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병협 등 5개 단체 "사회적 논의 결여된 의료영리화 정책에 깊은 우려"

[라포르시안] 정부가 추진하는 ‘비의료 건강관리서비스’는 국민의 안전과 건강을 위협하는 의료영리화 정책이라며 즉각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대한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한의사협회, 대한약사회 등 의약 5개 단체는 23일 오후 국회 앞에서 ‘의료영리화 정책 즉각 중단 촉구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지난 2008년 이후 건강관리서비스 제도화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됐으나 ▲개인건강정보의 상업적 유출, ▲서비스의 상품화·고급화로 인한 건강 불평등 심화 우려 ▲의료 영리화 등을 이유로 의료계 및 시민단체의 반대에 부딪혀 제도화가 무산되었고, 관련 법안들도 폐기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6일 보건복지부는 국민 건강 증진과 의료비 절감을 위해 총 12개의 ‘비의료 건강관리서비스’에 대해 시범 인증을 부여키로 했다고 밝혔다. 

인증제도는 1군 만성질환관리형, 2군 생활습관개선형, 3군 건강정보제공형으로 분류했다.

만성질환관리형으로 ▲닥터다이어리 클래스(업체명 닥터다이어리) ▲S-헬스케어(창헬스케어) ▲케어디(메디칼엑설런스) ▲케어크루(휴레이포지티브) ▲키니케어(유티인프라) 등 5개 서비스가 인증을 받았다. 고혈압, 당뇨, 암 환자 관리 서비스다.

생활습관개선형으로는 ▲로디(지아이비타) ▲바이오그램(헬스맥스) ▲실비아(실비아헬스) ▲오케이(KB헬스케어) ▲웰비(비엠엘)가 인증 대상 서비스다. 실비아는 치매위험군을 관리하는 서비스며, 웰비는 일반인·만성질환자의 건강관리를 한다.

건강정보제공형으로는 ▲운동량 측정·관리를 하는 런데이(땀) ▲보건소 사업과 연계한 건강정보를 주는 스마트주치의(송파구보건소)가 인증을 받았다.

이에 대해 보건의약 단체들은 23일 기자회견을 통해 “보건의료제도는 경제적, 상업적 관점이 아니라 국민의 안전과 건강이라는 결과의 유효성을 기준으로 설계해야 한다”라며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결여된 의료영리화 정책 구상들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건강관리서비스는 건강유지와 질병예방 및 악화방지를 위해 제공되는 상담, 교육, 훈련, 실천 프로그램 등으로, 의료행위와 필연적으로 연계돼 제공되는 서비스이며, 의료와 비의료라는 영역을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없기 때문에 ‘비의료’건강관리서비스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 의약 단체들의 주장이다.

의료법 상 의료행위와 비의료행위에 대한 구체적 정의나 기준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 ‘비의료’건강관리서비스는 ‘비의료’라는 명목 하에 비의료인에 의한 무면허의료행위가 난무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점도 문제로 지목했다.

‘비의료 건강관리서비스’는 의약품 정보제공 서비스 행위에 있어 이용자가 의약품의 성분, 효능효과, 부작용(허가사항) 등에 관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의약품의 이름, 조제일자, 수량, 복약시간 등을 앱에 입력해 알람 등 건강관리를 지원하는 서비스를 허용하고 있다. 

의약단체들은 “이는 명백히 약사들의 전문성에 기반해 이뤄지는 복약지도 영역으로, 의약품 투약의 안전성과 효용성을 확보하기 위한 핵심적인 요소”라며 “이를 비보건의료인에게 허용한다는 것은 의약품의 안전성과 효용성을 해치는 심각한 위해요인이 될 것이다”라고 우려했다.

이어 “정부는 비의료 건강관리서비스가 의료인의 판단·지도·감독·의뢰 범위 내에서의 보조적 서비스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건강군이나 위험군이 아닌 만성질환자를 대상으로 한 비의료건강관리서비스까지 포함돼 있어 무면허의료행위는 물론이고 만성질환자의 건강과 안전에도 위해를 끼칠 수 있다”라고 경계했다.

이들은 “개인의료정보를 해킹 등에 취약한 전자적 형태로 임상의료정보의 생산과 관리 주체인 의료기관을 패싱하고, 심평원이 민간보험사에 제공하겠다는 보험업법 개정에 있어서 심도 깊은 논의가 결여됐다”며 “이런 시도는 디지털 헬스케어 활성화를 명분으로 보건의료서비스 왜곡과 상업화의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주며, 현재 한시적 비대면 진료와 조제약 배송, 비대면 진료 중계 플랫폼 문제를 악화 시킬 것이 자명하다”고 지적했다.

의약단체들은 전문가와 함께 객관적인 사회적 논의를 진행할 것을 촉구했다.

이들은 “향후 국회 및 정부가 국민의 건강과 안전에 관련된 보건의료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할 경우 사전에 반드시 의약계 전문가단체와 충분한 논의와 협의를 거쳐 국가의 보건의료정책에 전문가 의견이 충분히 반영돼 국민 안전을 지킬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되기를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이들은 ▲비의료인이 만성질환자에게 환자건강관리 및 교육·상담을 지원하는 1군 만성질환관리형 건강관리서비스를 비의료 건강관리서비스에서 제외 ▲2군(생활습관개선형), 3군(건강정보제공형)의 건강관리서비스 역시 건강관리서비스라는 명목으로 비의료인이나 비의료기관이 무면허 의료행위를 하지 않도록 보건당국의 철저한 관리·감독 ▲비의료 건강관리서비스에서 의약품의 성분, 효능·효과, 부작용 등에 관한 정보 제공행위 제외 등을 요구했다.

비의료 건강관리 서비스 1.2.3군에 대한 인증제 폐지와 함께 ▲무면허의료행위 등 허용범위를 벗어난 의료서비스 제공 ▲의료인이나 의료행위로 오인될 수 있는 표현 ▲의료기관에 환자를 유인·알선하는 환자유인행위 등 수많은 불법 소지가 난무하고 있는 ‘건강관리 플랫폼’에 대한 관리·감독 기준을 엄격히 정할 것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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