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관, 재진환자 여부·본인 확인에 시달려..."진료 취소 50% 넘어"
의료계 "휴일·야간 소아환자 상담 허용, 오진이나 진료 지연 우려"

의사가 환자와 화상을 통해 비대면 진료를 하는 모습.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의사가 환자와 화상을 통해 비대면 진료를 하는 모습.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라포르시안] 이달 1일부터 의사-환자 간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이 시작됐지만 제대로 된 준비없이 졸속으로 추진돼 현장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감염병 유행 때와 달리 시범사업은 재진환자 등 적용 대상이 제한되기 때문에 진료를 예약했지만 적용 대상이 아니거나 야간 시간에 비대면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의료기관이 없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충분한 사전 검토나 준비없이 졸속으로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을 추진했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앞서 복지부가 마련한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추진방안을 보면 시범사업 실시기관은 의원급 의료기관을 원칙으로 하고, 병원급 진료가 불가피한 환자를 고려하여 병원급 의료기관은 예외적으로 허용한다.

시범사업 대상 환자는 ▲해당 질환에 대해 1회 이상 대면진료한 경험(만성질환자 1년 이내, 그 외 환자 30일 이내)이 있는 재진 환자를 원칙으로 한다. 소아 환자(만 18세 미만)도 대면진료 이후 비대면진료(재진)를 원칙으로 하되, 휴일·야간(평일 오후 6시(토요일은 오후 1시)~익일 오전 9시)에 한해 대면진료 기록이 없더라도 비대면진료를 통한 의학적 상담(처방 불가)은 가능하다. 

다만 ▲섬·벽지 환자 ▲거동불편자(만 65세 이상 노인(장기요양등급자에 한함), 장애인(장애인복지법 상 등록장애인) ▲감염병예방법 상 1급 또는 2급 감염병으로 확진 후 격리(권고 포함) 중 타 의료기관 진료가 필요한 감염병 환자 등은 초진 비대면 진료가 허용된다. 

비대면진료는 대상환자 중 의사가 의료적 판단에 따라 안전성이 확보된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실시한다.

의원급 의료기관의 경우 만성질환자 등 기존에 대면진료를 받았던 환자는 해당 의료기관에서 동일한 질환에 대해 추가로 진료를 받을 경우 비대면진료가 가능하다. 만성질환자는 대면진료를 받은 지 1년 이내, 만성질환 이외 질환은 30일 이내에 한해 비대면진료를 받을 수 있다.

소아 환자도 대면진료 이후의 비대면진료(재진)를 원칙으로 하되, 휴일·야간에 한해 대면진료 기록이 없더라도 비대면진료를 통한 의학적 상담이 가능하다. 

비대면진료는 화상진료를 원칙으로 하며, 스마트폰이 없거나 활용이 곤란한 경우 등 화상진료가 불가능할 때에는 예외적으로 음성전화를 통한 진료가 가능하다. 

비대면진료 후 필요 시 처방전 발급이 가능하며, 환자가 지정하는 약국으로 팩스·이메일 등을 통해 처방전을 전송하게 된다. 

이런 추진방안을 기본으로 지난 1일부터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이 시작됐지만 의료현장에서는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가장 큰 혼란은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적용 대상자 여부를 확인하는 문제다. 시범사업은 도서벽지나 거동불편자, 감염병 확진환자 등을 제외하고 재진환자만을 대상으로 한다.

복지부는 비대면 진료 의료기관이 환자 본인 여부 및 허용대상 여부를 사전에 확인 후 진료를 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본인확인에 대한 세부적인 지침이 없어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 

이 때문에 비대면 진료를 하는 의료기관은 하루 종일 진료 접수, 시범사업 대상 여부 확인, 진료 취소를 반복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원격의료산업협의회(이하 원산협)는 지난 5일 입장문을 내고 "지난 1일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이 시행된 후, 환자가 시범사업 대상인지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극심한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원산협이 자체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 환자의 비대면진료 요청이 의료기관으로부터 거부 또는 취소된 비율이 50%를 넘었다. 

원산협은 "시범사업 대상이 아닌 것으로 판단돼 진료를 받지 못한 환자의 민원과 고충 호소 역시, 정부가 아닌 의료기관과 플랫폼이 소화하고 있다"며 "의료기관은 착오 등으로 대상이 아닌 환자에게 비대면진료를 제공할 가능성을 우려해 플랫폼에 기술 개발 및 조치를 요구하고 있지만 제도적·법률적 한계가 해소되지 않는 한 해당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솔루션 개발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또다른 문제는 복지부가 소아 환자의 경우 휴일·야간에 한해 대면진료 기록이 없더라도 비대면진료를 통한 의학적 상담은 가능하도록 했으나 참여하는 의료기관이 드물다는 점이다. 휴일·야간에 소아 환자 상담은 가능하더라도 처방은 불가하다. 

의료기관에서는 굳이 휴일과 야간에 제한적인 비대면 진료를 제공하기보다는 아예 참여하지 않는 게 낫다는 입장이다. 그러다 보니 휴일·야간에 이용할 수 있는 의료기관을 찾기가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대한의사협회는 "소아청소년이라는 환자군 특성상 비전형적인 증상과 그에 따른 빠른 대처를 위해 대면진료가 반드시 필요한 사항임에도 불구하고 의료접근성 및 편의성을 이유로 소아청소년에 휴일·야간에 국한한 비대면 진료 상담을 허용한 것은 유감스럽다"고 지적했다.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도 최근 공식 입장을 내고 “휴일과 야간의 경우 대면 진료 기록이 없는 18세 미만 소아 초진 환자도 의학적 상담이라는 명목으로 비대면 진료가 가능하도록 했다”며 “처방은 불가하다고 했으나 위험성이 과소평가 돼서는 안 되는 소아청소년 진료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사실상 초진을 허용을 의미한다. 소아 급성기질환은 적시 치료되지 않으면 급격히 악화되는 경우가 많아 비대면 진료 오진이나 진료 지연으로 인한 위험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시민단체는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을 중단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무상의료운동본부는 지난달 30일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추진을 결정하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회의장을 찾아 기자회견을 열고 ▲건강보험 재정 낭비 초래할 비대면진료 130% 수가 책정 반대 ▲배달시장 처럼 비용 폭등시키고 플랫폼 업체 배만 불릴 비대면진료 추진 중단 등을 요구했다. 

무상의료운동본부는 “지금 급한 것은 비대면진료가 아니라 응급실 뺑뺑이 사망을 막는 정책이고 공공의료 확충과 의사인력 확충을 통해 필수의료 강화와 지역의료 격차를 해소하는 것"이라며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을 위해서는 방문진료와 방문간호를 활성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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