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건강연구소> 2022년을 보내면서 ‘지체’를 생각하다

[라포르시안] 우리는 지난 1월 3일 새해 첫 논평을 내면서 한 해 동안 세 가지 과제에 집중하자고 다짐했다(‘2022년 체제’는 반응(反應)을 넘어 ‘예응(豫應)’으로). 

첫째, 코로나 체제의 불평등을 드러내고 그 구조를 이해하는 과제.
둘째, 코로나와 포스트 코로나, 나아가 건강, 공중 보건, 의료 논의를 ‘체제화’하고 ‘정치화’하는 과제. 
셋째, 사람 관점과 민주적 공공성의 토대 강화. 

지금 생각하면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맥락을 빼면 새로울 것이 없는 한 해 과제였다. 불평등, 체제화와 정치화, 사람 관점, 민주적 공공성은 우리가 쉼 없이 주장했던 바이니, 코로나 팬데믹은 지향과 실천의 근거를 다시 확인하고 강화하는 계기 이상이 되기는 어렵다.

그다음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뒤따르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한 질문이자 과제. 우리 연구소만 해당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공동체 전체의 것이라 믿는다. 이런 맥락에서 코로나 팬데믹은 전시장이자 실험실이다. 

“이미 곳곳에 난 싹과 실마리를 찾고 정리해 새로운 전망으로 연결해야 한다. 이는 새로운 실험의 기초가 될 것이며, 또한 갱신과 개혁의 동력이 될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 ‘힘’의 원천을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이어야 한다.”

지난 한 해, 다들 힘을 다해 애썼으나 아쉬움이 남는다. 코로나 상황이 마무리되지 않으면서 세 가지 과제는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기 어려웠다. ‘포스트 코로나’로 전환할 수 있는 사회적 추진력을 찾지 못한 데다, 방역과 보건의료를 넘어 사회적이고 정치적 의제로 확장하는 데도 성공하지 못했다. 코로나는 그것대로 일상이 되었고 그런 점에서 ‘정상화’였다. 

눈에 띄는 성과나 유형의 결과를 얻지 못했다고 그러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다양한 논의와 새로운 시도가 드물었다는 점에 유의하고 싶다. 한 마디로 피로감, 에너지가 고갈된 느낌, 또는 위축되고 수세적인 분위기가 ‘대세’가 된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물론, 올해만 하더라도 3월의 대통령 선거와 그 후 새 정권의 출범이 블랙홀처럼 거의 모든 의제와 동력을 빨아들인 탓이 크다. 이해하기 어려운 ‘사적(私的)’ 정치 행태가 불러온 논란은 거론할 가치도 없지만, 틀을 잡아가던 근대적 과제들을 한꺼번에 ‘리셋’하자는 모양새가 공론장을 압도했다(예를 들어 인권, 노동 체제, 에너지, 보건복지 등). 불평등이나 기후 위기와 같은 새로운 시대적 과제는 발붙일 틈이 없다. 

역설적이지만, 대통령 선거와 정권교체는 새로운 전망과 동력의 사회적 기반이 매우 약하다는 것을 드러낸 사건이기도 하다. 공동체 차원의 문제 정의와 의제는 아직 발전국가 모형을 넘어서지 못했다는 점, 따라서 새로운 전망과 이에 대한 논의는 현실적 기반이 약하다는 점을 다시 확인해야 했다.

그리하여 2022년은 진보의 지체와 퇴행으로 요약해야 할 것 같다. 주목할 것은 지난 정부를 운영했던 정치 세력이 여전히 ‘대안’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후하게 쳐도 중도 보수를 벗어나지 못한 정당이 아니었던가. 상대적으로 조금 낫다고 이들에게 다시 불평등이나 기후 위기 대응과 같은 미래 과제를 맡겨야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현실 정치가 빚어낸 비극이라 할 것이다. 

결국 토대의 문제로 회귀하는 셈이다. 철학과 이념, 정치, 사회, 문화, 주체 형성 등 모든 측면에서 축적의 결핍 또는 부재를 실감한다. 예를 들어, 다들 기후 변화를 잘 알지 못하고, 기후 위기에 관심이 크지 않으며, 이해관계에 대한 감각도 없다면, ‘에너지 레짐’ 전환은 말도 꺼내기 어려울 것이다. 

실천의 문제도 그냥 지나가기 어렵다. 우리 연구소로서는 그중에서도 연구자, 학자, 전문가의 ‘정책 중심주의’에 관심이 크다. 정책은 국가의 틀 안에서 합법적으로 진보를 실현하는 강력한 수단이다. 중요하고, 앞으로도 잘 대응해야 한다. 하지만, 2022년은 많은 정책이, 정책 대응이, 또는 정책 대안이 한계를 드러낸 해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둘러싼 최근 시비는 노골적인 이해관계 정치로 보인다. 일부 지나친 의료 이용을 빌미로 급여 범위를 줄이겠다고 하지만, 이는 곧 고소득층의 보험료 부담을 늘리지 않는 정책 방향이기도 하다. 지난 정권과의 차별성을 넘어 오랜 ‘계급 정치’를 되살린 정치 또는 통치 행위라 해야 한다. 정책은 ‘사소’하다.

돌봄은 또 어떤가. 수요가 엄청나게 늘어나는 것은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일, 이에 대한 경제적 부담을 누가 어떻게 질 것인가, 지금 분위기로는 시장 의존 또는 ‘각자도생’이 유력하다. 새로운 재원을 발굴하거나 지역사회 통합돌봄 모델을 잘 만들면 물줄기를 바꿀 수 있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현실’의 요구라는 점을 앞세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책(또는 정책 아이디어)을 제안하고 요구하는 데 급급했던 것은 아닌지, 2022년을 되돌아본다. 소위 전문가들이 정책과 그 논의를 독점하는 사이, 정치에 좌우되는 사람들의 문제와 고통은 가중되는 것이 아닌지, 연구와 지식이 진보와 사회변화를 늦추는 것은 아닌지, 반성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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