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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인·싸] 진전 없는 퇴보?...정체된 한국 신의료기술평가이상수(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보험위원장·메드트로닉코리아 대표이사)

[라포르시안] 의료기기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안전성·유효성에 대한 엄격한 검증 후 판매승인을 거쳐 출시된다. 다만 과거 유사한 의료기기가 식약처로부터 판매승인을 받은 적이 없거나 의료현장에서 사용된 적이 없는 경우 안전성·유효성 검증과 더불어 의료기기가 사용되는 의료 환경의 다양한 요인, 가령 의료인의 의료기기 사용 측면을 고려해 ‘의료기술평가’(health technology assessment) 제도를 추가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의료기기산업계는 이러한 의료기술평가 제도를 의료기기 상용화에 있어 ▲품질(quality) ▲안전성(safety) ▲유효성(efficacy)이라는 기존 3대 규제에 이어 4번째 장애물(hurdle)로 인식하고 있다. 의료기술평가는 의료기술의 속성, 효과 또는 영향에 대한 체계적 평가로 사회경제적 조직적 윤리적 이슈에 접근하는 다학제 프로세스로서 정책 의사결정에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주요 목표로 한다.

의료기술평가 제도를 운영하는 선진 국가의 경우 의료기술평가의 방법론과 원칙에 있어 국제기준을 따르고 있으며, 더욱이 의료기술평가라는 이유로 식약처와 같은 판매승인기관에서 안전성·유효성을 검증한 의료기기의 시장 진입을 가로막는 일은 없다. 우리나라는 2007년 4월부터 의료법에 따른 ‘신의료기술평가’ 제도를 시행 중이다. 하지만 해당 제도는 좋은 취지와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핵심 사항에서 의료기기산업계 우려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즉, 신의료기술평가 장애물을 넘지 못한 의료기기는 식약처 안전성·유효성 검증에도 불구하고 시장진입이 원천적으로 차단돼있다. 이는 의료기술평가 제도를 운영하는 외국 현실과 매우 다르며 국제기준 측면에서도 벗어나 있다. 이 때문에 산업계, 특히 국내 의료기기제조사는 역설적으로 국내에서 개발된 새롭고 혁신적인 의료기기가 오히려 자국시장에서 불리한 상황에 처하게 돼 국가 간 형평성이 결여된 제도라고 항변한다.

우리나라가 신의료기술평가 제도를 시행한 지 어언 15년이 지났다. 그동안 정부와 산업계·학계를 포함한 다양한 이해당사자들 간 수많은 회의와 논의에도 불구하고 큰 틀에서의 제도적 변화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급기야 의료기기산업계는 외국처럼 ‘선 진입·후 평가’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간 언론을 통해 산업계 입장을 표명해 온 만큼 이 같은 주장을 반복하기보다는 우리보다 먼저 의료기술평가 제도를 운영한 국가에서의 최근 변화를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앞서 2021년 유럽연합은 2025년부터 개정된 의료기술평가 제도 도입을 발표하고 현재 의료기기산업계를 포함한 다양한 이해당사자들과 세부 프로세스 논의를 진행 중이다. 유럽의 의료기술평가 제도는 다양한 국가가 있기 때문에 매우 분절적이고 복잡하다. 20여개의 유럽연합 회원국이 의료기술평가 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의료기술평가 기관의 역량, 자문위원회, 법적 절차적 프레임워크 등 국가 간 운영조직과 구조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구조와 상황을 고려해 의료기술에 대한 환자 접근성을 개선하고자 의료기술 생산자를 위한 신청절차를 단순화하는 새로운 규칙을 마련한 것이다. 특히 유럽위원회와 의회는 의료기술평가 공동업무에 관한 입법 제안에 대해 정치적 합의를 이뤄냈는데, 유럽연합 차원의 의료기술에 대한 ‘공동임상평가’(joint clinical assessment)와 ‘공동의 과학적 협의’(joint scientific consultations)에 대한 협력이다.

이를 통해 의료기술 개발자는 유럽연합 수준에서 공동임상평가에 필요한 정보·데이터 및 기타 근거를 한 번만 제출하면 되기 때문에 국가마다 상이한 의료기술평가를 진행해야하는 중복성을 없앰으로써 회원국들의 효율적인 행정 자원 이용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의 자원과 행정 부담을 크게 줄여준다. 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예측가능성을 도모하며 유럽연합 내 장기적인 의료기술평가 협력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했다.

비용효과성 측면에서 평가는 회원국에 일임하는 유연한 방식을 채택했다. 유럽연합의 이 같은 노력은 혁신의료기술을 환자가 조기에 이용 가능하도록 개선점을 도출한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더욱이 유럽연합은 단일시장으로 여겨지지만 국가 간 헬스케어시스템 편차가 크고 의료기술평가 제도가 정부 거버넌스 가운데 중요한 한 축을 차지하는 만큼 이 같은 합일안 도출은 결코 쉬운 여정이 아니었을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환자에게 혜택을 제공하는 신의료기술의 신속한 상용화를 위한 제도적 기틀을 마련하고자 끊임없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다양성과 조화를 추구하는 27개 회원국가로 구성된 유럽연합의 의료기술평가 제도 개정은 분명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유럽의 의료기술평가 제도 개정 취지에 나타난 ▲효율성 ▲예측 가능성 ▲지속가능성 ▲유연성 등과 비교해 우리의 지난 15년 간 신의료기술평가 제도 여정은 어떠한가. 바이오헬스분야에서의 국가경쟁력 확보를 천명한 한국이 과연 현행 신의료기술평가 제도로 국제적인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까. 어쩌면 향후 15년 뒤 여전히 ‘선 진입·후 평가’를 요구하는 의료기기산업계 모습을 보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라포르시안  webmaster@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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