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교정신건강의학회, 전문의 대상 조사 결과
"학폭 가해자 향한 복수 생각하는 피해자 진료 경험 많아"
"학교 현장에 정신건강 전문가 개입 용이하도록 지원 체계 구축해야"

사진 출처: 넷플리스 '더 글로리' 영상 갈무리
사진 출처: 넷플리스 '더 글로리' 영상 갈무리

[라포르시안]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10명 중 8명은 학교폭력 피해자를 진료한 경험이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학교폭력이 사회적인 문제는 물론 공중보건 차원에서도 심각한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는 점을 각인시켜 주고 있다

한국학교정신건강의학회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65명을 대상으로 학교 폭력에 대한 경험과 의견을 조사한 결과를 17일 공개했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정신과 전문의 78%는 '학폭 피해로 자살 시도를 한 환자를 진료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학교 폭력 피해자들은 우울, 불안, 분노, 불면, 대인관계 어려움, 등교 거부, 자해, 자살 시도 등 다양한 증상들을 호소했다. 특히 학교폭력이 중단되더라도 피해자의 증상이 바로 호전되는 경우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폭력이 중단된 이후에도 수년 동안 후유증이 지속되는 환자를 진료했다는 응답이 31.4%였고, 학교폭력 후유증이 성인이 된 이후에도 지속됐다는 응답은 62.7%에 달했다.  

피해자들이 가해자에 대한 복수 등 공격 성향도 보였다. 학폭 피해자를 진료한 경험이 있는 전문의 중에서 가해자에 대한 복수를 생각하는 환자를 진료한 경험이 90.2%였고, 구체적인 복수 계획을 세우는 환자를 진료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 비율도 47.1%였다. 

전문의 84.6%는 학폭 피해가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이 연관이 있다고 답했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진단된 대상의 3명 중 2명은 불안이나 우울 등의 증상이 동반됐다.

전문의 44.6%는 학폭 피해 이후 정신적 고통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배나 머리 등이 아프고 답답해지는 증상인 '신체화 장애'와도 연관이 있다고 답했다. 학폭 피해로 인해 피해자 가족이나 또래 관계가 와해될 수 있다고 답한 비율도 61.6%에 달했다. 

전문의들은 학교 폭력 예방에 있어 ‘안정적인 학교 환경 도모’가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꼽은 비율이 33.7%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가정 내 지지적인 양육’(27.7%), ‘학교 폭력 예방 교육’(15.4%), ‘교사 역할 및 재량 강화’(12.3%) 순이었다. 

학교폭력 피해자에게 정신의학적 진단 및 치료가 필요하다는 의견에는 전문의 91%가 동의했다.

한국학교정신건강의학회는 "중고등학교에서 학생 간 예의, 대인관계 기술 등 인성교육을 강화하고, 학교 폭력에 대한 이해나 대처법을 교육하는 등 예방 활동이 필요하다"며 "교사와 학교의 학교 폭력 사후 조정 및 대처 역량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학회는 "학교폭력 피해자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면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자극에 의해 당시 고통을 생생하게 재경험할 수 있다"며 "정신 건강 전문가의 학교 현장 개입이 용이하도록 지원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10대, 폭행에 따른 손상 퇴원환자 비율 높아

한편 학교폭 문제를 심각한 공중보건 문제로 인식하고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앞서 질병관리본부(현 질병관리청) 질병예방센터와  이화여자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박혜숙 교수가 2015년 작성한 '우리나라 청소년 손상 입원환자의 역학적 특성'이라는 논문을 통해 10대 청소년의 폭행과 관련한 손상 문제를 짚었다.

연구팀이 2005년부터 실시하고 있는 퇴원손상심층조사 자료를 활용해 13~18세 청소년 손상 입원환자를 분석한 결과 2012년 한 해 동안 전국 100병상 이상 병원에서 손상으로 퇴원한 만 13~18세 청소년은 총 6만3,227명(추정)으로 파악됐다.

이런 숫자는 전체 청소년 퇴원의 29.7%를 차지하는 비율로, 그만큼 청소년에서 폭행이나 운수사고 등으로 인한 손상 발생이 많다는 의미다. 손상으로 퇴원한 청소년을 성별로 보면 남자가 75.5%로 여자보다 훨씬 많았다.

손상 의도성에 따른 퇴원율은 인구 10만명당 비의도성이 1,389명으로 가장 높았다. 다음으로 폭행, 의도성자해(자살) 순이었다. 

연구팀은 "퇴원환자 조사에 의한 청소년의 손상은 운수사고와 폭행이 다른 손상에 비해 높았다"며 "청소년기의 손상은 다른 질병이나 연령군 보다 높은 질병부담을 나타내고 있다. 청소년기 사고 및 손상은오랜 기간 동안 심리적 외상, 육체적 손상, 장애 그리고 사망 등의 결과를 초래하여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고 문제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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