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영 의원·희귀질환재단, ‘유전상담서비스 활성화’ 토론회 개최
의사-환자 “법적 근거 갖춘 유전상담, 의료행위로 인정돼야”

[라포르시안] 희귀질환지원센터 지원사업에 ‘유전상담’을 포함하는 내용의 '희귀질환관리법'이 지난달 25일 국회 본회의(국민의힘 이명수 의원 대표발의)를 통과한 가운데 희귀질환 환자의 질환 극복을 돕기 위해선 유전상담을 의료행위로 인정하는 등 제도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과 한국희귀질환재단(이사장 김현주)은 지난 31일 오전 국회의원회관 제7간담회의실에서 ‘국내 유전상담서비스 활성화 방안 모색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유전상담이란 질환의 유전적 요인이 환자와 그 가족에게 미치는 의학적, 심리적 영향에 대한 이해를 돕는 과정을 말한다. 

희귀질환은 대부분 유전성 질환으로 치료제가 없을 뿐만 아니라 치명적인 장애를 초래한다. 특히 질환의 대물림에 따른 경제적, 심리적 부담이 큰 편이다 . 

이런 이유로 부모를 포함한 가족 중 비슷한 질환을 가진 사람이 있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유전상담에서는 가족력과 환자의 병력을 통해 특정 유전질환의 위험을 평가하고, 유전질환에 대한 교육과 상담을 제공함으로써 환자가 자신에게 알맞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그러나 유전상담 서비스는 전문성이 요구되고 상담에 긴 시간이 소요되는 특성상 임상유전학 전문의 혼자서 제공하기 힘든 편이다. 진료시간이 3~5분 정도에 불과한 국내 대학병원의 여건 상 의사가 30분 이상 소요되는 유전상담을 급여 적용없이 제공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선 의사와 유전상담사가 원팀을 구성해 진단은 유전자 검사결과를 토대로 의사가 내리고, 상담과 소통은 유전상담사가 하도록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높다. 

이날 토론회에서 김현주 한국희귀질환재단 이사장은 “유전상담은 최소한 30분 이상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수가 없이는 우리나라에서 활성화될 수 없다”며 “우리나라도 유전상담사를 배출하고 있지만 행위코드가 없어 활성화가 어렵다보니 어렵게 배출한 상담사들이 재인증을 받지 않는 일이 벌어진다”고 지적했다.

김 이사장은 "가족 내 재발되거나 대물림될 수 있는 유전성질환 극복을 위해서는 환자와 고위험군 가족이 질환에 대한 정확한 정보에 근거한 충분한 이해와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지지와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며 “국내 의료 현장에서 유전상담이 의료서비스로 정착될 수 있도록 의료행위 코드를 신설해달라”고 촉구했다.

토론회 발제를 맡은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과 이범희 교수는 ‘유전상담 활성화를 위한 운영체계 구축 방안’을 제시했다. 

질병관리청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있는 이 교수는 “희귀질환 환자에게는 ‘나와 같은 환자는 어디에 있는가’, ‘그들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 ‘임신은 해도 되는가’, ‘내가 받을 수 있는 국가 지원은 무엇인가’ 등의 정보가 필요하며 이를 포괄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유전상담 서비스”라며 “연구결과 환자 가족이 요구하는 것은 30분 이상의 설명인데 (현실적으로 의사가 직접 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팀으로 충분한 시간을 갖고 정서적인 안정까지 제공하는 유전상담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유전상담을 위해서는) 내원 전 준비, 상담, 진단검사 후 상담 등 세가지 카테고리가 있다. 이를 표준화해 프로토콜을 마련하기 위한 지원사업을 현재 진행 중"이라며 "전국 희귀질환 거점병원을 통해 유전상담 서비스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파악하고 서비스 향상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국내 유전상담 서비스를 확대하려면 교육 과정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아주대 의대 의학유전학과 정선용 교수는 일본 유전상담 교육과정과 의료서비스 현황을 소개하며, 한국도 유전상담 서비스 확대를 위한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했다.

정선용 교수 발표에 따르면 일본은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유전상담외래', '유전외래'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 임상유전전문의와 인정유전카운슬러(유전상담사), 간호사가 팀을 이뤄 유전질환 상담·진단을 진행하고 환자를 전문적으로 관리한다. 현재 일본 전국에 127개 의료기관이 유전상담을 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유전상담이 의료서비스로 인정받기 때문에 비급여로 진료비 청구도 가능하다. 유전질환 교육과 진료에 공들이고 있는 교토대학병원은 임상유전전문의 등 의사 10명과 인정유전카운슬러 5명이 유전외래 분야를 담당하고 있다. 초진은 1시간에 9,900엔(약 9만3,400원)에서 시작해 30분마다 4,950엔(약 4만6,700원)이 추가된다. 재진은 15분당 2,530엔(2만3,800원)이다.

도쿄대학병원이나 오사카대학병원, 규슈대학병원 등 전국 주요 대학병원이 비슷한 규모로 유전외래 관련 진료팀을 운영하고 있다.

임상유전전문의와 인정유전카운슬러도 전국적으로 양성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2002년 임상유전전문의제도위원회에서 임상유전전문의 인정제도를 시작해 올해 3월 기준 총 1,727명이 임상유전전문의로 인증받아 활동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일본과 비슷한 시기인 2006년부터 아주대가 대학원에 유전상담 석사과정을 설치하고 유전상담사 양성을 시작했다. 하지만 현재 대한의학유전학회 인증 유전상담사는 62명에 불과하다. 유전상담 교육기관도 아주대, 울산대, 건양대, 이화여대 등 4개 대학 대학원 정도이고, 그나마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정 교수는 “지방의 대학원도 유전상담 교육과정을 설치할 수 있도록 수도권에 집중된 유전상담 교육 과정을 전국으로 확대해야 하며, 의료기관이 비급여로라도 유전상담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국희귀질환재단 김현주 이사장.
한국희귀질환재단 김현주 이사장.

이날 토론회에는 희귀질환자 가족도 지정토론자로 참석해 유전상담 서비스 활성화를 호소했다.

두센근이영양증 환아를 둔 어머니인 엄춘화 씨는 “유전상담을 통해 한 가정에 대물림되는 질환을 끊을 수도 있고 다양한 안타까운 현상을 막을 수 있다”며 “하지만 몇분의 짧은 진료시간은 충분한 유전상담을 하기엔 너무나 역부족”이라고 지적했다.

엄 씨는 “의학적 전문지식도 필요하지만 유전상담사를 통해 (질환에 대해) 자세하고 쉽게 설명을 들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 환자 및 가족들은 ‘환자에 대한 알 권리’로 유전상담서비스를 제공받고 싶다"며 "유전상담을 정부 재정 여건이나 의료기관 수익구조로만 보지 말고 희귀질환 가족과 그럼에도 소중한 생명을 지키며 하루하루 행복을 찾아가는 우리 가정을 위해 모두가 힘을 모아달라”고 당부했다.

엔젤만증후군 환아를 자녀로 둔 조애리 씨는 “희귀질환을 진단받은 아이가 스무살이 됐는데 아직도 질환에 대해 잘 모른다”며 “미국과 일본의 유전상담사 제도가 너무 부럽고 우리나라는 왜 못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제도화가 시급하다”고 촉구했다. 

화순전남대병원 전남권역희귀질환거점센터 이화윤 유전상담사는 “유전상담 과정은 1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검사 전 상담과 검사 후 결과 상담, 가족을 대상으로 한 추가 검사와 교육, 분과 간 협력 진료가 필요한 경우가 일반적”이라며 “유전상담을 전담하는 유전상담사가 희귀질환센터에 근무하게 된다면 환자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고 함께 근무하는 동료 의료인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희귀질환자들을 위해 유전상담 활성화에 공감을 표시했다. 

질병관리청 이지원 희귀질환관리과장은 “희귀질환자들을 위한 유전상담 필요성에 공감하고 희귀질환자와 가족에게 유전상담이 여전히 미충족 수요여서 관련 지원 요구가 크다는 것도 인지하고 있다”며 "질병청은 적극적인 국가 지원을 위해 올해부터 유전상담체계 운영지원사업을 시작했다. 희귀질환자 거주지 중심으로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도록 사업을 확대하고 고도화해 지원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보건복지부 정성훈 보험급여과장은 “유전상담 서비스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지만 제도화에 대해서는 건강보험제도 특성을 고려할 필요도 있다”며 "국회를 통과한 희귀질환관리법을 통해 유전상담 지원 관련 법적 근거가 마련돼 서비스 제공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제도권 진입을 위해 고민해야 할 부분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을 듣고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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