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주(의료기기산업혁신연구회 총무이사)

[라포르시안]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의료기기 국제조화에 대한 생산적인 논의들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국제 규제와 국내 인허가 기준을 맞추는 노력 또한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의료기기 수출 업체 입장에서는 국내 인허가와 동시에 외국 기준에서도 안전성·유효성을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에 환영할 만한 제도다. 당연히 내수가 약한 우리나라에서는 필요한 전략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수출까지 가기 위한 기술력의 집적, 사용 경험 그리고 인허가 비용을 본다면 모든 제품을 국제조화에 따른 기준에 맞추는 것이 과연 합리적일까 하는 의문이 들고 국내 제조업체들의 불만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각 나라들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자국민 보호를 위해 의료기기산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다. 호흡기 질환을 위한 인공호흡기가 부족할 때 몇 안 되는 생산국은 해외 수출 금지를 명령했고 우리나라 역시 마스크 등에 이러한 조치를 취했다.

일부 국가에서 시도한 전시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제조시설에서 필요한 장비를 전환해 의료기기를 생산하려는 시도는 미국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긴급히 검토됐지만 쉽지 않은 문제였다. 이 때문에 의료기기는 주요 선진국에서 전략물자로 분류돼 있기도 하고 고난도 기술이다 보니 기술에 대한 보호 장벽도 높다.

코로나19를 통해 체감했지만 의료기기는 마치 농업의 식량 자급화 비율처럼 일정 분야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고, 내수시장에서의 필수 의료기기 수급 계획과 국내 산업에 대한 보호가 이뤄져야 한다. 의료기기 기업 입장에서 높아진 인허가 기준은 큰 비용 부담이 들고 결국 사용량이 적거나 이윤이 낮은 제품은 출시를 회피하거나 개발조차 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조금 다른 맥락이지만 미국은 창업한 회사나 자본력이 취약한 중소기업을 위한 특혜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전 세계 허가 중 가장 비싼 비용을 지급해야 하지만 자국 내 중소기업에는 반값 이하의 허가 비용을 책정해 창업에 대한 동기 부여와 중소기업 부담을 줄여주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신기술 의료기기에는 일부 허가를 위한 입증 제도를 면제해 혁신 혹은 첨단 제품이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사장되는 것을 방지하는 ‘De-Novo’ 제도를 통해 인허가 부담을 크게 낮춰주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이러한 제품군이 희귀의료기기로 등록돼 제도적으로 필요한 의료기기에 대한 단절을 방지하고는 있지만 환자나 임상의들이 직접 수입하는 번거로운 절차를 거처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희소·희귀 혹은 필수 제품들이  오히려 인허가 사각지대에서 그 비용과 노력이 환자에게 전가된다. 우리는 이미 인조혈관 등을 통해 뼈아픈 경험을 했다. 인허가가 국민 안전을 위한다는 최고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면 의료기기 산업에도 제품을 다양하게 생산할 수 있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국제조화 못지않게 제조업 육성이나 필수 의료기기 등 꼭 필요한 의료기기를 지속적으로 생산하기 위한 정책 또한 필요하며 비록 판매 수량이 적지만 대체가 쉽지 않거나 생명을 다루는데 필요한 의료기기는 국내 생산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 국제조화의 최대 수혜자는 다국적 기업일 것이고 그다음이 수출기업이다. 하지만 국내 의료기기 제조업 중 매출 100억 원이 되는 업체가 200개가 채 안 되는 현실을 감안하면 지금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정책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먼저 살펴봐야 한다.

중소기업을 위한 각종 인허가 비용을 줄일 수 있고 첨단 혁신 제품에서 환자에 대한 배려가 규제에도 반영 돼야 할 시점이다. 이미 선진국이 여러 방향으로 실시하고 있으니 그 현황부터 파악하고 우리만의 제도를 고려할 때다. 식량이 무기가 될 수 있듯 의료기기 또한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산업 이상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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