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병원 내 또는 의료계 내에서 서로의 전문 영역을 놓고 대립과 갈등을 빚고 있는 직역간의 상황을 전하고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대안을 분석하고자 창간 기획으로 ‘갈등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앞으로 이 코너를 통해 전문 직역간의 갈등을 해소하는 동시에 의료계 전체의 라뽀 형성을 위한 대안을 모색하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편집자주>


#서울의 A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B전공의(외과 2년차)의 하루는 바쁘게 돌아간다. 숨 쉴 틈 없이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가운데 간호사의 콜이 울릴때 마다 인상을 찌푸리게 된다. 환자의 상태가 악화되는 등 긴급을 요하거나 특별한 상황이 아님에도 불필요하게 부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솔직히 나이어린 전공의라고 무시하고 있다는 인상도 받는다.

#서울에 소재한 C대형병원 내과 병동에서 근무하는 D간호사는 수화기를 들고 자신도 모르게 멈칫 거린다. 입원환자의 상태가 갑자기 나빠져 당장 전공의에게 콜을 요청해야 하지만 왜 자꾸 전화하느냐며 대뜸 신경질적인 반응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마음을 가다듬고 전화를 해보지만 병동전화기로 하니 안 받는다. 결국 병동전화가 아닌 다른 전화를 이용해 어렵게 통화가 됐지만 예상대로 화부터 낸다. 몇 번 이런 일을 전공의에게 겪고 나니 콜할 때 겁부터 난다

.#암병동 E간호사는 환자 약물투여와 관련해 F전공의를 찾았다. F는 때마침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 직접 처방을 입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인턴을 찾아서 00처방을 입력하라고 지시를 해 해당 인턴한테 전달했으나 전달과정에서 잘못 알아들어 문제가 생겼다. 전공의가 해야 할 일임에도 2중으로 전달체계를 만들어 일을 시키고 왜 간호사가 핀잔을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대학병원에서 수련하는 G전공의는 PA(진료지원인력) 간호사로부터 지시를 받는다. 근본적인 업무영역 파괴로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다. 의사와 간호사의 영역이 분명히 다름에도 교수님의 비호(?) 아래 묵인되고 있으며, 심지어 PA간호사가 의사 아이디로 처방까지 내리고 있는 상황을 생각하면 답답할 뿐이다. 수술실에서는 찬밥 취급까지 받고 전공의는 “꿔다 놓은 보리자루인가?”라는 불만을 떨칠수가 없다.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직장 상사나 동료와의 관계가 매끄럽지 못하다면 이보다 불편한 것도 없다. 업무효율은 떨어지고 무엇보다 직·간접적인 스트레스로 육체적·정신적으로 이중의 고통을 받기 일쑤다. 병원 내에서도 예외는 아니다.특히 전공의와 간호사의 관계에서도 미묘한 마찰음이 발생되고 있으며, 일부 병원에서는 두 직역간의 갈등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환자를 대하는 최일선 진료현장에서 뛰고 있는 만큼 양 직역간에 돈독한 파트너십이 요구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하지만 다소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견원지간’이라고 불릴 만큼, 전공의와 간호사간의 해묵은 갈등은 위험수위에 다다랐다.

<간호사, 전공의와의 갈등 위험수준>=병원간호사회가 1,225명의 간호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간호윤리 인식도 조사’에 따르면 협동자 영역의 윤리적 딜레마로 의료진과의 상호 비협조적인 갈등과 간호사 콜(부름)에 대한 의사의 무반응을 각각 1·2위로 꼽아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윤리적 딜레마란 윤리적·도덕적 문제가 내포된 상황에서 만족스런 해결이 불가능해 보이는 윤리적 문제 또는 어떤 상황이나 선택이 대응하게 불만족스러운 두 가지 중에서 결정해야만 하는 경우를 뜻한다.

병원간호사회 김명애 회장은 “전공의가 간호사한테 인턴을 찾아서 처방을 입력하라고 지시한 경우 더블체크가 안 돼서 잘못 전달했을 때 전공의가 해당 간호사에게 핀잔을 준다던지, 주치의(전공의)에게 콜을 하는데 전화를 안 받거나 신경질을 내는 경우가 더러 있다”며 일부 병원에서 전공의와 간호사간 소소한 마찰이 발생된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간호사의 콜에 자주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전공의에게 환자 상태가 나빠져도 전화하기 겁을 내는 간호사도 있으며, 검사가 필요해 요청을 하면 무시하다가 나중에 뒤로 오더를 내려 간호사가 혼이 나는 사례도 있다”며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간호사의 어려움을 소개했다.

또한 사회공공연구소에서 총 52명의 간호사 인터뷰를 토대로 한 ‘환자 안전과 간호사 건강보장을 위한 간호 업무환경 실태조사’에서는 의사의 자질과 능력을 신뢰하기 어렵고, 의사와의 협력이 잘 이뤄지지 못하고 있으며 의사로부터 동료로 존중받지 못한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의사(전공의)와의 관계를 묻는 질문에 ▲인간성이 안 된 애들이 공부만 잘해서 들어온다 ▲주치의들이 생각 없이 오더를 낸다 ▲사람마다 다른데 오더를 제시간에 내지 않는 경우가 많다 ▲환자의 실제 상태와 다른 의사의 오더에 대해서 말하면 오더권에 대한 도전으로 여기고 오더를 제시간에 내지 않고 일을 지연시킨다 ▲오더 수행이 의사 때문에 원만히 진행되지 못한다 ▲신규가 하는 콜에는 의심을 한다 ▲의사의 콜 기준을 간호사가 맞추지 못하면 사이가 나빠진다 ▲의사가 수술장에 들어가서 없으면 의사 오더를 대신 내주기도 한다 ▲말로 트집을 잡고 모욕적으로 행동한다/전화를 뚝 끊는다 ▲간호사로서 노련하지 않은 부분을 빈정거리는 말투로 지적한다 ▲환자의 상태에 대한 보고를 무시하는 등 무책임하다 등의 불만이 쏟아졌다.

답변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환자가 안 좋거나 하는 상황이면 저만 마음이 급해서 계속 노티를 하는데 의사는 콜 안 받았다는 식으로 아침에 와가지고는 언제 노티를 했냐고…”, “환자 안 좋아 졌다고 연락을 하면 완전 욕하면서 와서 보니까 별거 아닌데 왜 연락했냐, 이런 식으로 하고…”, “레지던트인데 신환자 봐야할 때만 병동에 나타나는 거예요. 오더는 의국이나 다른 병동에서 내고, 병동에 있으면 환자들이 계속 컴플레인을 하니까…”등의 사례가 제시됐다.

특히 조사에 응한 한 간호사는 “일하면서 힘든 게 의사와의 관계”라며 “의사들이 일하는 동료로 생각하고 인격적으로 대해 주면서 자기가 맡은 일들을 열심히 하고 간호사도 마찬가지로 하면 트러블이 없을 거 같은데 의사들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 않는 것 같다”고 답했다.

<전공의, 간호사·PA간호사가 무시해?>=간호사들이 전공의에 대해 불만을 표출하고 있는 만큼 전공의 또한 간호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곱지 않다.

대한전공의협의회 등에 따르면 업무에 능숙한 고참 간호사들이 병원 업무에 미숙한 전공의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종종 있다는 것.전공의 턴이 바뀌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다보면 실수를 하기도 하고 간혹 잘못된 오더를 내릴 수도 있지만 일부 간호사들이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무시하는 태도로 접할 때면, 환자 처방을 했는데 간호사가 오더를 추가해야 한다거나 바쁜 업무중에 별일 아닌데 시도 때도 없이 콜을 할 경우 짜증이 날 수 밖에 없다는 전언이다.

여기에 더해 전공의와 PA(진료지원인력) 간호사와의 관계는 더욱 심각하다 .PA간호사들의 의료행위 영역이 점차 확대됨에 따라 오히려 전공의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경우가 발생하는 등 의사의 고유 업무권한 침해로 전공의의 불만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공의와 PA간호사간 갈등의 골이 깊어져 분출될 경우 교수가 나서긴 하지만 후배 의사인 전공의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동안 손발을 맞춰온 PA간호사와의 관계를 무시할 수 없어 전공의들이 상관이니 참으라는 식으로 덮으려고 해 전공의들이 속앓이를 하는 판국이다.

대전협 김일호 회장은 “PA간호사들이 불법적으로 전공의 업무를 대신하고 있다. 의사 아이디를 빌려 오더까지 내고 있으며 오히려 전공의가 오더를 내리는 일이 극히 드문 형국으로 일부 병원에서는 수술시 전공의는 못 들어가고 PA간호사가 들어가고 있다”며 현실태를 꼬집었다.

김 회장은 이어 “의료인의 영역을 침범하는 PA간호사들의 행태로 인해 발생할 수밖에 없는 마찰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사태를 파악하고 문제가 있는 것은 고쳐야 한다”며 업무범위를 명확히 하는 등 대대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술자리 도움 안 돼…상생은 요원한가?>=의료계에 따르면 전공의와 간호사간 갈등이 일어나는 구조적 원인으로는 ▲수직적 상하관계 ▲책임 회피 ▲상호 존중 결핍 등으로 인한 라뽀 형성 부족을 꼽을 수 있다.

전공의 입장에서 볼때 간호사는 병원에 지속적으로 남아 있는 인력이고 전공의는 시한부로 떠나는 인력이다.각 병동에서 하급자가 교체되면 문제될 것이 없으나, 상급자(전공의)가 교체되기 때문에 갈등은 시작된다.

병원에 오래 근무한 숙련된 간호사들과 경험이 부족한 전공의간의 미묘한 마찰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볼 수 있으며, 이는 병원뿐만 아니라 어느 직장이든 생길 수 있는 상황이다.특히 환자에게 문제가 발생할 경우, 책임소재 문제가 전공의와 간호사간의 관계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모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한 간호사는 “진료업무에 경중이 있고 타 업무로 바쁜 상황에서 전공의가 환자 상태 중요도와는 상관없이 바이탈 사인(맥박, 혈압, 호흡, 체온) 등을 수시로 체크하라고 한다. 혹시 환자가 잘못 될 경우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라며 “법적 공방이 생길 경우 자주 체크하라고 하지 않았느냐며 자기만 빠져나가기 위한 속셈”이라고 격양된 어조로 전했다.

반대로 간호사도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전공의에게 수시로 콜을 남발하는 경우도 있다.의료사고라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경우 책임 부문에서는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기에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해야 하는  구조 속에서 상호 신뢰가 형성되기에는 한계가 따른다.더불어 기본적인 존중 문화가 없다는 점도 지적된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관계자는 “일부에서 의사와 간호사의 관계가 갈등을 빚고 있는 것은 군대 문화의 답습과 업무분장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상호 존중문화가 없기 때문”이라며 “근본적으로 사회 전반적인 인식의 전환이 요구된다”고 진단했다.

그렇다면 상호 라뽀를 형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은 없는 것일까?일반적으로 직장 생활시에 회식 등을 통해 친목을 도모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회식 등 친목도모 활동에 대해 전공의-간호사 양측 모두 효과가 없다는 반응이다.전공의 입장에서 보면 각 개인 전공의와 간호사간 친하게 지내면서 업무 시 편의를 봐주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공과 사를 분명히 가리고 상하관계를 고려할 때 업무에 지장을 줄 우려가 있다는 인식 때문에 일부러 간호사와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경우도 많다.

대전협 김일호 회장은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구조적 방편으로  “과중한 업무와 영역침범에 대해 분명한 선을 그어야 한다”며 “우선적으로 병동전담의·응급실 전담의 등을 둬야 한다”고 제시했다.

병동간호사회 김명애 회장은 “전체 회식 등 술자리는 갈등해소에 도움이 안 된다. 병동 단위 즉 소규모로 친목을 도모하는 방법을 각 병원이 강구해야 한다”며 “예를 들어 아침에 빵·우유 등 간단한 식사를 함께하거나 다과회 등을 갖고 주기적으로 함께 공유하는 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상호 간 대화의 중요성도 요구됐다.모 대형병원 간호부장은 “부부관계와 마찬가지로 상호간에 대화가 단절되면 안 된다. 수시로 많은 대화를 하다보면 교류가 되고 환자 상태 파악도 용이하게 되는 등 전공의·간호사·환자 모두에게 이득이다”라며 “의사소통시 면박을 주는 행위 등 상대가 말하기 싫어하게 만들지 말고 존중해 주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의견을 냈다.

전공의 시절에 간호사와의 관계가 원활치 않았던 의사는 개원을 하거나 봉직의로 일을 해도 간호사에 대해 선입견을 갖고 부정적인 인식으로 대하게 된다.

역으로 간호사도 마찬가지로 의사들에 대한 불만으로 전공의에게 부정적으로 대할 수 있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누구나 상사나 동료들과 원활한 소통을 기대한다. 문제는 나부터 변해야 하지만 상대 탓만 한다는 것이다. 갈등 해소책은 이미 모두 알고 있다. 책임을 떠밀지 말고 상호를 존중하고 마음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 즉 도덕책에서 나오는 배려라는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라며 각자 스스로의 변화된 마음가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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