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건강증진연구소 서리풀 논평 - 아이스버킷 챌런지, 공감과 불편 사이에서

[라포르시안]  루게릭병 환자를 돕자는 취지의 아이스버킷 챌런지가 유행이다(영어 이름부터 좀 바꿨으면 좋겠다). 미국의 한 방송에서 시작한 것이 두 달도 채 되지 않았다니 ‘유행’이란 말에 값하고도 남는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유명인들이 참여하고 또 그 동영상이 퍼진 결과일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이벤트가 나름 긍정적인 요소가 있다고 생각한다. 단, 몇 가지 단서는 달아야 한다. 이미 여러 가지 비판이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건강에 나쁘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쓸 데 없이 물을 낭비한다는 데 이르기까지 비판은 갖가지다. 

그 가운데에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얼음물을 뒤집어쓰지 않은 이유가 관심을 끈다. 이벤트에 참여하는 대신 기부금을 내기로 했다지만, 이것은 그냥 개인 취향이나 선택으로 볼 수 없다. 미국 정부의 행동지침이 아닌가 싶다.

그냥 그런가도 싶지만, 가볍게 넘길 일은 아닌 것 같다. 미국 국무부는 아예 고위 외교관의 참가를 금지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일찍 참가했던 일부 의원들도 동영상을 삭제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지웠다고 한다.

행정부든 의회든 원칙은 비슷한 모양이다. 공공시설과 자원, 시간을 외부 기관이나 조직을 위한 자선 활동에 사용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목적을 가지고 있고 명분이 뚜렷해도 그렇다고 되어 있다.

미국 의회의 윤리지침은 외부 단체의 기부금 모금을 위한 활동을 엄격하게 제한한다. “모든 공공자원의 사용을 금지한다. 여기에는 공식 근무 중인 직원, 전화, 사무실 시설과 물품, 공식 주소록을 포함한다.”(미 의회 윤리지침, 바로가기, 348쪽)

 한국도 좀 배웠으면 싶지만, 이건 또 다른 중요한 문제니 이 정도로 해 두자. 자선 활동에 대해서는 국무장관이 모든 대사들에게 보냈다는 메모에 적힌 내용이 좀 더 곤혹스럽고 또 도전적이다.

공직에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해당되기 때문이다. 기부와 관련된 본질적 딜레마 가운데 하나다. 원문을 찾을 수 없어 미국 뉴욕 포스트 신문의 8월 21일 기사에 포함된 메모 내용을 옮긴다 (바로가기).

 “개인적으로 우리는 관심 있는 시민으로서 많은 가치 있는 자선 활동, 특히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과 싸우는 여러 활동 가운데 어느 한 가지를 선택하는 것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미국 국무부의 고위직 공무원들이 자선을 위한 기부금 모금에 참여할 것을 요청받으면 더욱 어렵다. 항상 개인적 선호와 편파성의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특히 마지막 대목을 주목해야 한다. 바로 선호와 편파성. 기부를 필요로 하는 많은 활동과 단체, 조직 가운데에 어느 한 쪽을 편든다는 것이다. 유명인이나 고위 공직자의 행동은 더욱 그럴 가능성이 크다. 개인 차원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그리 하도록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뜻도 행동도 그리 간단치 않다! 아이스버킷 챌런지가 유행하면서 벌써부터 발상지 미국에서 이 문제가 뜨겁다. 이른바 기부의 ‘동족 상잔 (카니발리즘)’ 현상. 다른 기관이나 활동에 쓰일 기부까지 싹쓸이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한 비영리단체가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어느 한 쪽이 100달러를 더 모금하면 다른 쪽은 그 절반인 50달러가 덜 모금된다고 한다 (관련 글). 이벤트로 전체 모금액은 늘어나지만, 윈-윈 게임은 아니라는 뜻이다.

반론도 있다. 50퍼센트나 모금이 늘어난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활동이나 조직별로 차이가 나는 것은 여기서도 서로 경쟁하면 된다는 것이다. 지향하는 가치든 활동이든 캠페인과 홍보든, 마케팅과 ‘시장’ 경쟁이 해법이라는 논리다. 그 말이 옳다면 기부를 더 많이 모으는 매력 있는 아이디어는 그 자체로 ‘선’이다.

 긍정이든 부정이든 한국에서도 과연 그럴지 사실 잘 알 수 없다. 그럴 수도 있지만, 꼭 그런 부작용이 나타날 것이라고 볼 근거도 부족하다. 한 가지, 시장 논리로 해결하자는 주장은 그냥 받아들이기에 불편하다.

모든 비판을 인정하더라도 한국에서 이런 일이 유행하는 것을 꼭 부정적으로 볼 것은 아니다. 일회성 행사고 시끌벅적한 이벤트라지만 대중적으로는 분명 긍정적인 면도 크다. 첫 걸음이랄까, 루게릭병이라는 병을 좀 더 잘 안다는 것 자체가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긍정적 경험이란 물론 사회적인 측면에 좀 더 강조점이 있다. 드물지만 어려운 이런 질병(이른바 ‘희귀난치성 질환’)에 우리 사회가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관심과 생각을 불러일으킬 것이 틀림없다. ‘집단적 성찰’ 과정이라 해도 좋다. 금방 잊어버리지만 않는다면 더 나은 삶과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데에 꼭 거쳐야 할 일이다.

 

▲ JTBC 보도화면 캡쳐

그런 점에서 주로 연예인들만 등장하는 언론 매체들의 말초적 관심은 불만스럽다. 홍보성이라는 비판은 그만 두고라도, 본래 의미가 무엇인지, 무엇을 하자는 것인지, 한국에서는 사정이 어떤지, 성찰을 요구하는 질문들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내로라하는 정치인들의 행동도 마찬가지다. 한국 정치가 워낙 ‘연예화’되기도 했지만 어떤 의미 있는 문제 제기도 찾을 수 없다. 어떤 점에서는 연예인보다 더 자기 알리기만 의식하는 껍데기가 되었다. 미국 국무부 정도의 문제의식을 바라는 것은 무리일까. 언론이든 정치든, 지금이라도 관심의 지평을 넓혀 주기 바란다.

 사실 아이스버킷 챌런지가 제기하는 문제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따지자면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사회적 협동과 연대의 방식을 둘러싼 오래된 긴장이 두드러진다. 즉, 개인의 좋은 뜻에 바탕을 둔 방식과 사회화, 제도화된 방식의 차이(또는 공통점).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황창순 교수가 2010년에 쓴 한 논문에 따르면, 한국에서 제도적으로 기부의 역사가 시작된 시기는 1951년 ‘기부금품모집금지법’이 제정된 때라고 한다 (바로 가기). 이는 건국 초기부터 기부가 중요한 사회적 제도였음을 보여준다.

지금은 기부를 촉진하는 제도들이 더 강화되었다. 소득세를 계산할 때 기부금은 소득 공제의 가장 ‘너그러운’ 항목 가운데 하나다. 재해나 이웃돕기에 얼마간 기부를 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일상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거기다가 더 강력한 제도가 필요하다는 소리도 들린다.

그러나 우리는 개인의 좋은 뜻에 기초한 기부가 연대와 협력을 위한 사회적 제도를 대신할 수 없다고 본다(정치나 종교 목적의 기부는 이야기가 다르다). 기부를 통해 관심과 의지를 나타낼 수는 있다. 하지만 공동체 전체의 빈곤과 질병, 재해와 재난에 대처하는 방식은 사회적, 제도적이라야 한다. 

아이스버킷 챌런지를 하게 된 이유인 루게릭 병, 넓게 봐서 희귀난치성 질환도 그렇다. 범위를 넓혀서 백혈병과 같은 질병도 마찬가지다. 그 환자들을 제대로 치료하고 돌보는 일, 그 가족이 가난에 빠지지 않게 하는 일, 사회적 활동과 기능을 할 수 있게 하는 일을 기부에 의존하게 할 수는 없다. 아니 그렇게 하고 싶어도 그건 불가능하다.

이런 병을 연구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아주 돈 많은 사람이 큰 기부금을 내놓을 수 있겠지만 그것도 시작과 자극 이상이 되기는 아주 어렵다. 사회적으로 꼭 필요한 연구는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 당연하다.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이벤트는 (루게릭병) 환자를 보호하는 제대로 된 사회적 제도와 장치를 성찰하는 일로 이어져야 한다. 그리고 개인의 선의를 바탕으로 하되 그것을 엮어 어떻게 제도로 바꾸어낼 것인가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 

행사 참여자들에게 바란다. 한국이라면 물을 맞으면서 이렇게 요구해야 하지 않을까. 루게릭 병 환자 모두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하라”, “장기요양보험을 더 확대하라”, “장애인 복지를 제대로”, “의료와 돌봄의 영리화를 반대한다”. 이제 이런 소리가 담긴 동영상들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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