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 뇌전증 진단으로 병역면탈 도운 병역브로커 파장
뇌전증 진단 힘들다는 점 악용한 저열한 범죄
뇌전증 향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 심화될까 우려

이미지 출처: EBS의 '편견이 키우는 병 - 뇌전증' 관련 영상 캡쳐
이미지 출처: EBS의 '편견이 키우는 병 - 뇌전증' 관련 영상 캡쳐

[라포르시안] '뇌전증' 허위 진단서로 병역을 면제 또는 감면받도록 한 ‘병역 비리’ 의혹이 불거지면서 뇌전증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를 향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이 심화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뇌전증은 순간적인 의식손실을 가져와 환자 본인은 물론 주위 사람에게도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적극적인 치료와 예방이 필요하다. 그러나 환자 자신이나 보호자가 뇌전증 증상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뇌전증에 대한 편견과 사회적인 '낙인효과(Stigma Effect)' 때문에 발병 사실 자체를 숨기는 경향이 있다.

이번 사건으로 뇌전증을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각이 커져 실제 치료가 환자마저 발병 사실을 숨기게 만들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6일 검찰과 병무청에 따르면 허위로 뇌전증을 진단하는 수법으로 병역 기피를 도운 브로커에 대해 수사가 고위 공직자 및 법조인 자녀, 프로스포츠 선수와 연예인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직업군인 출신인 50대 브로커 K씨 뇌전증 증상을 꾸며내는 방식으로 허위 진단서를 발급받는 수법으로 병역 면탈을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 브로커들은 현행 '병역판정 신체검사 등 검사규칙'에 나와 있는 '미확인성 경련성 질환'을 병역 면탈을 위한 수법으로 악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 병역판정검사에서 뇌전증과 관련된 항목은 경련성 질환과 난치성 뇌전증이 있다. 임상적으로 뇌전증을 진단받고 치료를 하고 있으나 뇌파검사, 방사선 검사, 핵의학 검사에서 이상이 확인되지 않은 '미확인된 경련성 질환' 환자 중에서 신체검사일 기준으로 최근 1년 이상 기간 동안 병·의원 등에서 지속적인 항경련 치료사실이 있으면 4급 판정을 받는다. 

미확인성 경련성 질환 환자 중 전문의로부터 진단을 받고 신체 검사일 기준으로 최근 2년 이상의 기간 동안 병의원 등에서 지속적인 치료사실이 기록된 의무기록과 혈중농도 검사기록이 있는 경우에는 5급으로 분류된다. 

병역 브로커들은 항경련으로 치료받은 기록만 있으면 뇌전증을 확실하게 판정받지 않더라도 4급(보충역)이나 5급(전시근로역)으로 판정받을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대한뇌전증학회는 지난 5일 성명을 내고 "뇌전증 병역면탈 범죄행위를 강력히 규탄하며, 철저한 수사와 관련자 엄중 처벌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학회는 "뇌전증은 전 연령에서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는 드물지 않은 질환으로, 꾸준한 자기 관리와 치료를 통해 대부분의 환자들은 정상적인 생활을 한다"며 "그러나 오랫동안 뇌전증 환자들은 발작과 그로 인한 사고 위험성에 대한 잘못된 편견 때문에 여러 사회생활에서 제약과 차별을 받고 있다"고 했다. 

뇌전증은 오랫동안 '간질'이란 질환명을 사용해왔다. 그러나 간질이란 질환명이 사회적 편견과 부정적인 시선을 키우다는 지적에 따라 2010년 ‘뇌전증’으로 변경했다. 

질병을 부르는 명칭이 달라졌다고 이를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이 쉽게 사라지진 않는다. 오랜 시간 불리면서 각인된 것처럼 그걸 지우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특정 질병을 향한 혐오와 차별을 조장하는 행위와도 끊임없이 싸워야 한다. <관련 기사: 뇌전증 환자가 달리는 시한폭탄?…‘뇌전증’에 덧씌워진 낙인과 차별>    

뇌전증 환자들은 이번 병역비리 사건으로 질환에 대한 부정적인 평판이 더 심해져 사회적 제약과 차별이 강화될 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학회는 "우리 모두는 뇌전증이란 질병을 제대로 이해하면서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당당하게 설 수 있도록 뇌전증 환자들에게 따뜻한 격려와 지지를 보내야 할 때"라며 "뇌전증학회는 뇌전증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알리고 잘못된 편견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병역 관련해 그동안 뇌전증 환자는 군대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적절한 기준을 통해 병역면제가 이뤄져 왔다. 학회에 20~29세 남성의 국내 뇌전증 유병률이 인구 1,000명 당 3.88명이란 점을 감안하면 대략 1만3,500여 명의 뇌전증 환자가 군복무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학회는 "이번 병역비리 사건을 방지하기 위해서 역차별을 조장 시킬 수 있는 병역면제 기준의 강화가 이뤄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적지 않은 경우 진단에 있어 임상 소견에 의존하는 뇌전증이라는 질병을 악용해서 뇌전증 병역면탈 범죄행위를 일으킨 사람들을 엄중하게 처벌하고 범죄행위 자체에 대한 방지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이런 범죄행위 방지를 위한 책임 있는 당국의 해결책"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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