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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만나다] “소청과 붕괴 직전...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류일(가천대길병원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장)

[라포르시안] 국내 소아청소년과 진료체계 붕괴가 가시화되고 있다. 최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신현영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보건복지부에서 받은 전문과목별 전공의 충원율 자료에 따르면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충원율은 2018년 101%에서 올해 28.1%까지 떨어졌다. 전공의 충원율뿐만 아니라 실제 진료체계도 위태위태하다.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에 따르면 9월 기준 전국 80개 수련병원 중 소아청소년과 전공의와 전문의가 상주하면서 24시간 소아 중환자 진료가 가능한 병원은 29개에 불과하다. 강남세브란스병원은 지난달 24일부터 소아청소년과 응급실 야간 진료를 중단했다. 

고된 노동강도에 비해 턱없이 낮은 보상, 보호자 민원과 불가항력 의료사고 등으로부터 전혀 보호받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소아청소년과를 기피과로 만들었고, 이제는 소청과 의사를 찾기조차 힘들다는 게 의료현장의 하소연이다. 라포르시안은 가천대 길병원 류일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장을 만나 소청과가 겪고 있는 문제의 원인과 향후 개선 방향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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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아청소년과 붕괴가 현실화하고 있다는 우려가 높다. 실제 의료현장 상황은 어느 정도인가.

= 현재 소청과 상황은 폭탄돌리기를 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를 운영하는 병원은 가천대길병원을 포함해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아산병원, 분당차병원, 순천향대천안병원, 양산부산대병원, 칠곡경북대병원이 전부다. 소아 응급환자는 이들 병원으로 다 몰린다. 환자는 몰리고 의사는 부족하다보니 로딩이 걸릴 수밖에 없다. 

문제는 진료 로딩의 강도가 버티기 힘들 정도란 점이다.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를 운영하는 병원의 소청과 의사 중에는 엄청난 진료업무 부담을 견디다 못해 그만 둔 사람도 있다. 지인 중 신생아 집중치료실에서 근무하던 소청과 심장분과 의사는 전공의가 부족해 일주일 동안 집에 못 간 적도 있다. '제발 교대 좀 할 수 있도록 한 명만 뽑아달라'고 병원에 부탁했지만 끝내 채용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언제 소청과가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 소아청소년과에서 적정 의료인력으로 어느 정도가 필요한가.

= 뇌, 신경, 소화기, 심장, 신장, 호흡기 알레르기, 감염, 면역, 신생아 등 분과별로 최소한 2명씩은 있어야 한다. 신생아 집중치료실과 소아 응급실은 24시간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적어도 7명이 필요하다. 현재 심장 분과는 대부분 1명이 근무한다. 그런데 간혹 심근염 등으로 증상이 심한 아이들이 병원에 오면 의사가 집중치료실에 붙어있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감당을 할 수 있겠나. 적정 의료인력이 충원되지 않으면 현재 근무하는 소청과 의사들은 번아웃에 빠질 게 뻔하다. A병원 소아청소년과가 문을 닫으면 기존의 로딩은 B병원으로 몰릴테고 결국 B병원도 로딩을 못견디고 문을 닫게 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 올해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충원율은 30%에도 미치지 못했다. 기피과로 전락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 소청과는 대표적인 3D 진료과다. 24시간 콜을 받아야 하는 응급 상황이 있는데다 보상도 턱없이 부족하다. 특히, 소청년과 의사는 감정노동자라고 할 수 있다. 환자는 아이 한 명인데 의사에게 설명을 듣기를 원하는 보호자는 엄마, 아빠, 할머니 등 다수다. 많은 보호자들은 소청과 진료 수준을 진료비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일반 개인병원에서 12개월 이하 아이들이 진료를 받으면 본인부담금 500원을 받는다. 이런 이유로 소아청소년과 진료를 500원 짜리 진료로 가볍게 생각하는 보호자들이 있다. 이 병원이 조금만 마음에 안 들면 저 병원으로 가고, 저 병원 의사 설명이 마음에 안 들면 또 다른 병원으로 간다. 소청과에 진료 로딩이 걸리는 이유 중 하나이다.

보호자가 2개월 된 아이를 데리고 예방 접종하러 온 적이 있었다. 접종 후 아이 피부에 뭐가 났다고 하고, 변색이 이상하다고 하면서 이런 저런 질문을 하고, 여기에 대답하려면 최소 10분 이상 걸린다. 그리고 진찰료를 1,500원 청구하면 평소에는 500원 밖에 안 나왔는데 왜 1,000원을 더 받냐고 따진다. 소청과 후배 중에는 보호자들과 이런 대화 자체가 싫어서 본인부담금을 안 받고 국민건강보험공단에만 청구했다가 허위청구로 3개월 영업 정지를 당한 경우도 있다.

또 하나, 불가항력 의료사고 등으로 인한 법적 소송에 따른 두려움도 소청과를 기피과로 만들고 있다. 치료 과정에서 확률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사고가 있다. 의사의 책임이 명백한게 아닌데도 사고가 발생하면 민사소송과 형사소송으로 많은 고생을 한다. 그런 조사를 경험하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너무 힘들다. 민사소송은 할 수 있다고 해도, 의사가 강도짓을 한 것도 아닌데 왜 형사소송까지 제기하는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도 형사소송으로 죽을 만큼 힘든 적이 있었다. 그 때는 당장이라도 소청과 의사를 그만두고 싶었다. 

- 소아청소년과 위기를 해결 수 있는 방안이 있을까.

= 단기적 해법은 예산 지원이다. 2006년부터 15년간 정부가 저출산 해결을 위해 투입한 예산 규모는 225조 3,000억원이고 지난 2020년 복지부의 저출산 예산도 40조원이 넘는다. 그런데 소아청소년 환자를 위한 예산은 도대체 얼마나 있었는지 모르겠다. 전국 주요 3차 병원에 소아청소년과 지원 예산으로 50억 원씩만 주면 아무 문제 없이 돌아갈 것이다. 전공의가 부족하면 전문의를 채용하면 된다. 예산이 충분히 지원되면 우수한 인프라를 확충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소청과는 정부의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다.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는 정부에서 인건비를 지원해 그나마 운영되고 있다. 길병원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에는 의사와 간호사 등 6명이 근무하고 있는데 환자들을 생각하면 12명까지 늘렸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러면 인건비 지원이 두배 정도 증가해야 하는데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나마 보건복지부가 1억원을 더 지원키로 했는데 기획재정부에서 잘랐다고 한다. 예산을 어디다 쓰는지 모르겠다.

-  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 등에 따르면 현재 전국에 소아혈액종양 전문의는 67명으로,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에만 42명의 전문의가 몰려있다. 소아응급의료센터도 전국 8곳에 불과한데 그 중 5곳이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에 있다. 소청과 진료의 지역별 불균형이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 장기적인 관점에서 전국 지자체별로 공공어린이병원을 세우는 것도 한 방법이다. ‘집단 어탠딩 피지션’(Attending Physician) 제도를 활용하는 것이다. 권역 내 병원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로테이션 방식으로 지자체 공공어린이병원에서 근무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인천시 어린이공공병원을 세우고 심장분과 전문의가 추가로 필요하면 길병원, 인하대병원, 인천성모병원 등의 심장분과 전문의가 교대로 일주일씩 근무하는 식이다. 그렇게 하면 어린이공공병원의 심장분과는 2명의 전문의가 돌아가면서 근무할 수 있게 된다. 각 병원의 소아청소년 환자도 배분돼 진료 로딩은 줄어들고 충분한 진료 인프라 구축을 통해 환자들의 지역 이탈도 줄일 수 있다. 가장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손의식 기자  pressmd@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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