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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건강논평] 간호법 거부권, 비정상적 건보재정운영위...누가 민주주의를 좀 먹나<시민건강연구소> 민주주의와 투쟁하지 말라!

[라포르시안]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하는 안팎의 도전에 맞서 투쟁하지 않는다면 오월의 정신을 말하기 부끄러울 것입니다.”

대통령이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한 말이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이 말을 들었다면 숙연한 결의를 했을 테지만, 발화자가 윤석열 대통령이라니 그간의 행적을 고려했을 때 의아해질 수밖에 없다. 그가 말하는 민주주의는 무엇이고, 또 투쟁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에릭 올린 라이트에 따르면, 자유는 자기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힘이고, 민주주의는 사회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집단적 선택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데 참여할 수 있는 힘이다. 이런 정의에 비추어 봤을 때, 현 정부는 명백히 자유와 민주주의를 크게 위협하고 있다. 이를 보여주는 많은 행태들은 다음과 같이 유형화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민주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거치지 않고 우회하고 독단하는 것이다. 헌법재판소에서 검찰수사권 축소법이 유효하다고 판단한 이후에도 이른바 검수원복(검찰수사권 복원) 시행령을 고수하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 중대재해법을 무력화하기 위해 시행령을 개정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오래 전부터 민주주의를 수없이 강조했던 우리는 논평에서 이미 이러한 행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논평 바로가기).

정치적 의미는 이보다 좀 더 심각하다. 입법부를 통한 최소한의 형식적 민주주의조차 껍데기로 만들려는 의도다.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시민의 생활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탈정치화’하겠다는 것이고, 그만큼 민주주의를 우습게 안다는 한 가지 증거다.

둘째, 민주적으로 형성된 의사를 직접적으로 반대한다. 불과 얼마 전 간호법에 대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것이 대표적이다. 대통령의 거부권은 입법부를 견제하기 위해 헌법이 보장한 대통령의 권리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에서는 한 번도 행사되지 않았고,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통틀어도 세 건이었다. 그러나 이번 대통령은 취임 1년 만에 벌써 양곡법에 이어  두 번째다. 거기다 간호법과 같이 자신의 대선공약을 이행하지 않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것을 보면, 입법부를 견제한다기보다는 무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연이은 거부권 행사가 이례적인 것을 넘어서 이 정치권력의 구조적 특성이 아닌지 의심하는 이유이다.

셋째, 제도화된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를 훼손한다. 단지 선거를 통해 대통령과 국회의원, 지자체장 등을 선출하는 것만으로는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어렵기 때문에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민주적 의사결정을 구현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적 장치들이 존재한다. 정부와 공공 기관의 ‘무슨무슨 위원회’로 불리는 거버넌스가 대표적인데 요식 행위에 그치거나 자원이 많은 집단 혹은 정부의 영향력이 크다는 문제에도 불구하고 의사결정의 민주성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적 공간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건강보험 재정운영위원회에서는 여러 대표자들이 모여 건강보험 수가 협상과 관련된 주요 의사결정을 한다. 그런데 최근 이 위원회 구성은 납득하기가 어렵다. 안 그래도 사회적으로 더 억압된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인데, 이를 보완하기는커녕 오히려 기존에 직장가입자를 대표하던 양대 노총을 배제해버렸다.

넷째,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지지 않도록 통제한다. 예컨대 사람들이 모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지난 5월 18일 경찰청장이 불법집회 전력이 있는 단체의 집회를 금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의 자유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거기다 경찰의 집회·시위 과잉진압으로 시민이 생명을 잃고 다쳤던 과거는 잊고, 특단의 조치를 취하겠다 엄포를 놓고 있다.

마지막으로, 목소리 내는 주체를 지우기 위해 억압한다. 목소리 내는 것을 막는데서 그치지 않고, 존재 자체를 위협하고 위축시키려는 것이다. 부당하게 노조의 회계장부 제출을 요구하고, ‘건폭’이라 지칭하며 무리한 수사를 지속하는 것이 여기에 속한다.

다시 묻는다. 그토록 무수히 언급하는 자유와 민주주의는 도대체 무엇인가. 그리고 그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하는 도전에 맞선 투쟁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그 투쟁이야말로 절차적, 실질적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가 생각하는 투쟁은 이런 것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감각을 좀 더 예민하게 가다듬고, 억압받는 존재와 연대하고, 함께 목소리 내며, 그러한 문화와 구조를 만들어가는 것. 이는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현 정부 활동에 대한 저항 뿐 아니라 민주주의의 토대를 강화하기 위한 일상에서의 (작지만 중요하고 어려운) 실천을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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