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생각이 답이다 / 게르트 기거렌처 지음 / 강수희 옮김 / 추수밭 펴냄, 2014년

[라포르시안]  안젤리나 졸리가 예방적 유방절제술을 받았다는 뉴스가 전해질 무렵, [양기화의 북소리]를 통해서 소개해드렸던 <숫자에 속아 위험한 선택을 하는 사람들>의 저자인 게르트 기거랜처 막스플랑크 인간개발연구소 소장의 신간, <지금 생각이 답이다>를 읽었습니다. 전작에서 유방암 검진, 에이즈, 폭력, 재판, DNA 지문, 의사와 환자 사이의 관계 등에 관하여 꼼꼼하게 분석한 통계자료를 제대로 해석하는 방법을 다루고 있어 의학을 전공하는 분들의 많은 관심을 끌었던 만큼, 적지 않은 기대를 했던 책입니다.

저자는 한국독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매해서 위험을 다룰 만한 능력이 없고 교육도 소용없다’라는 일부 사회과학자들의 주장을 인용하였습니다. 실제로 2008년의 제2차 광우병파동을 지켜본 저는 이들의 주장이 틀린 것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하지만 저자는 생각이 다르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우매하지 않기 때문에 누구나 현명한 어림셈법과 간단한 통계적 사고, 예리한 직관을 이용해 더 나은 결정을 내리는 법을 배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남녀노소 누구나 교육을 통해 위험에 숙달할 수 있다는 점을  설명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미국의 경제학자 갤브레이스(John K. Galbraith)는 1977년에 발표한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이미 확립되어 있는 생각이나 설명의 틀로는 더 이상 설명하거나 예측하기 힘든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견했습니다. 다만, 아무리 미래가 불확실하다고 해도 두려워하지 않고 현실을 직시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현안을 진지하게 해결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던 것입니다. 이때 중요한 점은,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책임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정치적인 기회주의에 굴복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의 예언대로 오늘날은 예측할 수 없는 다양한 사건 사고들로 하루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지경입니다.

<지금 생각이 답이다>의 주제는 불확실성입니다. 왜 우리는 잘못된 결정을 반복하는지를 불확실성의 심리학으로 설명하고, 이어서 모든 것이 불확실한 세계에서 어떻게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지를 불확실성 다루기로 설명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더 안전하고 투명한 세상은 가능한지, 즉 불확실성을 넘어설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모든 영역에서 복잡성이 증가하다 보니 어떤 분야라고 해도 제대로 이해하려면 엄청난 분량의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해당분야의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결론부분만 요약해서 파악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경향으로 흐르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과연 전문가들을 믿을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렇게 답하고 있습니다. “뼈아픈 경험으로 얻은 교훈은 전문가의 조언이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의사나 투자 상담사, 기타 위험 전문가도 위험에 대해 잘 모르거나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설상가상으로 이해가 상충하는 경우도 많고, 소송을 걱정해서 클라이언트에게 자신의 가족이라면 하지 않을 행동을 하도록 조언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내 운명은 내가 책임질 수밖에(18쪽)” 그래서 저자는 정보를 바탕으로 생활하는 민주시민의 핵심역량으로 문자해독력을 갖추어야 하는 것처럼 위험해독력을 갖추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저자는 비올 확률 맞히기, 경구피임약의 부작용 공포, 9․11테러의 역설 등의 사례를 들어 통계학의 맹점을 설파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불확실한 세상에서 정확한 위험을 계산해 최적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직관에 의한 판단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2009년 1월 뉴욕 라가디아 공항을 이륙한 US 에어웨이 1549편 항공기가 캐나다기러기와 충돌하여 좌우엔진이 모두 정지하는 위기상황에서 기장과 부기장은 라가디아공항으로 회항하는 선택보다는 허드슨 강에 비상착륙하는 선택을 하였고, 그 결과는 모든 승객을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저자는 이 사건을 팀워크, 체크리스트, 현명한 어림셈법이 환상의 조합을 이룬 결과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무의식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어림셈법은 직관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인데, 1. 의식에 재빨리 나타난다, 2. 근본 이유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3. 행동하도록 할 만큼 강력하다, 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 문제가 복잡해도 해법은 단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전작에서도 인용한 셈법입니다만, HIV검사가 도입된 초기에 미국의 플로리다주에서는 ELISA검사에서 HIV 양성결과가 나와 통보받은 22명의 환자들 가운데 7명은 검사결과가 맞는지 틀린지도 모른 채 자살했다고 했습니다. 저자는 HIV검사 양성의 의미를 유병율과 검사가 안고 있는 거짓양성 비율에 달려있다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평소 HIV 위험이 없는 생활을 하였다면 겁먹지 말고 재검사를 받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 뉴욕 허드슨강에 불시착한 여객기

전작에서처럼 저자는 의료영역에서의 다양한 문제들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제가 부딪힌 문제와 관련된 내용도 있습니다. 바로 중심정맥관의 삽입으로 발생하는 혈류감염의 사례입니다. 미국 병원의 중환자실에서는 연간 최대 2만8천명이 이로 인하여 사망하며, 이로 인한 비용이 23억 달러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일까요? 감염치료약이나 치료기술의 개발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정답은 오류를 개선하는 일이었습니다. 2001년 존스홉킨스병원의 중환자 진료전문의 피터 프로노보스트박사가 개발한 다섯 가지 체크리스트를 적용하여 중심정맥관 삽입에 의한 혈류감염률을 11퍼센트에서 0퍼센트로 떨어트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88쪽) 제가 근무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는 금년에 중환자실에 대한 진료행태를 개선하기 위한 목적으로 적정성평가를 시작할 예정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중심정맥관 삽입에 따른 혈류감염의 발생을 줄이려는 목적으로 설정한 평가지표가 현실을 왜곡할 수 있기 때문에 당장 적용하는 것은 불가하다는 것을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이 지적하고 나선 것입니다. 이 문제의 해법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저자의 견해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류 공개에 대한 무관용은 더 많은 오류를 낳고, 환자의 안전은 더욱 위협받는다.(92쪽)”

저자가 지적하는 잘못된 의료계의 관행 가운데는 의사들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방어적 진료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의사라면 당연히 해야 할 최선의 진료를 받은 것이 환자의 행운이라는 말은 비아냥거리는 것으로 들립니다. 그런데 일선 의사들의 상당수는 환자를 위험에 빠트릴 수도 있는 불필요한 검사나 약물 투여, 수술을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고 느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환자들이 의사가 질병을 진단하지 못했거나 적극적으로 진료하지 않았다고 고소할까 두렵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현실을 특히 변호사가 많아 소송에 대한 공포가 큰 미국에서 뚜렷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것입니다만, 어느 사이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거론되고 있는 사항이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방어적 진료의 행태는 1. 의학적으로 필요한 것보다 많은 검사(영상진단 등) 실시, 2. 의학적으로 필요한 것보다 많은 약물(항생제 등) 처방, 3. 불필요한 상황에서 다른 전문의에게 환자를 소개한다, 4. 확진을 위한 침습적 절차(조직검사 등) 제안 등입니다. 일종의 적극적 방어진료행위라고 하겠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적지 않은 의사들이 고위험 수술과 분만, 고위험 환자의 진료를 회피한다는데, 이는 소극적 방어진료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난과 비판, 소송에 대한 우려는 차선책을 취하게 만들고, 차선의 치료결정을 내리며, 방어적 의료행위를 하는 동기가 되기 마련인데, 결과적으로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들에게 넘어가는 것입니다. 최근 확산되고 있는 이와 같은 부정적인 의료문화를 개선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불확실성 다루기를 설명하는 제2부에서 아무래도 저의 관심은 의료분야에서의 불확실성을 다룬 제9장과 제10장에 쏠립니다. 의료정보의 통계적 의미를 다룬 제9장의 내용은 어쩌면 의학을 전공하신 분들도 잘 읽어보셔야 할 부분입니다. 다양한 사례를 인용하고 있습니다만, 산전 진찰에서 다운증후군으로 진단받은 경우를 살펴보겠습니다. 산전 진찰에서 다운증후군이 의심된다고 하면 대부분 임신중절을 권유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산전 진찰에서 다운중후군 양성판정으로 받은 6~7명 가운데 1명의 태아만 다운증후군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합니다. 즉 다운증후군 검사 양성으로 판정받은 태아 가운데 대다수는 정상으로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결과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산모의 나이는 세계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며, 다운증후군 아기를 낳을 확률도 커지고 있다. 산전 진단을 개선하기 위해 많은 자원이 투자되지만 의사와 환자들에게 이런 검사를 해독하는 능력을 갖춰주기 위한 투자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256쪽)” 즉, 의사들의 검사해독능력을 키우기 위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에이미 쿠에엘벡 기자는 임신 20주에 받은 초음파검사에서 태중의 아이가 좌심실형성부전이라는 선천성기형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중절수술을 받지 않습니다. 그리고 출산과정과 태어난 아이를 지극히 돌보는 과정을 <가브리엘>이라는 제목의 책에 담았습니다. 쿠에엘벡 기자가 임신중절을 하지 않은 이유는 이렇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수긍이 갈만한 이유 없이 낙태로 가브리엘의 자연스러운 삶이 단축되었으리라는 점이다. 가브리엘은 아무런 고통 없이 정상적으로 자라고 있었고, 임신은 나에게도 신체적으로 정상적인 일이었다. 아이를 분만예정일까지 품고 있는 일은 내게 별다른 위험이 아니었다.” 마음에 울리는 무엇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다시 <지금 생각이 답이다>으로 돌아가서, 저자는 의사들이 자기도 이해하지 못하는 검사와 진료를 환자에게 권하는 관행을 환자들이 눈치채기 전에 행동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방어적 의료행위는 의사들의 동기에 대한 신뢰를 위협하지만, 이로써 의사의 능력에 대한 신뢰가 위험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의과대학 커리큘럼에 통계적 사고를 가르치는 과정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 또한 이해가 충돌하는 사안이 될 수도 있다고 보여 냉정하게 판단할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저자가 파악하고 있는 의료계가 안고 있는 시한폭탄은 1. 방어적 의료행위실시(자기방어), 2. 의료통계 이해력 부족(계산맹), 3. 가치보다 이익추구(이해 상충)입니다.

마지막 제3부 더 안전하고 투명한 세상이 가능할 것인가를 짚어보는 ‘불확실성 넘어서기’에서 제가 특별히 주목한 부분은 ‘과장된 위험몰이’라는 작은 제목의 글입니다. 여기에서 저자는 사람들이 공황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위험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두 가지 사례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가 ‘광우병 공포’입니다. 1990년대 말, 영국에서 발생한 광우병은 변종 CJD환자가 발생하면서 대중을 공포로 몰아넣었는데, 그 결과는 유럽에서 약 150명의 환자가 사망한 것에 불과하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태산명동 서일필(泰山鳴動 鼠一匹) 격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우병확산을 저지하기 위하여 유럽 국가는 약 380억 유로를 부담해야 했습니다. 어떻든 유럽의 광우병은 소멸단계에 들었다고 EU가 공식선언하기에 이르렀습니다(2010년 7월 19일자 AFP 기사; “EU, 유럽에서 광우병 박멸 임박”).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2008년 우리사회를 뒤흔들었던 제2차 광우병파동의 이야기는 아예 언급할 가치조차 없을 것 같습니다. 저자의 표현대로라면 이 또한 헛발질하는 전문가의 선동으로 확산된 과장된 위험몰이였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과장된 위험몰이의 두 번째 사례를 신종플루 광풍을 들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타미플루 사재기와 같이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설명을 요약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직접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정리를 해보면, 자칫 부화뇌동하기 쉬운 디지털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위험해독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디지털 세상에 맞는 사실과 심리원칙을 이해해야 할 것이라고 합니다. 위험과 불확실성에 대처하는 능력은 학습에 의하여 개선할 수 있기 때문에 스스로를 지키기 위하여 공부하기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비판적 사고는 지식의 기반에서만 가능하고, 이를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며, 이 용기는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것입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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