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사 회관 건립 후원금 기부·외부 인사 회장 영입 난제
"유철욱 회장 독단적 회무 추진" 우려 커져

[라포르시안]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회장 유철욱)의 올해 추진사업이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집행부가 이사들과 사전 협의 없이 명확한 목적조차 불분명한 사업을 연이어 강행해 회원사로부터 신뢰를 잃으면서 회무 추진동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임기 1년여 남은 유철욱 협회장의 레임덕이 시작됐다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의료기기산업협회는 앞서 지난 8일 제1차 이사회를 열고 올해 추진사업으로 ▲협회 명칭 변경 ▲회관 건립 ▲이사장제도 도입을 검토하기로 했다. 하지만 해당 안건은 유 회장이 이사회 의결·승인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조직개편안을 추진한 것에 대한 이사들의 거센 반발로 제대로 검토조차 이뤄지지 못했다.

이사회 파행은 예견된 일이었다. 협회는 이사회 개최에 앞서 제조사·수입사·다국적기업 회원사 소속 이사를 대상으로 SNS 개별 단체방을 만들어 회장이 참여한 가운데 ▲명칭 변경안 ▲회관 마련방안 ▲이사장제도 도입 등 정관 변경안 논의를 위한 각각의 일정을 정해 알려 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제조사·수입사는 명칭 변경과 이사장제도 도입이 1999년 설립 후 24년간 의료기기 이익단체로 활동해온 협회 근간을 흔드는 중차대한 안건으로 충분한 검토가 필요한 만큼 사실상 개별 회의를 거부하며 오는 4월 이사회에서 다 함께 논의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 같은 의견에는 유철욱 회장이 사전에 구체적인 계획안도 제시하지 않은 채 협회 정관을 변경해 독단적으로 추진하려는 것에 대한 불만이 크게 작용했다.

이후 협회는 제조사·수입사 반대에도 불구하고 유 회장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 15일 다국적사 임원진과 온·오프라인 회의를 통해 ▲명칭 변경 ▲회관 건립 ▲이사장제도 도입 검토을 논의했다.

본지가 입수한 회의 결과보고서와 협회 관계자에 따르면 이날 회의에는 다국적기업 소속 이사 총 12명 중 5명만 참석했고, 이 중에서 1명은 대리 참석자로 온라인 회의로 참여했다. 이 자리에서 논의된 협회 명칭 변경은 시기적절하다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다만 한글과 영문명에 대한 검토 필요성이 제기됐다.

협회는 명칭 변경안으로 ▲한국의료기술협회(Korea Medtech Association·KMA) ▲한국의료기술산업협회(Korea Medtech Industry Association·KMIA) ▲한국의료산업협회(Korea Health-Care Industry Association(KHIA) ▲한국헬스산업협회(Korea Health Industry Association·KHIA)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Korea Medtech Industry Association) 등을 제시하며 유관 단체(기관)와 학계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다.

한편, 협회 회관 건립 및 이사장제도 도입은 테스크포스팀(TFT)을 구성해 타당성을 검토한 후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점에 공감대가 형성됐다. 

하지만 이날 회의내용을 정리한 결과보고서와 협회 다국적기업 소속 이사들 입장에는 온도차가 났다. 회관 건립의 경우 역대 협회장들의 공약사업이자 또 매달 지출하는 임대료를 고려했을 때 필요성에 대해서는 대체로 찬성하는 분위기였다. 

문제는 재원 마련이 요원하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날 회의에서 이사들은 다국적사의 후원금 기부에 난색을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국적기업 A 임원은 “본사에 법률 검토를 받아봐야겠지만 일반적으로 다국적기업들이 소속 의료기기 단체의 회관 건립을 위해 기부금을 내는 사례는 없다. 본사 입장에서도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협회로부터의 실질적인 도움이 없다고 판단해 회비조차 납부하지 않는 다국적사가 적지 않은 상황에서 회관 건립에 필요한 막대한 후원금을 낼 회원사가 있을지 의문"이라며 "유철욱 회장이 먼저 후원금을 쾌척하면 협회 원로들과 회원사도 움직일 텐데 그러한 리더십 자체가 없는 것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의료기기 제조사 소속 모 이사도 “유 회장은 취임 후 유통 전문대리점 제도화·공급내역보고서 정보 제공 등 현실과 동떨어진 사업을 독단적으로 추진하면서 회원사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며 "임기가 1년도 채 안 남았고 이미 회무 추진동력을 잃은 상황에서 회관 건립이나 이사장제도 도입이 현실화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사장제도 도입 또한 난항이 예고된다. 유철욱 회장은 앞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임기 3년의 비상근 봉사직인 현행 협회장 제도로는 의료기기 법안 통과나 정부 지원 등을 이끌어 내는데 한계가 있다. 이사장제도는 대관 업무에 전문성이 있는 외부 인사를 영입해 협회 회원사와 의료기기산업 발전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방안 중 하나”라며 도입 배경과 필요성을 설명했다.

유 회장의 복안은 한국제약바이오협회·한국스마트헬스케어협회처럼 정치인이나 식약처 고위직 출신 인사를 회장으로 영입하고, 이사장은 협회 이사회에서 선출하자는 것이다.

회관 건립과 마찬가지로 이 또한 재정적 어려움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협회 관계자에 따르면 회장 영입에 소요되는 비용은 급여를 포함해 차량·운전기사·대외 활동비 등 연간 약 3억 원으로 추산된다. 이는 협회 재정 여건상 결코 만만치 않은 비용이다.

협회 회원사 임원은 “의료기기산업 특성상 정부 로비나 대관 업무가 중요하기 때문에 정치인이나 식약처 출신 인사 영입에 대한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협회 업무는 회장 혼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무국 직원들의 지원이 있어야 가능하다. 문제는 상당수 직원들이 낮은 급여 때문에 퇴사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회장 영입은 협회가 수익모델을 만들어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고 직원들의 처우 개선이 이뤄진 후 추진해도 늦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한 “유철욱 회장이 올해 협회 사업으로 회관 건립이나 이사장제도 도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재정적인 문제 해결에 앞서 일방적인 통보식 회무가 아닌 규정과 절차에 따라 회원사들과 충분히 협의하고 구체적인 계획안을 제시해 설득력을 얻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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