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사모펀드에 국립혈액원 매각…박근혜정부, 고용·복지분야 공공기관 기능조정 차원서 혈액사업 민영화 검토

▲ 영국 정부의 PRUK 매각을 비판하는 <더 인디펜던트> 기사 화면 캡쳐.

[라포르시안] '영국혈액원(PRUK)'은 NHS((National Health Service) 산하 공공병원에 혈장 등 혈액제제 공급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당연히 정부 소유였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영국 정부가 만성적인 적자를 이유로 지난해 7월 PRUK의 지분 80%를 미국의 사모펀드인 베인캐피탈사에 매각했기 때문이다.

베인캐피탈은 지난 2012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로 출마한 밋 롬니가 공동설립한 사모펀드다.

이 회사는 글로벌 사모펀드인 콜버그크레비스로버츠(KKR)와 미국 최대 영리병원 체인인 HCA를 공동소유하고 잇으며, HCA를 통해 런던의 민영의료보험시장 절반을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PRUK 매각을 놓고 영국 현지에서는 혈액 자급체제가 무너지면서 혈액 제제의 안전성을 신뢰하기 어렵게 됐다는 우려가 쏟아졌다.

영국혈액원의 민영화가 꼭 남의 나라 일만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생길 수 있는 일이다. 최근 그 가능성이 좀 더 높아졌다.

▲ 2012년 11월 25일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김성주 당시 공동선대위원장. 사진 출처 : 새누리당 홈페이지.

앞서 대한적십자사(이하 한적)는 지난 24일 중앙위원회를 열고 제28대 총재로 성주그룹 회장 김성주씨(57)를 선출했다.

총재로 선출된 김성주 회장이 정식으로 임명되면 한적 창설 이래 두번째 여성 총재이면서, 최초의 기업인 출신 총재가 된다.

지금까지 한적 총재에는 국무총리나 장관 출신 등 국가 원로급이 주로 임명됐다. 

한적이 구호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지만 남북 분단이란 특수 상황에서 이산가족 상봉과 남북 적십자회담 관련 업무도 맡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연간 7,400억원 규모의 예산을 총괄하고, 국가적 인도주의 사업 전담기구 수장에 기업인 출신이 임명된 것은 극히 이례적이 일로 받아들여진다. 

김성주 총재 선출자는 철저한 기업인 출신이다. 

그는 대성그룹 창업주의 막내 딸로, 90년대 초 성주인터내셔녈을 설립하며서 사업을 확장하며 지금은 세계적 여성기업인으로 주목받고 있다.

더욱이 그가 지난 대선에서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은 바 있어 이번 인사를 놓고 '낙하산 보은인사'라는 비난이 거세다.

야당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직접 영입해 공동선대위원장을 맡겼던 것을 빼고는 (김성주 회장의 총재 선출)설명이 불가능하다"며 "전형적인 '보은 낙하산 인사'나 다름없다. 스스로 내려놓은 것이 옳다"며 자진사퇴를 촉구했다.

▲ 대한적십자사가 지난 2012년 2월 23일 강원도 평창 휘닉스파크에서 백석대학교 학생 3천여명과 함께 초대형‘인간 핏방울 모양 만들기’세계 기네스 기록에 도전한 모습.

정부, 고용·복지분야 기능점검 방안서 혈액사업 민영화 언급무엇보다 기업인 출신 총재 선출이 우려스려운 점은 한적이 맡고 있는 혈액사업의 민영화 가능성이다.

1958년부터 혈액사업을 시작한 한적은 현재 15개 혈액원을 운영하면서 혈액의 안정적인 수급과 관리업무를 전담하고 있다.

혈액사업을 수행하면서 낮은 혈액수가 등으로 수익성이 떨어져 누적적자가 계속 쌓였고, 이 때문에 그동안 몇 차례 혈액사업을 한적에서 분리라는 논의가 이뤄지기도 했다.

특히 현 정부 들어 혈액사업의 민영화 방안이 검토됐다는 점에서 기업입 출신 총재 선출에 대한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실제로 지난 5월 말 새정치민주연합 김용익 의원 입수해 공개한 '고용·복지분야 기능점검 추진방안'(기획재정부 작성) 문건에는 한적의 혈액사업 민영화가 언급됐다.

기재부가 작성한 고용·복지분야 기능점검 추진방안 문건에는 적십자사와 관련해 '혈액사업에 대한 민간운영주체 참여방안을 마련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문건 내용이 보도된 이후 논란이 커지자 기재부는 "관련 분야 전문가들이 아이디어 차원에서 제시한 것으로, 관련부처의 의견을 조회 중이며 확정된 게 아니다"고 해명했다.

지난 7월 24일 전국보건의료노조 주도로 열린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 항의집회에서 최경진 적십자 노조 지부장은 "고용복지기능조정이란 이유로 적십자사 혈액사업을 정부 마음대로 움직이고 있다. 총재도 모르는 혈액사업주체 변경 사업을 기재부가 마구잡이로 추진하고 있다"며 "혈액사업을 민간으로 확대하려는 정부 의도를 간과하지 않겠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가 고용․복지분야 공공기관 기능점검을 통해 운영 효율화 방안을 강구한다는 목표를 세웠기 때문에 적자가 계속 쌓인 혈액사업의 민영화가 검토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한적 설립 이래 최초의 기업인 출진 총재가 임명될 경우 혈액사업 민영화에 대한 우려는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혈액사업은 정부가 해야 하는 공공사업을 민간 비영리기관인 적십자사가 그동안 맡아온 것이지만 사실 정부의 지원은 미약해 적자가 쌓였다"며 "현 정부는 병원의 경영 개선을 이유로 의료업의 본래 역할보다는 영리자회사와 부대사업 확대를 통한 돈벌이로 내몰아 의료민영화 논란을 키웠다. 이제는 혈액사업 민영화 논란까지 불거지는 건 아니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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