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휴(의료기기산업혁신연구회 이사)

[라포르시안]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발표한 의료기기 생산실적 보고에 따르면 2021년 의료기기 무역수지는 전년 대비 약 44% 상승한 3조7489억 원의 흑자를 달성했다. 수출 역시 체외진단의료기기 등 코로나19 특수로 9조8746억 원을 기록해 약 30% 상승하며 성장했다. 우리나라는 2004년부터 의료기기 실적 보고 통계를 조사한 이래 2020년·2021년 2년 연속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는 쾌거를 이뤘다. 의료기기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자리매김한 한국이 이러한 추세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우리나라가 의료기기산업에서 수출경쟁력 유지를 위해 ‘국제조화’가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있다. 국제조화는 의료기기 안전성·유효성 검증을 위한 다양한 기준을 국제기구에서 정한 방법에 따라 국내법에 해당 기준규격을 적용하는 것을 말한다. 국제조화의 장점은 현재의 기술 발전을 반영한 가장 신뢰성 있는 규격과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물론 그 도입을 위한 비용과 수고가 적게 든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시장 규모가 큰 선진국에서 의료기기 허가를 획득할 때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하지만 국제조화로는 부족한 면이 있다. 국내 의료기기 사용자 입장에서 국제조화를 통한 규제로 인해 비용부담이 늘고, 의료기기 특성상  선진국 중심의 시장이다 보니 다국적기업에 더 유리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국내 의료기기업체의 기반 구축이 미비할 경우 국제조화는 외국기업들의 ‘무료통행권’처럼 사용돼 오히려 국내 의료기기산업을 위축시킬 수 있다. 따라서 의료기기 수출 촉진을 위한 여러 정책이 있지만 가장 강력한 무기는 우리나라가 규제에 비교우위를 가지고 품목에 대한 국제기준을 선제적으로 수립해 규제를 수출하는 것이다.

신흥국과 신규 업체들은 점점 까다로워지고 진입장벽 또한 높아지고 있는 의료기기 규제로 인해 해당 국제기준에 부합하고자 많은 초기 비용을 감내해야 한다. 이러한 점을 감안 할 때 한국이 글로벌 의료기기시장에서 비교우위를 차지하는 방법은 의료기기에 대한 규제 영향력을 발휘해 시장을 주도해 나가는 것이다. 이는 국산 의료기기 신뢰성을 높이는 동시에 기술적 측면에서의 우위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실제로 식약처는 앞서 인공지능(AI) 분야에서 세계 최초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배포한 바 있다. 식약처는 이 같은 성과를 토대로 국제의료기기규제당국자포럼(IMDRF) 의장직을 수행할 수 있었고, AI 분과를 설립해 분과장 역할도 맡고 있다. 물론 국내 의료기기의 기술력이 세계 최고가 아닐지라도 규제 측면에서는 한국이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국제기준을 제정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이 현실화 되면 세계는 한국이 정한 규제를 기준으로 삼아 움직일 것이고 국내 의료기기제조업 역시 이에 따른 파급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주도한 기준이 세계와 함께 논의돼 적용되고 국내 의료기기업체의 신뢰도 또한 높아질 것이다. 특히 식약처는 그간 규제외교와 수출을 통한 성과를 이뤄냈다. 모든 규정을 영문으로 번역해 무료로 배포하는 동시에 의료기기아시아조화회의(AHWP) 의장 시절 아시아 각국 의료기기 규제 담당자를 초청해 국내 의료기기 시설  참관과 함께 한국의 규제를 설명하는 자리를 갖기도 했다.

이제 코로나19로 인해 잠시 중단됐던 규제외교와 수출을 다시 시작해 우리나라 규제를 의료기기 주요 수입국인 아시아 국가에 널리 알리고 각국 규제기관과 긴밀하게 협력해 규제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 AI 소프트웨어 의료기기와 같이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기술을 위한 규정과 국제기준을 통해 기술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한국은 의료기기 주요 수입국과의 적극적인 규제 교류로 해당 국가에 국산 의료기기를 수출할 때 적극적인 협력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 현재 식약처 내 의료기기안전국을 중심으로 이뤄졌던 국제교류 업무를 한층 격상시키고 활성화해 아시아권 중심의  맞춤형 협력방안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특히 규제수출의 중요성을 인식해 식약처 내 권한과 역할을 부여한 전담 조직을 꾸리고 중장기적인 전략을 수립하는 한편 정부 역시 전폭적인 재정 및 외교적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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