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포르시안] 가천길재단을 설립한 가천대학교 이길여 총장의 삶을 다룬 신간 ‘이길여 회고록 : 길을 묻다’가 출간됐다. 

이 책에는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6·25 전쟁 중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입학 ▲미국 유학 후 한국 최초 여의사 의료법인 설립 ▲인재 양성을 위해 학생 수 기준으로 수도권 사립 4위 규모인 가천대학교 설립 ▲의료·교육·문화·봉사·언론 분야를 아우르는 국내 최대 공익재단인 ‘가천길재단’ 설립 등 한 세기에 걸쳐 이룬 이길여 총장의 업적이 담겨있다. 

이 책은 가천대학교 김충식 교수(한일미래포럼 이사장)와의 2년간에 걸친 대담을 통해 이길여 총장의 인생을 견인한 동력들 그리고 끊임없이 도전하고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든 여성 의사이자 다음 세대에게도 존경받는 교육자, 한 세기에 걸친 한반도의 역사가 투영된 그의 삶을 그리고 있다.

특히, 책에는 다음 세대가 반드시 알아야 할 리더로서 이길여 총장의 발자취가 담겨 있다는 것이 재단 측의 설명이다.

책에서 김충식 교수는 “일본어만 써야 했던 초등학생 시절, 이길여 총장은 무심코 우리말을 썼다는 이유로 교사에게 뺨을 맞는다. 그것도 같은 조선인 교사로부터. 초등학교 고학년이 됐을 무렵에는 일본군 ‘정신대’ 징발로 온 동네에 난리가 난다. 이길여 총장의 나이가 서너 살만 많았다면 진작 시집을 갔을 것이고, 지금의 길병원 설립자 이길여, 가천대학교 총장 이길여는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전하고 있다.

6.25전쟁이 휴전으로 끝나자 인천 용동 우물가에서 ‘이길여 산부인과’를 열고, 선진 의료를 배우고 싶어 미국으로 갔지만, 조국과 환자들을 위해 다시 귀국하게 된 일련의 과정과 소회들도 담겨 있다.

김충식 교수는 책을 통해 “1968년 이길여 총장은 미국에 남으라는 주변의 강권한 만류를 물리치고 귀국을 결단한다. 가난한 한국보다, 더 가난한 조국의 환자들에게 ‘반드시 돌아오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라고 설명했다.

1978년 이길여 총장은 국내 여성의사로서는 최초로 의료법인을 설립한 바 있다. 책에서 이길여 총장은 “의료 법인이 아니면 병원이라는 이름을 쓸 수 없었고 한 단계 낮은 의원이라는 이름을 써야 했습니다. 무엇보다 의사들이 의료 법인 설립을 기피했던 이유는 모든 재산을 사회에 내놓는다는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처럼 책은 일제 강점기, 해방과 분단, 6.25 전쟁과 휴전, 전후의 폐허와 가난 등 ‘기록 유산’ 같은 이길여 총장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재단 측은 전했다. 

책은 ▲1장, 미운 오리 새끼 ▲2장, 왈가닥 모범생 ▲3장, 전쟁과 가난, 그리고 의대생 ▲4장, 봉사 활동에 눈을 뜨다 ▲5장, 낯선 천국 미국으로 ▲6장, 이길여 산부인과 ▲7장, 종합 병원을 꿈꾸다 ▲8장, 길병원의 성장 가도 ▲9장, 성공시대 ▲10장, 어미새의 노래 ▲11장, 가천의 이름으로 등의 내용을 비롯해 ‘책을 펴내며(김충식)’, ‘추천사(김병종)’ 등 총 512페이지로 구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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