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현 교수(연세의대 종양내과)

오전 9시50분. 토요일 오전의 암센터 외래진료실은 상당히 고즈넉했다. 약속 시간보다 10분 정도 일찍 도착한 탓에 다소 여유가 있었다. 외래진료실 앞 대기실 의자에 앉아 잠깐 기다리기로 했다. 방금 채혈 검사를 받은 듯 환자 두 명이 소독용 거즈를 팔뚝에 대고 얼굴을 찌푸리며 복도를 지나갔다. 곧이어 항암치료를 받는 암환자인 듯 머리에 모자를 쓴 여자 두 명이 무표정한 얼굴로 간호사 데스크 앞을 지나갔다.

 

열시가 조금 지나서일까, 외래진료실 복도 저쪽 끝에서 큰 키에 약가 구부정한 자세의 이수현 교수가 안경을 한 번 걷어 올리며 바쁜 듯 걸어왔다. 의자에서 일어나 인사를 건넸다.

 

“미안해서 어쩌죠. 환자 보호자와 갑자기 상담약속이 생겨서요. 조금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진료실 앞에서 기다리죠 뭐.”

 

진료실 앞 대기의자에 앉아 가방 속에 넣어둔 에드거 앨런 포우(Edgar Allan Poe)의 문고판 단편소설집을 꺼내 ‘군중속의 사람’이란 작품을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20분쯤 지나자 이 교수의 진료실 문이 열리고 환자 보호자인 듯한 사람이 나왔다.

 

“들어오시죠. 갑자기 약속이 생겨서 미안합니다”

 

진료실에 들어서자 유리창으로 직사광선이 그대로 쏟아져 눈이 부셨다. 잠시 멈칫하다가 진료실 의자에 앉아 가방에서 취재노트와 카메라, 인터뷰 질문지를 주섬주섬 꺼내 책상 위에 펼쳐놓고 곧바로 인터뷰에 들어갔다.

 

“혈액종양내과를 선택한 결정을 후회한 적은 없습니까? 이를 테면 완치가 불가능한 암환자들을 지속적으로 진료하고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때도 많았을 텐데…”

 

“저는 매일 후회해요. 되게 힘들어요. 가령 안과의사라면 눈만 보면 되는데 종양내과 의사는 다 봐줘야 합니다. 항암치료를 받는 암환자는 ‘손톱이 갈라져요, 시력도 흐려줘요, 입안도 헐어요’ 등의 하소연을 쏟아내죠. 아무래도 약의 독성이 신체 곳곳에서 다양하게 나타나기 때문이죠. 항암치료를 계속 받다보면 우울해지기도 합니다. 이런 환자들이 외래진료를 받으러 왔을 때 5분이란 시간 동안 다 해결해 줘야 해요. 그렇지만 이런 환자들을 어떻게 5분이란 짧은 시간 동안 볼 수 있겠어요. 다른 진료과처럼 한 가지 장기에 발생하는 문제만 봐주는 것이 아니고 다양한 항암치료 증상에 대해 판단해주고 설명해주고 처방도 내려줘야 하기 때문에 너무 힘들죠. 매일 매일 외래를 볼 때마다 후회가 되요. 그렇지만 환자들을 볼 때마다 감동도 받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 일을 할 수 있는 거겠죠”

알 듯 모를 듯한 대답이었다. 아무래도 의사의 입장이 아니라면 이해하기 힘든 복잡한 감정일 듯싶다.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블로그(한쪽 가슴으로 사랑하기)에 쓴 글을 보면 때론 환자에게 위로 받거나, 환자를 통해 의사로서 직업적인 각성을 할 때도 있는 것 같은데요. 그런 경험이 의사로서 직업적 성숙도를 높이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네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저는 환자한테 위로받은 경험이 많아요. 아무래도 종양내과라서 그런 것 같아요. 환자가 되게 힘들어하지만 그러면서 저한테 이겨내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거든요. 실제로 환자한테 좋은 아이템을 많이 배우고, 의사로서도 환자를 통해 많이 배우죠. 매일 후회한다고 말했지만 매일 새롭게 출발 수 있는 것도 환자들이 많이 각성을 시키기 때문입니다”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배운다는 것이 성공한 경험일수도 있고, 실패한 경험일수도 있을 것 같은데 주로 어느 쪽이죠?”

 

“대게 반반입니다. 그렇지만 실패에서 오는 각성은 분량은 많지 않은데 굉장히 임팩트가 크다. 이것은 어떤 의사도 쉽게 말하진 않지만 다 공유하는 이야기입니다. 환자는 그렇게 자기 몸을 던져서 우리한테 가르쳐 주고 있죠. 그것이 의사가 환자한테 잘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죠. 의학은 교과서적으로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경험을 통해 깨닫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환자한테 죽어도 잘 해야 한다. 환자가 가장 큰 스승이다’라고 대부분의 의사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인터뷰를 시작한지 20분쯤 지났을까. 암센터 앞 도로 쪽을 향해 난 진료실 유리창으로 쏟아지는 햇살이 점점 강해진다. 곧바로 다음 질문을 던졌다.

 

“많은 의사들이 의대 교육과정이나 전공의 수련과정에서 환자와의 라뽀 형성을 위한 스킬을 배울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이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의대나 전공의 수련과정에서 환자와의 라뽀 형성 스킬을 교육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어떤 식으로 강화했으면 좋다고 생각하십니까?”

 

질문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답변이 이어진다.

 

“아마 대부분의 의사들이 ‘하우투 커뮤니케이션 마이 페이션트’에 대해 배운 적이 없을 것입니다. 나 역시 전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환자와의 라뽀가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실질적인 교육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다만 수년 전부터 인문학적인 요인을 의대교육에 접목시켜야 한다는 움직임이 의학교육 내부적으로 제기되면서 다양한 관련 교육이 시도되고 있는 것 같아요. 연세의대도 PBL(문제중심학습법) 교육을 도입해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많은 의과대학에서 의료인문학 등의 강의를 개설하고, 환자와의 라뽀, 혹은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교육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병원에서도 ‘나쁜 소식 전하기’라는 수업을 만들었는데 제가 10월부터 강의를 맡았습니다. 어쨌든 앞으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가이드라인과 스탠다드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암환자들은 신체적 고통과 함께 치료 과정에서 겪게 되는 정신적 트라우마도 상당한 편이죠. 그런데 암을 진단받고 치료를 받는 절차상의 과정에서 심리적으로 상당히 위축되고 두려움을 경험하게 됩니다. 암환자의 심리적 상태를 배려한 별도의 진료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느낀 적은 없습니까?”

 

이 질문에서 이 교수는 살짝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아마 할 말이 많은 듯 싶었다.

 

“굉장히 중요합니다. 혹시 ‘슬픔이 기쁨에게’란 책 읽어 보셨나요? 김혜정이란 작가가 실제로 자가의 경험담을 쓴 책인데.”

(이 교수가 언급한 ‘슬픔이 희망에게’란 책은 캐나다 이민생활 중 큰아들의 뇌종양 투병생활을 겪으며 쓴 김혜정 작가의 에세이 형식의 글로, 2005년에 ‘안녕 형아’란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진 바 있다는 것을 인터뷰를 마치고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았다.)

 

이 교수는 그 책을 소개하며 캐나다와 우리나라의 의료환경을 비교하며 많은 아쉬움을 드러냈다.

 

“저는 제가 담당하는 환자가 입원을 하면 한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며 여러 가지 질문을 하죠. 직업을 물어보고 사는 곳도 물어보고, 아이는 몇 명이고 치료받으면서 직업을 유지할 것인지 말 것인지, 남편도 불러서 집에서 어떤 일을 도와져야 이 병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인지 등등 많은 이야기를 해 줍니다. 환자가 최초로 암진단을 받았을 때 이런 이야기들을 다 해줘야 환자가 더욱 강해집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국내 의료현실에서는 이런 일을 하는 것자체가 사치스러운 일입니다. 내가 한 시간을 할애해서 환자와 이렇게 상담을 하지만 그 한시간에 대해 나한테 돌아오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한 행위에 대해 아무런 비용도 책정이 되어 있지 않고 수가가 너무 낮게 책정돼 있습니다. 어찌 보면 차라리 그 시간에 환자를 더 보는 것이 났죠. 요즘 대학병원에서는 환자에게 자세하기 설명하면 바보라고 부릅니다. 이건 마인드의 문제가 아니라 돈의 문제이자 시스템의 문제라고 봅니다. 의사가 나름대로 의식이 있어서 손해를 감내하며 해 주는 것이 지금의 우리 의료시스템입니다.

대답을 하는 그의 목소리 톤이 조금씩 높아진다. 아무래도 화제를 돌려야 할 것 같다.

 

“종양내과, 그 중에서도 유방암 전공이다 보니 자신과 비슷한 연령대의 여성 환자들을 진료하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을 텐데, 그런 환자들을 대할 때는 좀 더 특별한 감정이 생길 수밖에 없겠죠?”

 

“아무래도 그럴 수밖에 없죠. 대부분 아이들을 둔 엄마인 경우가 많으니까. 이런 환자도 있이었죠. 서른 살도 안된 여자인데 삼 년째 대장암 치료를 받고 있는데 이 정도면 아주 말기인 셈이죠. 그 환자의 엄마가 유방암 진단을 받았어요. 그런데 환자의 엄마하고 항암치료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자식의 치료 일정에만 시간을 맞추려고 하니까. 저한테 항암치료 꼭 해야 되는 지 묻더군요. 자기가 지금 항암치료 받을 여유가 없다고. 딸 때문에.”

 

인터뷰를 시작한지 한 시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진료실로 쏟아지는 햇살은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이제 마무리 질문을 해야 할 듯싶었다. 마지막 질문은 이 교수가 예전에 다른 신문에 칼럼을 게재하면서 했던 ‘언젠가는 사회학과 의학을 접목해 보고 싶다’는 부분을 인용했다.

 

“‘사회학과 의학을 접목해 보리라는 의지’는 여전히 유효한가 묻고 싶네요. 또 사회과학적 마인드로 의료시스템을 바라볼 때와 현직 의사로서 의료시스템을 바라보는 데 있어서 어떤 차이가 생겼는지도 궁금하고요”

 

이 질문에 대해선 조금 고민을 하는 표정이었다. 그는 이화여대에서 물리학을 전공했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공부했으며 의료사회학 전공으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사회학과 의학을 접목시키는 것은 제 삶의 화두나 마찬가지죠. 저는 사회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다른 의사들보다 조금 더 환자 입장에서 일하는 의사가 되어야 한다고 당위적으로 생각합니다. 원죄의식 같다고나 할까요. 무엇을 해도 환자 입장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진짜 밉고 싫은 환자도 있어요. 그럴 때는 어쩔수 없이 의사의 시선이 중복되고, 환자의 입장과 의사의 입장이 충돌할 때가 있습니다. 누가 나한테 ‘진료실에서 환자 한 명에게 최선의 진료를 다하는 것이 거시적인 의료시스템이나 제도를 보지 못하게 만들수도 있다’고 충고를 하기도 했죠. 제 버릇이 항상 수첩에 환자와 있었던 일을 쓰는데 언제 무슨 약을 쓸까 하고 참고하기 위해서죠, 하지만 그런 것에 집중하다 보면 중요한 의료시스템이나 제도 등에 대해서 신경을 쓸 수가 없더라고요. 사회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어떤 의사가 되어야하는지에 대해 거시적인 관점이 필요한데 저는 환자 한 명 한 명에게 집중하다보니 좋은 의사가 되는 것에 만족하고 사는 것 아닌가 싶어요. 자전거 폐달을 열심히 밟고 있는데 핸들은 다른 곳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죠”

 

그에게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인터뷰를 마무리 짓기가 아쉬워 작년에 그가 쓴 책에 대해 물었다. 이 교수는 지난해 유방암에 걸린 후배 여자의사를 치료한 경험을 글로 풀어 쓴 ‘한쪽 가슴으로 사랑하기‘란 책을 낸 적이 있다. 그에게 치료를 받은 후배 여의사도 공동저자로 참여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두 번째 책을 낼까 계획 중이에요. 제 블로그에 쓴 글을 재편집하고 환자들이 단 댓글을 다시 정리해서 책을 낼까 합니다. 완치되지 않아도 씩씩하게 잘 살아가는 유방암 4기 환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그 사람들의 일상이 슬프지만은 않다는 것을, 얼마나 울림이 많은지 보여줄 수 있는지 책을 통해 보여주고 싶어요”

  

인터뷰를 마치고 암센터를 나오니 11시 20분이 조금 지났다. 토요일인데도 암센터를 통해 병원 정문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환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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