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화석(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혁신산업위원회 부위원장)

[라포르시안] 정밀 의료와 개인맞춤형 치료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환자 중심 치료’(Patient Centered Care)나 ‘환자 중심 접근 방식’(Patient-Centric Outcomes)과 같은 용어들이 자주 등장한다. 이는 환자 질병의 예방·진단·치료·관리에 중점을 두고 개인 건강 증진을 통해 의료비용 절감 등 의료시스템 전반에 부담을 줄이는데 궁극적인 목표가 있다.

특히 디지털 헬스케어는 이러한 환자 중심 치료를 실현한다는 점에서 많은 국가들이 앞다퉈 도입해 임상 현장에서 활용되고 있다. 초고령사회와 이로 인한 의료비 증가를 목전에 둔 우리나라도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 진흥에 앞장서고 있다. 하지만 제한된 건강보험 재정으로 인해 디지털 헬스케어의 적정 보상에는 여전히 좁혀지지 않는 간극이 존재한다. 필자는 국가별 어떠한 디지털 헬스케어 제품이 건강보험 제도권에서 보상받는지 최근 트랜드를 살펴보고 이에 대한 시사점을 찾고자 한다.

독일은 앞서 디지털 헬스 어플리케이션(앱)에 대한 신속 등재 절차 ‘DiGA Fast-Track’(DiGA)을 신설해 디지털 치료기기의 치료 효과 입증 여부와 상관없이 우선 12개월 동안 임시 등재와 가격 보상을 허용했다. 또한 이후 최대 2년에 걸쳐 임상적 유효성 근거 창출을 위한 기회를 제공해왔다. 현재 45개 제품이 등록돼 있으며 그 가운데 18개 제품은 정식 등록이 완료돼 영구 보험적용이 결정됐고 27개 제품은 조건부로 임상 근거 창출 단계를 거치고 있다. 반면에 6개 품목은 임상적 유효성 근거 창출에 실패해 목록에서 삭제됐다.

독일의 경우 영구 보험적용이 결정된 상당수 앱은 ▲불면증 ▲우울증 ▲불안장애 등 정신 건강(Mental health) 분야에 속한다. 이는 임상적 이점은 물론 정신과 진료의 대면 접근성이 낮고 대기 시간이 길며 우수한 비용효과성 측면이 고려된 결과로 해석된다. 더불어 부정맥 환자의 모니터링 기술이 함께 포함됐으며, 이 역시 사회적 요구도가 높은 영역으로 판단된다.

이밖에 신의료기술에 대해서는 InEK(병원비용보상체계연구소)를 통해 개별 병원 단위로 NUB(New Methods for Treatment and Screening) 목록에 신청하기 때문에 앱을 제외한 다른 디지털 헬스 관련 제품도 병원 단위에서 보다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프랑스는 건강보험제도 내 입원진료에 포괄수가제를 사용하고 있으나 고가 의약품 및 의료기기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LPPR’(List of Reimbursable Product and Service)라고 불리는 별도 목록을 근거로 보상한다. 해당 목록에는 폐암 환자의 재입원과 합병증을 원격으로 관리하는 디지털 치료제, 자동 인슐린 주입 시스템, 연속 혈당 측정 앱 등이 포함된다.

프랑스는 또한 원격의료 활성화를 위해 2014년부터 시작된 ‘Experiments in Telemedicine for the Improvement of Health Pathways’(ETAPES) 프로그램에 디지털 헬스케어 관련 제품을 별도 공적 보험을 통해 지원하고 있다. 비록 해당 프로그램은 2022년 7월 1일 종료됐지만 새로운 원격의료 보상을 위한 지원 프로그램이 다시 적용됐다. 이를 통해 심부전 환자 원격모니터링, 인슐린·혈당 자동 모니터링, 환자들이 집에서 혈당을 입력하면 중앙 데이터 센터에서 치료계획을 수립하는 제품 등이 해당 보상 프로그램에 포함돼있다.

영국 NICE(National Institution for Health and Care Excellence)는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의 효과성과 경제적 영향을 검토하기 위해 ‘ESF’(Evidence Standards Framework)를 개발했고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제품들의 공적 보상을 검토하고 있다. 이와 함께 ITT(Innovation and Technology Tariff)·ITP(the Innovation and Technology Funding Payment) 등 지원 프로그램을 활용해 디지털 헬스 관련 제품을 보상하고 있다.

여기에는 CT 이미지를 활용한 관상동맥질환 검사, 당뇨병 지원 프로그램 앱, 불면증 치료 디지털 치료제, 심전도 원격모니터링, 만성폐쇄성폐질환 관리 앱 등 제품이 해당된다. 이밖에 2021년 도입된 ‘The Med Tech Funding Mandate’(MTFM) 프로그램은 NICE의 긍정적 평가 제품을 대상으로 비용효과성과 재정 영향을 고려해 11개 제품을 선정하고 재정을 투입했다.

이처럼 여러 국가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특정 제품이 가치를 보상받고 공적 보험 영역에 편입하기 위해서는 결국 ‘치료 결과’ 향상이 중요하다. 이는 디지털 헬스케어 품목군도 예외가 아니다. 디지털 헬스케어의 의료비용 절감과 운영 효율성 증대 등 다양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각 정부는 엄격하게 그 가치를 평가하고 건강보험을 적용한다. 주목할 점은 이들 나라에서 새로운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제품의 지원 프로그램을 적극 시행하고 공적 재정을 마련해 지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선정된 제품들을 살펴보면 임상적 결과만을 가치 보상을 위한 절대 지표로만 보지 않고 환자가 받을 수 있는 사회적 가치도 함께 반영한다.

물론 새로운 가치 보상을 위해 환자의 임상적 결과 향상은 매우 중요한 기준이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 전통적인 의료기기는 치료목적으로 개발됐고 새로운 가치 보상을 받기 위해 반드시 임상적 결과 향상을 입증해야 했다. 그러나 디지털 헬스케어는 치료목적을 넘어 예방·진단·치료·관리 등 다양한 목적으로 개발되며 정밀 의료와 맞춤형 치료를 위해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환자의 임상적 결과 향상이라는 절대적 잣대를 넘어 더 효과적인 의료서비스 시스템 개선과 부작용 감소, 장기적인 의료비용 절감, 환자 삶의 질 향상 등 다양한 항목을 고려한 가치 평가가 필요하며, 이에 대한 정부 차원의 전향적인 논의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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