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의학회 등 3개단체, 정부조직 개편 방향에 심각한 우려 표명
"대응체계서 옥상옥 만들수도…소방방재청은 해체 아닌 확대 개편해야"

[라포르시안]  재난·응급의료 전문가들이 재난 대응을 위한 정부조직 개편 방향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자칫하다는 신속한 의사 결정이 생명인 재난 대응체계에서 또 다른 '옥상옥'을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한재난의학회와 대한응급의료지도의사협의회, 한국응급구조학회는 20일 공동 성명서를 내고 이 같은 의견을 제시했다.

재난의학회 등은 "세월호 침몰사고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안전 불감증과 부패적 사슬이 만들어낸 참사라는 점에 대해 국민들은 분노하고 있다"며 "특히 침몰 사고 발생 직후 정부가 보여준 초기 구조와 구명 능력은 전 세계 10위권 경제력을 가진 나라 수준으로 보기에는 완벽한 실패였다"고 지적했다.

이들 단체는 "세월호 참사 동안 현장 의료지원을 나선 응급의학, 재난의학, 응급구조학을 전공한 전문가들로서는 현장에서의 무질서와 무력감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고, 모든 희생자들이 결국 시신으로 발견되는 현실에서 좌절감을 느껴야 했다"며 "가족들의 애타는 심정을 말로 다 이해할 수 없었으며, 고통을 함께 다 나눌 수 가 없어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이번 참사를 계기로 안전한 시스템을 정착하겠다는 정부의 기본 방침은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정부조직 개편의 기본방향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했다.

3개 단체는 "국가안전처를 신설하기 위해 안전행정부, 소방방재청, 해양경찰청의 기존 질서를 폐지하고 새로운 조직으로 틀을 구성하는 것에 대해 기본적으로 동의한다"며 "핵심적인 역량을 하나로 구축하고 이를 기반으로 일사분란한 행동과 집행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가 단일한 조직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효율적일 것"이라고 판단했다.

특히 소방방재청이 해체될 경우 재난지역 통합 지원에 문제가 생길 것으로 내다봤다.

이들은 "이번 조직 개편의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심각한 문제를 보여주고 있다"며 "이미 17개 시도로 운영되고 있는 지방소방조직을 통합 운영하던 소방방재청을 해체하고 일개 소방재난본부로 운영할 경우 중앙정부가 유사시 어떻게 재난지역을 통합 지원할 것인지에 대한 방향을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기존의 안전행정부의 관련 조직을 이관하고, 소방방재청을 분산하고, 해양경찰청을 이관해 만든 조직이 현장 대응에서 무엇이 달라질지 잘 알기 어렵다"며 "현장 대응을 위한 실제 능력은 변하지 않은 채 신속한 의사 결정이 생명인 재난 대응체계에서 또 한 번 옥상옥을 만드는 것은 아닌지 염려된다"고 우려했다. 

▲ 광화문광장에서 1인 시위를 하는 현직 소방관. kbs뉴스 보도화면 캡쳐

정부조직 개편시 집중적이고 통일적인 현장대응능력을 확보하는 쪽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난의학회 등은 "이번 세월호 참사의 핵심 문제는 과학기술적으로 집약된 재난구조 및 구명 활동 능력이 현저히 부족하다는 점"이라며 "이는 기존 재난대응 조직으로서 해양경찰청의 문제점이기도 했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육상에서 발생하는 재난에서도 소방조직이 과연 첨단 장비와 기술력으로 무장해 초 단시간 내에 대응할 수 있을까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들 단체는 "정부조직 개편의 기본 방향은 집중적이고 통일적인 현장대응능력을 확보하는 것이어야 한다"며 "소방방재청 산하에 현재 운영되고 있는 199 중앙 구조단을 확대할 뿐 아니라 첨단 기술력과 전문인력을 갖춘 중앙 119 화재단, 중앙 119 구급단을 추가로 편성해 유사시 대규모 재난에 직접 투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소방방재청 해체가 아니라 오히려 3000~5000명 규모의 중앙 상비 화재구조구급 역량을 확대하고 이를 통합적으로 운영하는 소방방재청을 확대 개편하는 것이 현장 대응능력을 강화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 단체는 또 지방정부의 열악한 재난대응능력을 키우기 위해 각 지자체별 재난대응 조직에 대한 중앙정부의 법적·제도적 지원방안을 제시할 것을 촉구했다.

한편 정부는지난 9일 중앙응급의료위원회를 열고 선진국 수준의 재난의료대응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연간 22억 원에 불과한 재난의료 지원예산을 내년에는 208억원으로 대폭 증액하기로 했다.

재난에 적극적으로 대응을 할 수 있는 재난거점병원을 현재 20개소에서 35개소로 확대해 사고현장으로의 접근성과 신속성을 강화할 방침이다.  

재난거점병원에는 응급의학전문의 중 해당 권역의 재난의료를 총괄하는 'Disaster Medical Director' 1명을 지정, 재난의료 실시간 대응의 전문성을 높이기로 했다.

이밖에 재난현장에 출동하는 재난의료지원팀(DMAT)을 전국 65개에서 105개 이상으로 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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