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역사학자의 한반도 여행기 코리아에서 스코틀랜드 여성 화가의 눈으로 본 한국의 일상 / 장 드 팡주와 콘스탄스 테일러 지음 / 심재중과 황혜조 옮김 / 살림출판사 펴냄, 2013년

[라포르시안]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숨 가쁘게 변화하고 있는 듯합니다. 과거 남한과 북한의 관계를 두고 미국과 일본이 남한쪽을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쪽을 지지하던 시절이 있었는가 하면, 북한의 핵개발문제와 관련해서는 외견상 한 목소리로 반대하던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중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면서 미묘한 상황이 만들어지는 느낌입니다. 중국의 영향력이 확산되는 것을 우려하는 미국은 전통적으로 유지해온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공고히 하고, 특히 일본에게 상당한 역할을 기대하는 듯 합니다. 그런가 하면 중국은 한국과의 관계를 보다 긴밀하게 만들기 위하여 전통의 우방인 북한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기도 합니다. 일본 역시 부상하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는 과정에서 한국과의 관계를 불편하게 하고 있을 뿐 아니라 독자적으로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있어 한국과 미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혹자는 한국이 전통적 우방인 미국이 우려할 정도로 중국과의 관계를 긴밀하게 하는 것 아닌가 우려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미 양국간의 교역량을 비롯하여 다양한 영역에서의 교류를 고려할 때 중국과의 관계를 긴밀하게 하는 것이 국익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식하는 분들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현재의 국제정세가 20세기가 열리던 시점과 매우 닮아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론 국제정세에 둔감하던 당시와는 많이 다르다고는 하지만 상황을 잘못 읽는다면 비슷한 결과를 빚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흔히 울안에 있는 사람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바둑이나 장기에서 보면, 판을 제일 잘 읽을 것 같은 당사자보다 수가 낮더라도 옆에서 구경하는 사람이 더 좋은 수를 발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문학번역원이 기획 출간하고 있는 ‘그들이 본 우리 총서’가 시의적절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한국문학번역원의 김주연원장은 발간사를 통하여 ‘그들이 본 우리 총서’는 “서구가 바라보았던 우리 근대의 모습을 ‘번역’을 통해 되새기는 것은 서로의 거리감을 확인하면서 동시에 서로에게 다가가기 위한 과정”으로, “그들이 묘사한 우리의 근대화 과정을 통해 과거의 우리를 확인하고, 지금의 우리가 과거의 우리를 바라보는 깨어있는 시각을 요청한다(5~6쪽)”라고 하였습니다.

루이스 프로이스의 <임진란의 기록>으로 시작한 살림출판사의 ‘그들이 본 우리 총서’는 “16세기부터 20세기 중엽까지 서양인의 눈에 비친 우리의 궤적을 살피면서 오늘날의 우리가 형성되어 온 과정을 고찰하려는 시도”라고 하였습니다. 임진란, 일본의 한국 통치, 청일전쟁, 병인양요, 러일전쟁 등 한국을 둘러싼 국가들 사이의 갈등을 주제로 한 책들이 있는가 하면, 조선 사람들의 삶을 조명하거나 심지어는 서울에서 치른 감옥생활 혹은 한국에서 보낸 신혼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적은 책들도 있습니다. 최근에 나온 책은 프랑스 역사학자와 스코틀랜드의 여성화가가의 글을 제목대로 <코리아에서/한국의 일상>이라고 하면 너무 밋밋할 것 같았던지 <프랑스 역사학자의 한반도 여행기 코리아에서 · 스코틀랜드 여성 화가의 눈으로 본 한국의 일상>이라는 아주 긴 제목을 달고 있습니다. 국호가 대한제국이던 1902년경으로 추정되는 ‘코리아에서’와 비슷한 시기에 쓰인 것으로 보이는 ‘한국의 일상’은 각기 다른 시선으로 우리의 과거를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코리아에서’를 쓴 장 드 팡주는 프랑스 명문 귀족 출신의 남성 역사학자로, 일본을 거쳐 제물포를 통해 서울에 들어와서 금강산과 원산을 여행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온 자신의 여정을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한국의 일상’을 쓴 콘스탄스 테일러는 스코틀랜드의 여성 화가로서, 일반사료에서는 보기 드문 여성과 하인들의 생활, 결혼 및 장례 문화, 인사 예절, 명절 모습, 복식과 가마, 신발과 갓의 모양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일상적인 모습을 아주 섬세하게 적었습니다.

▲ 서울의 거리 풍경 : 출처 '프랑스 역사학자의 한반도 여행기 코리아에서…' 중에서

장 드 팡주의 <코리아에서>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조급한 ‘미국화’의 열기에 사로잡혀 용을 쓰고 있는 현대 일본의 ‘일급 호텔들’과 체계적으로 개발된 경관을 벗어난 지 얼마 안되어 코리아(Corée)에 발을 내딛는 순간, 우리는 잊을 수 없는 어떤 평온함을 느끼게 된다. 북아프리카의 지중해 연안 사람들을 연상시키는 헐렁한 흰색 옷차림의 무사태평한 코리아 사람들을 보노라면 황화론(黃禍論)의 망령 따위는 이내 사라지고 만다.(19쪽)” 일견해서는 우호적인 시각으로 조선을 보았구나 싶기도 합니다만, 어쩌면 오랫동안 유럽을 바라보던 일본이 어느 사이 시선을 미국으로 돌리고 있다는 의구심으로 생긴 반작용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황화론을 인용한데서 유럽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동양인에 대한 뿌리 깊은 두려움의 한 조각을 읽게 되는 듯합니다. 독일 황제 빌헬름 2세가 청일 전쟁 말기인 1895년경에 주장한 황화론은 ‘황인종이 융성하고 번성하는 것은 백인종에게 위협이 될 것이므로 유럽 열강이 단결하여 그에 대처해야 한다’는 이론입니다. 유럽사회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몽골의 유럽원정에서 기인하는 황화론은 그 이후 아시아 국가가 주목을 받을 때마다 불거지곤 했던 것입니다. 저자의 시선에서 보면 신흥제국으로 성장하고 있는 일본이 유럽을 위협하는 존재가 될 것 같지 않다는 속내를 무사태평한 조선 사람들의 모습을 빌어 에둘러 표현한 것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듯 무사태평해 보이는 조선 사람들이지만 청일전쟁이 끝나고 서울에 주둔한 일본군들이 상투와 담뱃대 그리고 저고리 소매를 자르는 등 조선의 전통을 말살하려는 움직임에 대하여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봉기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던 사실에 주목하기도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조선의 첫 번째 임금 이태조를 왕위 찬탈자로 규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혹시 옮긴이의 해석의 차이에서 온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찬탈’이라 함은 ‘임금의 자리나 국가 권력, 정권 등을 반역을 하여 빼앗는 것’인데, 국호나 국가의 정체성에는 변화가 없는 상황으로 단종을 폐위시키고 왕위에 즉위한 세조가 찬탈의 대표적 사례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태조 이성계의 경우는 역성혁명으로 새로운 왕조를 열었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조선왕조의 통치이론의 근간이 되었던 유교 때문에 불교가 탄압받게 된 것을 아쉬워하는 마음에서 조선왕조에 대한 저자의 부정적 인식이 기인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마도 불교가 고려왕조의 몰락에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알았다고 한다면 다른 해석이 나오지 않았을까요?

그래도 저자는 불교에 대하여 긍정적인 생각을 바꾸기 어려웠겠다 싶은 대목도 있습니다. “이내 독송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상하게도 그 소리를 들으면 달빛 가득한 앙코르 사원의 거대한 층계 꼭대기에 웅크린 승려들의 독경 소리가 떠오른다. 습한 열대림에서부터 코리아의 눈 덮인 산봉우리까지 극동 아시아의 전역에 부처의 거대한 탄식소리가 매일 저녁 메아리가 되어 울려 퍼지는 듯하다.(52쪽)” 12세기에 세워졌지만 오랜 세월을 열대밀림 속에 숨어 있던 앙코르 유적이 유럽사회에 알려지게 된 것은 19세기 후반이라고 합니다. 동남아시아를 여행하던 프랑스의 탐험가 앙리 무오가 1860년대 앙코르유적지를 발견하고 이에 대한 이야기를 그의 여행기에 담았던 것이 유럽 사람들의 호기심을 끌었던 것인데, 저자는 조선에 이르기 전에 이미 앙코르 유적을 방문했던 모양입니다.

제3장에서는 국제정세의 흐름에 둔감한 조선의 사정을 안타깝게 여기는 저자의 심정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불행한 일이 되고 말았지만, 코리아는 자연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 나라들 중 하나이다. (…) 인구 밀도가 낮고 자신들의 부를 활용할 줄도 모르는 주민들이 살고 있는 이 나라의 해안을 따라 일본 열도가 펼쳐져 있는데, 일본으로서는 먹여 살릴 수 없는 초과 인구를 이주시킬 새로운 땅을 획득하는 것이 아주 절박한 당면 과제이다.(69~70쪽)” 저자는 대륙을 향한 일본의 야심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아가 러시아, 미국 등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들의 각축을 적시하고 있습니다. 정작 조선 사람들만이 일본의 속셈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두 번째 이야기 <한국의 일상>은 스코틀랜드의 여성화가 콘스탄스 테일러의 기록입니다. 그녀가 어떤 경로를 통하여 조선에 들어왔는지는 분명하지 않은데, 1884년 조선과 영국이 수호조약을 맺은 뒤 영국여행자들이 빈번하게 조선을 찾게 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당시 여러 화가들과 함께 조선에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그녀는 1894년부터 1901년까지 머물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하는데, R이라고 하는 여

성과 같이 서대문 근처에 있는 집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그녀들은 중국인 요리사와 한국인 여종들을 부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한국의 일상>은 몇 장의 사진보다도 저자가 스케치한 그림과 그녀가 보고 들은 것들을 회화적으로 서술하고 있는 점이 특징입니다. 서울을 묘사하는 제2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나는 화사한 여름 저녁에 처음으로 서울 도성 곳곳을 산책했다. 이 시각이면 동서로 뻗어 있는 주요 거리는 항상 사람들로 웅성거린다. 저물어가는 태양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 같은 군중들 위로 차분한 빛을 던진다. 사람들은 아주 옅은 푸른색이나 연한 초록색, 엷은 자주색, 옆은 황색, 혹은 눈처럼 흰 긴 옷을 나부끼며 이리저리 움직였다. 머리에 쓴 검은 모자는 다채롭게 섞인 색깔과 어울리며 중심을 잡아주었다.(111쪽)”

그런데 조선 남성들은 그녀에게 지저분하고 게으르게 비쳐진 모양입니다. “아침 6시, 이제 막 대문을 열고 나온 남자는 벌써 담뱃대를 불고 문간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데, 그의 무거운 눈에는 아직 졸음이 가시지 않았고, 때 묻은 흰옷은 간밤에 진 구김이 펴지지 않은 채로 지저분하다. 하루 일과에 대한 생각이 아직 그의 흐릿한 머릿속으로 뚫고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124쪽)” 이미 활기가 돌고 있을 차이나타운이나 신전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을 인도의 힌두교도들과 비교하면 조선 사람들은 게으름에 무딘 것 같다는 것입니다.

역사학자이면서도 조선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장 드 팡주와는 달리 콘스탄스 테일러는 별도의 장을 할애하여 기자조선으로부터의 조선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기자조선은 요하와 대동강 사이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기원전 107년 중국 황제가 정복해서 자신의 영토로 삼았다고 적었습니다. 아마도 한사군을 설치한 내용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기원 무렵 부여와 고구려가 중국 주변에서 유일하게 국가 체제를 갖추고 있었지만 664년 중국에 점령되었다고도 기록하였습니다. 기원3세기 무렵 일본의 신공황후가 한반도의 남부지역을 정복했다는 임나일본부설에 대하여는 추측에 불과하다고 일축하였지만, 후고구려의 궁예와 고려의 태조에 대한 기록도 분명하지 않으며, 임진왜란 이후 일본군이 1876년까지 부산을 점령하고 있었다고 적고 있는 등, 조선역사에 대한 그녀의 기록은 전반적으로 소략하면서도 정확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그녀는 아마도 중국이나 일본에서 나온 역사서를 참고하였던 모양입니다. 한편 그녀가 고종황제를 알현했다고 기록하고 있으면서도 “황제는 궁정에 우글거리는 탐욕스러운 아첨꾼들과 사대주의자들에게 휘둘렸으며, 그들은 황제의 온갖 변덕을 부추기는데 일조했다. (…) 그는 잠으로 한나절을 보내고, 밤이면 대신들이나 고문관들과 논의를 하거나 기생들의 공연을 보고 즐긴다(145-147쪽)”라고 적고 있는 것을 보면 고종의 진면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장 드 팡주와 마찬가지로 콘스탄스 테일러 역시 한글의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세종대왕의 창의적 발상으로 창제되었다는 사실은 알지 못하고, 그저 산스크리트어에서 파생된 문자로 이해하였던 모양입니다. 이들이 한성에 머물 당시만 해도 한글서적들이 풍부하게 유통되고 있었던 점을 고려한다면 한글에 대한 이들의 이해부족을 탓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유일하게 기회가 되면 다시 방문하고 싶은 멋진 매력을 가진 나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녀의 여행기에 별점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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