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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어린이병원·비대면 진료보다 노동시간 단축이 더 필요하다[뉴스&뷰] 긴 노동시간에 '시간 없어서' 병원 못 가는 미충족의료 경험 높아
과로 조장하며 야간·휴일 의료이용 접근성 높이는 건 '병 주고 약 주는' 꼴
"긴 노동시간은 의료이용 저해요인...건강에도 악영

[라포르시안] #1. "어린이들이 야간과 휴일에도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달빛어린이병원을 현 35개소에서 100개소로 크게 늘리고 전문의가 상담을 제공하는 ‘소아전문 상담센터 시범사업’을 추진, 굳이 응급실을 찾지 않아도 되는 경증소아 환자를 위한 서비스도 적극 마련한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21일 발표한 '제4차 응급의료 기본계획(2023~2027)'에 포함된 내용이다. 달빛어린이병원은 2014년 9월부터 보건복지부가 공모를 통해 선정·운영하고 있는 어린이 진료센터다. 야간이나 주말 늦은시간까지 문을 여는 병원이 없어 불편했던 소아 환자들을 위한 병원으로, 응급실까지 올 필요 없는 소아 경증환자를 치료해 응급실 과밀화도 해소하기 위해 도입했다. 

달빛어린이병원은 특히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워킹맘을 비롯한 맞벌이 가정에서 퇴근 이후 저녁시간에 아이를 병원에 데려와 진료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호응을 얻고 있다. 

복지부는 이런 점을 고려해 달빛어린이병원을 전국적으로 확대해 경증소아 환자를 위한 의료접급성을 높이고 응급실 과밀화도 해소하겠다는 의도다.

#2. 복지부는 코로나19 심각 단계에서 의료기관 내 환자와 의료진의 감염을 방지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허용한 비대면 진료를 재진 환자, 의원급 의료기관 중심으로 허용하는 제도화를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일상적인 상황에 알맞는 비대면 진료의 방향과 원칙을 새롭게 수립하고 국민의 건강 증진과 의료 접근성 제고를 위해 비대면진료의 제도화를 추진해 나갈 필요가 있다는 게 복지부의 공식 설명이다. 

그러자 비대면 진료 플랫폼 업계에서는 재진 환자분만 아니라 초진환자까지 비대면 진료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재진 환자에 한해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추진하면 직장인과 워킹맘의 의료접근성이 떨어질 것"이란 우려를 제기하면서. <관련 기사: "초진까지 포함해 비대면 진료 제도화" ↔ "돈벌이에 눈 멀어">   

달빛어린이병원 확대나 비대면 진료 제도화 추진 논리를 들여다보면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직장인과 워킹맘이 낮 시간에 병원을 이용하기 힘든 상황에서 그들의 의료접근성을 높이는 장점을 부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동시간과 의료접근성 사이의 관계를 들여다보자. '과로사회'로 불리는 한국의 긴 노동시간 은 의료접근성 문제와 단단히 얽혀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21년 기준 한국인의 연평군 근로 시간은 1915시간으로 38개 회원국 중 5위를 차지했다. 근로시간이 가장 짧은 독일의 1349시간과 비교하면 1.4배 더 많았다. 긴 노동시간은 의료이용에 있어서 주요한 제약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건 여러 연구에서 실증적으로 확인된 바 있다. 

2012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간한 '한국의료패널로 본 활동제한과 미충족 의료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진료·검사의 필요성이 있었으나 받지 못한 적(미충족 의료)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의료패널에 속한 1만2701명 가운데 21.5%가 "그렇다"고 답했다.

조사 결과 여성(23.1%)이 남성(19.6%)보다, 경제활동자(23.1%)가 비경제활동자(19.1%)보다, 장애인(25.5%)이 비장애인(21.3%)보다 미충족 의료 경험이 더 많았다. 병원에 가지 못한 이유로는 '시간이 없어서'가 35.2%로 가장 높았다. 이어 '증세가 경미해서'(27.2%), '경제적 이유, 치료비 부담'(24.2%) 등의 순이었다. 

2015년 보건행정학회지에 실린 ‘한국 성인의 경제활동 참여변화가 미충족 의료에 미치는 영향’이란 연구보고서에서도 미충족 의료를 발생시키는 주요인으로 긴 노동시간이 지목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의료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한 구체적 이유로 전체 미충족 의료 경험자 1665명 중 36.1%(601명)는 '경제적 부담'을 꼽았다. 다음으로 30.5%(508명)는 '시간이 없어 의료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2019년 비판과 대안을 위한 사회복지학회에서 발간한 '비판사회정책'에 실린 '국내 미충족 의료 현황 및 영향요인 연구에 관한 체계적 문헌고찰' 논문을 보면 시간적 요인으로 인한 미충족 의료 경험이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연구팀이 2017년 12월 15일 이전 국내 학술 데이터베이스에 출판된 45편의 논문을 분석한 결과 성인에서 시간적 요인에 의한 미충족률이 2011년 30.03%, 2012년 34.38%, 2013년 35.59%로 증가 추세를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이 실제로 적용된다고 가정해보자.

정부가 제시한 개편 방안은 현행 '주 52시간제' 틀 안에서 현행 '주' 단위의 연장근로 단위를 노사 합의를 거쳐 '월·분기·반기·연' 단위로도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골자다. 1주 최대 12시간으로 제한하는 연장근로시간을 월 52시간(12시간×4.345주) 등 총량으로 계산해 1주일에 최대 69시간까지 일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대신 ‘근로시간저축계좌’를 도입해 연장노동시간을 휴가로 적립하고, 자유롭게 휴가를 쓸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일할 때 바짝 몰아서 하고, 쉬는 것도 몰아서 쉴 수 있도록 하자는 게 정부가 설명한 취지다. 그러자 개편안이 과로를 조장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아파도 시간이 없어서 병원에 갈 수 없는 상황은 더 심화될 게 뻔하다.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부모들은 주 69시간 근무제도가 사실상 육아를 할 수 없게 하는 정책이란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달빛어린이병원과 비대면 진료가 의료이용 접근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지 모른다. 하지만 긴 노동시간으로 인한 의료이용 제한은 장기적으로 국민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근본적으로 일과 생활이 양립할 수 있도록 장시간 노동이 가능하게끔 만드는 구조를 깨야 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9년 작성한 '과로로 인한 한국 사회 질병부담과 대응 방안'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장시간 노동과 교대근무 등 과로로 인한 질병부담을 합치면 연간 5조~7조 원에 달했다. 

장시간 노동과 과로를 권장하면서 야간이나 휴일에 진료받을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건 '병 주고 약 주는' 꼴이다. 달빛어린이병원이 아니라 아이가 아프면 언제든 병원을 방문할 수 있는 시간이 보장되는 일터, 초진부터 비대면 진료를 이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라 아프면 쉴 수 있거나 병원을 다녀올 수 있는 시간이 보장되는 일터가 가능하도록 노동환경을 바꿔야 한다. 

전문가들은 "주당 평균 노동시간이 40시간 초과인 경우 미충족 의료를 경험할 가능성이 높다"며 "야간이나 휴일 시간대 의료이용 체계를 만드는 것도 필요하지만 장시간 근로 관행을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 긴 노동시간은 병원을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을 제약하는 동시에 건강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김상기 기자  bus19@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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