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건강연구소> 저절로 생기는 희망은 없다 - 2023년 새해를 맞아

[라포르시안] 여느 해와 같은 형식적인 새해 인사도 줄어든 것처럼 보인다. 전화 문자나 이메일로 보내는 소식이 대세가 된 지 오래지만, 올해는 그마저 무슨 진정성을 찾기 어렵다. 때맞추어 들이닥치는 청구서나 알림과 흡사하다고나 할까. 

왜 그렇지 않겠는가, 국내와 국외를 가릴 것 없이 어두운 전망뿐이다. 게다가 무슨 희망을 품을 만한 계기가 있을 것 같지도 않다. 개인으로나 공동체 전체로나 다른 것에 앞서 ‘실존’을 고민해야 하는 형편이니, 2023년의 토대이자 조건은 그 어느 때보다 비관적이다. 

첫째, 어느 때보다 어려운 경제 상황이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수출, 물가 상승, 임금, 경제성장률 등의 전망치를 따지는 것도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세계적으로 비슷한 상황이라고는 하나, 한국 정부의 구닥다리 경제관과 정책적 무능도 비관의 한 원인인 것이 분명하다.

당장 먹고사는 일부터 어려움을 겪을 터, 물가와 이자, 소득을 비교하면 실질적인 소득 감소를 피하기 어렵다. 그나마 공적 소득 이전과 일자리 만들기를 과거 정부의 적폐로 취급하니 불평등과 빈곤 악화가 볼 보듯 환하다. 이제는 누구도 믿지 않는 대자본과 재벌 기업의 ‘낙수 효과’만 붙들고 있으니, 90퍼센트 이상이 겪을 삶은 얼마나 더 피폐해져야 할까.

둘째, 지정학적 위기가 해소되기 어렵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고,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적 경쟁은 새로운 지정학적 갈등 구조를 공고하게 할 가능성이 크다. 한반도 평화 체제? 지금 정부가 내세우는 정책으로는 말도 꺼내기 어렵다. 큰 피해가 따르는 우발적인 사건, 사고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다.

우리가 맞을 2023년은 지정학적 위기를 남의 일인 양 하는 것 또는 강 건너 불구경 식의 거리두기가 불가능한 시기다. 에너지와 식료품 가격에서 보듯, 지정학적 위기는 바로 보통 사람들의 실존을 위협하고 일상생활의 위기로 이어진다. 세계화된 갈등과 대결의 국제 관계는 삶을 결정하는 또 하나의 물적 토대로 바뀌었다. 

셋째, 인구 고령화와 지역 불평등이라는 국내 ‘모순’의 격화. 단기간의 추세가 아니어서 특별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2023년이라고 다를 것이 없다는 인식이 더 큰 위기 징후일지도 모른다. 이번 정부에서는 다짐과 계획도 찾아보기 어려우니, 무력감과 포기가 본격적으로 번질 것이다.

해가 바뀌어 달라지는 것이 없다고 해도, 점점 더 상황이 나빠지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단편적이지만 지속적이며 구조적인 것들의 특징. 병원 응급실은 더 줄어들고 학교가 문을 닫을 것이며 그나마 가끔 있던 무궁화 기차도 없어진다. 이 불편은 다시 인구를 줄이고 청년층을 외부로 내모는 빌미가 된다. 어지간해서는 막을 수 없는 거대한 변동을 그냥 두고 볼 것인가. 

넷째, 기후 위기는 속도가 빨라지고 증상은 심해진다. 새해 전망에 기후 위기라니, 앞의 세 가지 사안과 비교해 좀 뜬금없다고 탓할 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아니다. 어쩌면 통틀어 가장 심각한 도전인지도 모른다. 다른 모순과 연결되며 서로 강화한다는 점에서도 생각에서 빼놓을 수 없다. 

기후 위기는 특히 시기적, 시대적 상황이 나쁘다. 원전을 빌미로 이제 막 시작한 전환의 씨앗까지 없애는 중이니, 안 그래도 취약한 기후 위기 대응의 작은 토대까지 허물지 않을까 걱정이다. 기후 위기를 실감하는 것이 일부 사건, 지역, 집단에 한정되는 것도 문제를 ‘타자화’하는 중요한 원인이다. 

요컨대, 2023년 한국이라는 정치공동체가 내포한 체제적 모순은 더 격화되고, 그 결과는 파괴적인 양식으로 분출할 공산이 크다. 겉으로 보이는 사건의 건수, 피해의 크기, 비율과 추세는 변동할 것이나, 구조적 경향성이 그리되리라는 사실을 의심하기 어렵다.

노파심에서 말하지만, 이런 예측이나 전망을 마치 경제성장률이나 주가, 부동산 가격에 관한 것처럼 여기는 경향, 그리하여 그 정확성을 평가하려는 일부의 평론은 사양하고자 한다. 예측한 대로 어떤 결과가 결국 정확하게 일치했다면, 그것은 애초에 어떤 희망도 품지 않고 어떤 실천도 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닌가. 가치 있는 사회적 전망이란 반드시 틀려야 하는 법이다! 

우리는 앞서 말한 전망이 실현되지 않기를 바란다. 경제는 예측보다 훨씬 낫고 한반도의 갈등 구도는 비관적 예상을 보기 좋게 빗나갔으면 좋겠다. 다른 이유가 아니다. 여느 사람들의 고통은 줄고, 매일 살기는 더 넉넉하고 행복하기를 바란다. 

전망이 틀리려면, ‘의지’를 바탕 삼아 희망하고 실천하는 것을 빼고는 달리 생각하기 어렵다. 희망과 실천의 근거는 삶의 구체적 토대에서 나오는 어쩔 수 없는 ‘저항’의 힘이다. 우리는 고통과 결핍이 새로운 의지를 만들어내는 역설을 믿는다. 

경제든 국제정치든 또는 지역 소멸이든, 언제까지나 한 가지 힘만 작동하는 단선적 경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희망과 실천이 그 완강한 경로와 운동을 막아설 때, 대안적 경로, 그리하여 새로운 미래가 열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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