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 중증환자 응급실 수용 의무화 대책 추진
의료계 "'응급실 뺑뺑이' 원인 잘못 짚어...문제는 배후진료 역량"

국민의힘과 정부는 5월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회의실에서 응급의료 긴급대책 당정협의회를 개최했다. 사진 출처: 국민의힘 홈페이지
국민의힘과 정부는 5월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회의실에서 응급의료 긴급대책 당정협의회를 개최했다. 사진 출처: 국민의힘 홈페이지

[라포르시안] 지난 3월 대구에서 10대 응급환자가 병원을 찾다가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 데 이어 최근 경기도 용인시에서 70대 노인이 '구급차 뺑뺑이' 끝에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응급의료시스템 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여당과 정부는 지난 31일 국회에서 응급의료 긴급당정 협의회를 열고 응급의료시스템 개선 대책 마련에 나섰다. 

당정은 이날 협의회 회의에서 환자 이송부터 병원 수용까지 일괄 관리하는 체계를 구축하고, 응급환자의 병원 수용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긴급당정 협의회 뒤 “(병원의) 빈 병상과 의사 현황을 이송 단계에서부터 확인할 수 있도록 체계를 구축하겠다”면서 “지역응급의료상황실을 설치해 환자의 중증도별, 병원별 가용 자원 현황을 기초로 이송과 전원을 지휘·관제하고 이를 통한 응급환자 이송 시 해당 병원은 수용을 의무화하겠다"고 밝혔다. 

박 정책위의장은 "구급대원들이 병상이 있는지 이 병원 저 병원 전화를 돌려 묻는 것도 하루속히 개선되어야 하고 응급실의 여력이 있다고 해 병원에 도착했는데 진료할 전문의가 없어서 또 다른 병원으로 가야 하는 상황도 사라져야 한다"며 "응급실에 경증 환자가 몰려서 정작 중증 환자가 치료를 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도 바꿀 필요가 있다. 선진국들이 시행하고 있는 것처럼 중증과 경증을 분리해 받는 이원화 제도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정은 응급의료정보를 제공하는 종합 상황판을 개선하기 위해 정보 관리 인력을 추가로 지원하기로 했다. 

중증과 경증 응급환자를 이원화해 수용하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박 정책위의장은 “권역응급의료센터의 경증환자 진료를 제한함으로써 119구급대는 경증 응급환자를 지역 의료기관 이하로만 이송하도록 하는 것을 원칙화하고, 권역응급의료센터는 (환자) 중증도를 분류해 경증 응급환자는 수용하지 않고 하위의 종별 응급의료기관으로 분산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응급환자를 수술할 의사가 부족한 것도 '구급차 뺑뺑이'가 발생하는 원인으로 보고 비번인 의사가 집도할 경우 응급의료기금을 통해 추가로 수당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한 대학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 전경.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한 대학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 전경.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당정이 마련한 응급의료시스템 개선 대책을 놓고 의료계에서는 냉소적인 반응을 나왔다. '응급실 뺑뺑이'가 발생하는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데서 나오는 부실한 대책이라는 지적이다. 

응급의료기관이 환자를 받지 못하는 배경에는 응급실 진료 이후 배후진료 인프라 문제가 연관돼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응급실에서 환자를 진료한 이후 응급수술이나 시술을 하기 위해서는 다른 과의 협진이 필수적이다. 예를 들어 응급실 들어온 환자가 CT 검사를 통해 뇌출혈이 확인됐는데 당장 외과 수술이 가능한 전문의가 없다면 전원을 보낼 수밖에 없다. 급성심근경색이 의심되는 환자가 응급실로 왔을 때 검사와 응급처치만으로 살릴 수 있는 게 아니라 배후 진료로 심혈관조영술과 스텐트 삽입이 반드시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응급실 진료 이후 배후진료 인프라 확보 문제는 필수의료 확충과 맞물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간단히 해결될 사안이 아니라는 점에서 당정이 마련한 것처럼 중증환자 응급실 수용 의무화가 개선대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는 지난 31일 성명을 내고 "“구조적 문제들과 상황을 외면한 채 마치 응급실에서 일부러 거부한 것 같은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응급실 뺑뺑이’ 보도에 유감을 표한다”며 “이러한 선정적인 보도들은 무너져가는 환자, 의사관계를 더욱 악화시키며 국민들의 불안감을 자극하고 결과적으로 불필요한 법적소송의 증가와 부담감으로 응급의료 현장의료진들의 이탈을 부추기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배후진료능력 부족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응급의학의사회는 "중증외상환자는 최소한 중환자실과 응급외상수술팀이 갖춰져야 수용할 수 있다”며 “응급실 뺑뺑이의 원인은 의뢰한 병원의 배후진료능력 부족 때문이다. 환자를 치료할 의료 자원이 그 시간, 그 장소에 없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증응급환자가 더 많은 치료 기회를 갖기 위해서는 ▲상급병원 과밀화 해소를 위한 실무협의체 마련 ▲경증환자 119 이송 및 응급실 이용 금지 특별법 제정 ▲취약지 응급의료 인프라 확충 ▲비정상적인 응급실 이용 행태 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의사회는 “이송문의에 대한 수용 여부 결정은 현장의료진이 병원의 역량과 상황을 고려한 복합적인 판단으로 처벌의 대상이 아니다”며 “근본적 원인인 상급병원 과밀화문제 해결을 위한 실무논의체를 구성하고, 경증환자 119이송금지 및 상급병원 경증환자 이용금지 특별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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