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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치콕의 영화가 식물인간의 마음을 움직였다![미리안 브리핑]

[라포르시안]  과학자들은 12명의 건강한 지원자들에게 fMRI 장비 속에 가만히 누워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를 보게 했다. 그들은 뇌 손상으로 행동적 무반응(behaviourally non-responsive) 상태에 있는 식물인간들에게도 동일한 실험을 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16년간 식물인간 상태로 있었던 환자 한 명이 건강한 사람과 거의 흡사한 뇌활성을 보인 것이다. 이는 영화의 플롯이 식물인간의 마음에 영향을 미친 것을 의미한다. 이번주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이런 내용을 담은 연구결과가 게재됐다. 

이번 연구에 사용된 영화는 1961년 TV로 방영됐던 'Alfred Hitchcock Presents'의 에피소드를 8분짜리로 압축한 것이다. 영화에서는 다섯 살짜리 어린이가 실탄이 장전된 리볼버(자신은 장난감이라고 여김)를 들고 주택가를 돌아다닌다. 그 아이는 누군가를 향해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탕` 소리를 낸다.

지원자들이 영화를 보는 동안, 연구자들은 fMRI를 이용해 그들의 뇌활성을 모니터링했다. 건강한 지원자 열두 명은 비슷한 뇌활성 패턴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는데, 특히 고도의 인지능력을 담당하는 실행영역(전두부, 두정부)과 감각정보를 처리하는 감각영역(청각 및 시각 피질)의 활성이 그러했다.

놀랍게도 `식물인간`도 건강한 사람과 유사한 뇌활성을 보였다. 즉, 20세 여성 환자 한 명은 감각영역(sensory areas)에서만 활성 패턴이 나타난데 반해, 16년간 식물인간 상태로 있었던 34세의 남성 환자 한 명은 실행영역(executive area)과 감각영역 모두에서 건강한 사람들과 동일한 활성패턴을 보였다.

이번 연구를 지휘한 캐나다 웨스턴 온타리오 대학교의 애드리언 오언 교수(신경과학)는  "영화를 보는 동안, 식물인간과 건강한 사람의 뇌활성 패턴은 거의 차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스탠퍼드 대학교의 러셀 폴드락 교수(인지 신경과학)는 "이번 연구는 fMRI가 식물인간의 의식을 확인하는 데 사용될 수 있음을 입증했다"고 논평했다.

오언 교수는 지난 2006년 "23세의 식물인간 여성이 의식적인 뇌활성을 보였다"고 보고하여 유명해졌다. 문제의 여성은 fMRI 장비 속에 무반응 상태로 누워 있었지만, 연구자들이 `테니스를 치고 있다고 상당해 보라`고 주문하자, 뇌의 운동영역(motor areas)이 건강한 사람과 마찬가지로 활성화되었다. 이와 유사한 방법을 이용하여, 오언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뇌사 판정을 받은 환자 중 20%에서 의식이 있음을 시사하는 뇌활성 패턴을 감지했다.

"식물인간들 중 의식이 있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을지도 모른다"고 오언 교수의 연구실에서 포스닥 과정을 밟으며 이번 논문에 공동저자로 이름을 올린 로리나 내시(신경과학)는 말했다. 식물인간의 뇌활성을 탐지하고자 실시됐던 선행연구에서는 연구자들이 참가자들에게 매우 구체적인 지시를 내렸었다.

그러나 fMRI 장비 속에 있는 참가자들은 종종 딴 생각을 하곤 해서 연구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서 오언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참가자들에게 집중할 수 있는 모티브를 주면, 테스트가 훨씬 간단해질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명장 히치콕 감독의 영화를 보여주기로 결정했다.

다른 연구진들은 건강한 참가자들에게 히치콕의 에피소드나 세르지오 레오네의 1966년 영화 석양의 무법자(원제: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를 보여주면서 뇌신경의 전반적 활성패턴을 모니터링하여 발표한 적이 있다(참고 3). 오언과 내시는 이번 연구에서, 골똘한 생각(concentrated thought)과 관련된 신경신호만을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오언 교수는 "히치콕의 영화가 신경과학 연구에 안성맞춤인 것은, 여러 겹의 추론과 연역으로 가득 차 있으며 다양한 복선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고도의 실행능력이 필요한데 이는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예컨대 영화에 등장하는 어린애가 엄마에게 리볼버를 발사하면, 관람자들은 `그 아이가 아까 다른 방에서 총알을 몇 방 장전했더라?`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폴드락 교수는 "이번 연구에서 나타난 뇌활성 패턴은 `의식 자체`라기보다는 `의식의 특정 측면`을 보여주는 표지(marker)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에 fMRI 데이터의 지나친 확대해석을 경계한 바 있다.

그는 "이번 연구는 식물인간에게도 얼마간의 의식이 있음을 입증하는 확고한 증거를 제시했다. 하나의 사례연구에서 이 이상 훌륭한 결과를 내놓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연구진이 보다 대규모의 후속연구를 통해, 영화의 특정 요인 건강한 사람과 식물인간에게 동일한 뇌활성 패턴을 일으킨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오언 교수는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화를 보게 하고 그들의 뇌 활성을 fMRI로 분석는데, 그중 상당수는 식물인간들이었다. 우리는 이 방법이 임상에 적용되어 식물인간들의 의식을 탐지하고, (자신의 희망사항을 표현할 수 없는) 환자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사용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6년간 식물인간으로 살아 온 34세의 남성은 18세에 괴한의 습격을 받아 뇌손상을 입었지만, 그의 아버지는 매주 수요일마다 그를 극장에 데려가 영화를 보여줬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영화를 보고 즐기고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 삶의 질이 나름 상당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16년 동안 내 아들은 800여 편의 영화를 감상했다"고 밝혔다.<원문 바로가기>


[알립니다] 이 기사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이 운영하는 미래기술정보 포털 미리안(http://mirian.kisti.re.kr)에 게재된 글을 전재한 것입니다. 본지는 KISTI와 미리안 홈페이지 내 GTB(Global Trends Briefing 글로벌동향브리핑) 컨텐츠 이용에 관한 계약을 맺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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