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주(의료기기혁신산업연구회 총무이사)

[라포르시안] 최근 개인용 의료기기에 대한 품목군 확대와 사용범위를 놓고 정치권을 비롯해 규제 기관과 의료기기업계가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개인용 의료기기란 면허를 가진 전문가의 처방 없이 개인이 자유롭게 구입·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통칭한다. 하지만 의료기기 규제 전문가 입장에서는 개인용 의료기기의 정의가 일반 소비자가 인식하는 것과 차이가 있다.

더욱이 가정용 의료기기·자가 진단키트·시력 보정용 렌즈 등 일부 제품은 병원과 개인용으로 혼용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개인이 매장이나 인터넷으로 구입한 진단키트를 이용한 본인 검체를 전문실험실에 보내 질병 및 건강 상태를 의뢰하는 제품도 출시되고 있다. 이 경우 개인 선택에 의해 검사가 이뤄진다는 점에서 개인용 의료기기로 분류해 달라는 업계 요구도 있어 왔다.

개인용 의료기기가 논란에 휩싸이게 된 가장 큰 계기는 코로나19로 볼 수 있다. 코로나 검진을 위해 진단키트가 시중에 유통되기 시작했고 특별한 전문지식이나 교육 없이도 자가 진단을 통해 확진 여부를 판단할 수 있게 되자 비대면 진료 도구를 넘어 개인용 의료기기에 대한 제도적 정의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특히 개인용 의료기기의 필요성이 요구되는 대표적인 품목군이 체외진단 제품이다. 체외진단의 특성상 인체 유래 물질로 검사가 이뤄지는 만큼 혈당측정기·임신 진단키트부터 특정 질병 진단키트 및 유전자 검사에 이르기까지 개인의 사용 요구는 점차 확대되고 있다. 

미용 목적의 의료기기 역시 개인용에 대한 제도적 정의가 필요하다. 사실 미용기기는 질병 치료와 크게 관련이 없다 보니 공산품과 의료기기 중간 단계의 제품으로 정의된다. 다만 일부 피부 변색이나 무좀 등 질병에 사용되는 기구들이 미용 목적의 적응증들과 혼용돼 사용되고 있어 의료기기에 준하는 허가제도를 적용하고 있지만 시중에 유통되는 많은 공산품과의 혼용으로 인해 개인용 미용기기 품목군을 신설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이밖에 인공지능(AI)이 접목된 제품과 디지털 치료기기 역시 자체적으로 내장된 진단 알고리즘 등을 통해 진단·치료를 보조하기 때문에 해당 신기술에 대한 사용을 전문가에 제한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도 빚어지고 있다.

문제는 산업적 요구와는 별개로 의료기기에 대한 개인 사용 확대가 과연 환자에게 이득이 될 것인가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가장 첨예한 예로 유전자 진단은 바이오마커를 이용한 질병 예측이 질병에 대한 과다한 불안을 낳게 하고 개인의 자의적 판단에 의한 여러 시도가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가능성 또한 공존한다.

이 때문에 규제 당국이 개인용 의료기기에 대한 연구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조만간 어떤 방식이든지 결론이 날 것으로 보인다. 개인용 의료기기에 대한 정책적 결정은 규제 관점과 국민 편익을 모두 고려해 신중히 이뤄져야 한다. 앞서 정부는 코로나19 초기만 하더라도 개인용 진단키트 판매를 허용하지 않았다. 이유는 자칫 개인의 불안정한 검사로 감염 통제가 어려울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코로나 기세가 꺽인 이후에는 진단키트로 인한 1차 자가 검사가 오히려 질병 확산을 막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해 시판을 허용했다. 이는 정책적 측면에서 보면 제품의 사용 용이성만 확보된다면 상황에 맞게 운영될 수 있고 그에 따른 효과도 볼 수 있다고 판단한 결과다.

만성기 질환으로 인한 재택 관리 수요가 높아지는 시대에 급성기를 전담하는 병의원과는 다른 돌봄을 겸비한 재택 치료 수단이 필요하다. 이미 시중에는 많은 의료기기가 소형화돼 방문 검진이나 개인용으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조작이 쉬워졌다. 규제적 관점에서는 개인용 의료기기로 지정할 경우 일반인으로 사용범위가 넓어지기 때문에 사후관리에 더 큰 노력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혹여 제품에 문제가 있을 때 잘못된 진단으로 인한 개인의 광범위한 피해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산업적 측면에서는 개인용 의료기기 확대가 관련 시장을 키우는 기폭제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국민 입장에서는 위해도가 낮은 사용 기준에 따라 인허가 등 관리가 이뤄진다면 가정에서도 간단한 질병 진단이나 관리 혹은 미용기기 사용을 통한 편익을 기대할 수 있다. 특히 개인용 의료기기가 주는 편익은 단순히 자가 진단을 넘어 건강 유지에 대한 도구로 사용될 수 있으며, 적절한 정보만 주어진다면 부작용 또한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 사회는 파괴적 혁신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고 있다. 의료 영역에서의 정보 비대칭은 인터넷과 AI를 통해 빠르게 해소되고 있으며, 딥러닝 기반 AI 기술의 의료영상 분석 정확도는 전문가에 버금갈 정도다. 개인용 의료기기는 국가 건강보험 재정에 대한 추가 부담 없이 개인 선택에 따라 사용이 설계되거나 개인 필요에 따라 선택해 사용할 수 있고, 그 혜택은 결국 사용자에게 돌아갈 것이다. 개인용 의료기기에 대한 적절한 품목군 확대와 합리적인 관리 방안을 마련해 산업 육성과 국민 혜택 모두를 높이는 정책적 결정이 이뤄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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