. 건강과 목숨은 많은 사고와 우연에 노출되어 있고, 병원 안이라고 피해가지 않는다. 성형수술을 하러 입원했다가 전혀 상관없는 심장마비를 경험할 수도 있는 법. 

치료 과정에서 의료 전문가의 잘못이 있으면 ‘의료과오’라고 한다. 아주 가끔 황당한 사례로 소개되는 반대편을 수술했다는 잘못은 극단적인 과오다. 이미 말했지만 과오와 사고가 늘 일치하지는 않는다. 잘못이 있었더라도 모두 사고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며, 잘못한 것이 없어도 사고는 생길 수 있다.

사고와 과오를 두고 무엇이 어때야 바람직한가를 묻는 일은 부질없다. 이상적으로는 잘못한 일이 없어도 생기는, 정말 피할 수 없는 사고를 빼고는 의료사고가 없어야 한다. 그러나 그게 말처럼 쉬울까.

그러나 문제가 복잡하고 어렵다고 그냥 있을 수는 없다. 무엇보다, 누구나 의료사고에 노출되어 있는 현실이 엄중하다. 개인의 큰 불행을 줄이는 노력을 마땅히 감당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의료사고와 과오를 완전히 없애지는 못해도 줄일 수는 있다. 특히 여러 가지 잘못이 겹쳐야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예방에 주목하게 만든다. 

우선 기본 전제 하나. 나라마다 의료사고와 과오의 빈도가 다르다. 우연이 아니라 사회적 현상이며, 의료 환경과 제도에 따라 달라진다는 뜻이다. 개인의 주의와 노력을 넘어 사회 전체로, 그리고 제도로 보완할 여지가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중에서도 이번의 사건에서 얻어야 하는 교훈을 살펴보는 것이 우리의 임무다. 여유가 충분치 않은 만큼 많은 이유와 조건들 가운데에 무관하지 않을 일부분만 다룬다. 그리고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조건과 환경이 관심사다.

첫 번째로 ‘주치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주치의라는 용어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제도인지 문화인지도 유연하게 생각하자. 평소 꾸준히 접촉이 있고 건강과 질병 상태를 잘 알고 있으며 필요할 때 적절한 조치와 안내를 해 줄 수 있는 의료 전문가를 말한다.

이제 고인이 된 신해철씨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한국 사람 대부분은 주치의가 없다. 혼자 판단하거나 가족을 비롯한 비전문가의 말에 의존하며 그나마 중구난방이다. 건강에 문제가 생겼거나 검진에 이상이 발견되었다고 할 때 사람들의 행동은 그냥 ‘혼란’과 ‘당황’의 수준을 넘는다. 문제가 여럿이고 복잡하면 가장 나쁘다.

주치의가 할 수 있는 긍정적 기능은 분명하다. 우선 꾸준히 건강과 질병 관리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 크다. 당연히 질도 비용도 유리하다. 2014년에 미국에서 발표된 ‘상용 치료원’의 효과 연구를 보자(상용 치료원(regular source of care)은 주치의 대신 영어권에서 많이 쓰는 표현인데, 사람과 기관을 모두 포함한다).

연구자들은 “절반 이상의 외래를 응급실로 갔던” 비율을 잣대로 삼았다. 이런 행동은 평소 제대로 관리를 하지 않고(못하고) 문제가 생기면 응급실로 달려간 것을 뜻한다. 상용 치료원이 있는 사람은 그런 비율이 8.1퍼센트에 지나지 않았지만, 없는 사람은 21.6퍼센트나 되었다 (논문 바로가기). 주치의가 없고 외래를 주로 응급실로 가는 사정의 앞뒤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상상하고도 남는다.

서울백병원의 김경우 교수 팀이 2013년 조사한 결과를 보면 한국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도 비슷하다(라포르시안 관련 기사 바로가기). 상용 치료원이 있는 쪽이 응급실 이용과 입원 횟수가 더 적고 의료비도 덜 썼다. 실천은 미흡하지만, 잠재적 이익은 클 것이라는 뜻이다.

신해철, 그가 겪었던 앞뒤 사정은 아직 잘 모른다. 처음 어떻게 치료를 결정했고, 왜 그 병원을 찾게 되었으며, 어떤 이유로 입퇴원을 반복했는지 알지 못한다. 주치의가 있었는지, 있었다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더더구나 알 수 없다. 따라서 주치의의 존재와 역할을 그의 사고 원인으로 연관시키는 것은 억지다.

다만, 이것 한 가지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이번 사고가 아니라 일반적 경우와 경향성. 어느 환자나 마찬가지다. 치료를 할지 하면 어떻게 할지 잘 결정하고, 지속적으로 관찰, 추적하며, 새로운 문제가 생길 때 잘 조정하면, 의료사고는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문제가 복잡하고 어려울수록 더욱 그렇다.

둘째로, ‘의료전달체계’ 논의를 되살려내야 한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그가 진료를 받았던 곳은 몇 가지 치료만 주로 하는 ‘전문병원’이었다고 한다 (정부가 지정한 전문병원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전문병원은 장점이 있지만 좋지 않은 점도 있다. 몇 가지 질병만 보고 그 치료만 담당하기 때문에 다른 문제에는 당연히 전문성이 떨어진다. 전문성도 그렇지만, 자기 영역이 아니면 다른 질병이나 치료는 관심을 덜 기울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위험하다!).

복잡한 문제를 가진 환자라면 시야가 좁다는 것이 사고(그리고 과오)의 확률을 더 높인다. 전문 영역은 늘 더 중요하게, 다른 문제는 관심 밖으로 미룰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아주 특별하지 않으면 아무래도 협력과 조정, 종합적 판단, 환자 의뢰가 소홀해지기 쉽다.

이 문제 역시 이번 사고와 직접 연관이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전문병원이 가진 한계와 위험은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우리의 의료전달체계가 진작 정비되어 있었다면 또 어찌 되었을까. 의원과 중소 종합병원, 대형병원의 역할 분담과 네트워킹(이것이 ‘의료전달체계’다)을 다시 정비해야 하는 이유다. 

세 번째로 의료기관의 인력 문제를 지적해야 하겠다. 질도 중요하지만, 의료인력 부족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그 가운데서도 간호사 인력 부족이 두드러진다. 중소병원의 실상은 그 가운데서도 더 심하다.

의료인력 부족이 의료사고의 가능성을 높인다는 것은 굳이 더 말해야 할까. 특히 일상적으로 환자와 접촉하는 간호 인력의 중요성은 두 번, 세 번 강조해도 모자란다. 인력이 부족하면 사고와 과오를 예비하는 위험을 충분히 그리고 제 때에 보고 들을 수 없다.

이 문제 역시 이번 사고와 연관이 있는지 잘 모른다. 그러나 일반적 경향으론 좋은 인력이 충분히 있을수록 사고는 줄어든다. 인력 부족 문제는 오랜 기간 다양한 해법들이 논의해 왔으나 아직 뚜렷한 효과가 없다. 다른 무엇보다 환자의 안전과 의료의 질을 생각하는 쪽으로 정책 기조를 전환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필요하다면 그 고질적인 진료비(의료 수가) 문제도 근본적으로 손을 봐야 할 것이다. 

모든 것을 뭉뚱그려 환자의 안전 문제라 하면, 경고가 나온 지는 오래 되었다. 예를 들어 미국 병원에서 예방할 수 있는 안전사고로 사망하는 환자 수가 한 해 4만 4천 명에서 9만 8천 명에 이른다는 것(1999년 미국의학연구소 보고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다.

더 하면 더 했지 한국이라고 다를까. 외국과 같은 비율로 추산하면 한 해 동안 1만 7천여 명의 환자가 예방할 수 있는 안전사고로 사망할 것이라고 한다(울산대 의대 이상일 교수). 그러나 이에 대한 관심과 조치는 아직 빈약하다. 치료의 조건과 환경, 제도의 측면에서는 더 그렇다.

다들 젊은 신해철의 죽음을 애석해한다. 인력으로는 어쩔 수 없었던 것으로 결론이 나면 그나마 마음이 덜 아프지 않을까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까지 밝혀진 것만 하더라도 그리 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예방할 수 있었고 피할 수 있었던 사고가 될 가능성이 크다.

어디 신해철 뿐이랴. 그 누군들 목숨 귀한 것으로 치면, 그리고 피할 수 있는 사고의 억울함으로 치면 예외가 있을까. 이렇게라도 그의 죽음을 모두를 위한 교훈으로 바꾸어야 할 것 같다. 개인의 노력도 노력이지만, 의료사고를 예방하고 줄이는 ‘사회적인 것’을 발전시킬 계기로 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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